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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는 시인을 기억하지 못한다[서은송의 어둠의 경로]
서은송 | 승인 2018.10.01 10:38

[논객닷컴=서은송] 문예창작과에서 시를 쓰다보면, 가끔 글태기라는 것이 온다. 글태기란 글쓰기+권태기를 합친 은어로 주로 글 쓰는 직업에 속한 이들이 많이 쓰는 단어이기도 하다.

글이라는 것이 그저 끄적이면 되는 것 같아 보여도 사실 엄청난 고뇌와 스트레스를 바탕으로 쓰게 된다. 또한 그것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사람들에게는 말이다. 짜장면 집 자식은 짜장면을 즐겨먹지 않는 것과는 다른 문제이기도 하다. 글을 쓰는 사람들은 대게 자신이 가진 직업이나 글을 쓰는 행위에 대해 큰 행복감을 느끼는 것에서 비롯된 사명감을 가지게 되는데, 이는 자신의 글에 대해 검열을 누구보다도 가장 냉정하게 하면서도 자신의 글은 언제봐도 맘에 들지 않는 감정으로 이어지곤 한다.

ⓒ픽사베이

고급 독자로써 살아가는 행위가 어떻게 보면 근사하고 똑똑해보일지는 몰라도, 남자친구와 데이트하며 가볍게 본 영화도 비평하고 있는 내 자신을 마주칠 때면 가끔은 사회부적응자 같아 거리감이 느껴지기도 한다. 누군가는 고작 15줄에서 20줄 내외인 시를 보며 30분이면 뚝딱 써내는 걸로 아는 사람도 많다. 하지만 현실은 제목을 짓는 데에만 꼬박 하루가 넘게 걸리기도 한다.

시는 시인을 기억하지 못하는데, 시인은 자신이 살아가면서 처음 쓴 시조차도 기억하고 되새기며 살아간다. 흔히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긴다는데, 시인은 살아서도 시를 남기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진 수많은 문학인들의 수를 세지 못하는 것 또한 그들에 대한 이야기가 세상밖에 나오지 못했기 때문이리라.

출생은 기록되어 있으나 죽었는지 살았는지 알 수도 없는 무명의 프로필은 곧 무명예로 직결되기도 한다.

4차 산업이 화두로 떠오르면서 더욱더 많은 글쟁이들의 갈 곳이 사라지기 시작한다. 신춘문예등단은 대기업 서류심사보다도 치열하며 그렇게 뚫고 세상 밖에 나와도 자멸하는 경우가 많다.

나는 그런 길을 걷는다. 수많은 기자들과 문학인들이 그런 길을 걷는다. 자신이 글 속에서 사라질 수도 있다는 걸 알면서도, 글을 쓰지 않는 것은 살아도 죽은 것과 같다며 자신이 택한 글쟁이의 삶을 사랑한다.

다시보니, 시인(詩人)이라는 한자는 참으로 아름답다! 직업이 아닌, 시를 쓰는 사람. 시를 사랑하는 사람. 시 속에 살아가는 사람. 시와 사람사이에 어떤 언어를 붙여도 사랑스러운 단어가 아닌가.

글태기에 대해 쓰려다가 결국은 다시 글을 사랑하는 행위에 대해 쓰게 된다. 바로 이것이 글쟁이가 글을 쓰는 이유가 아닐까.  

 서은송

2016년부터 현재, 서울시 청소년 명예시장

2016/서울시 청소년의회 의장, 인권위원회 위원

뭇별마냥 흩날리는 문자의 굶주림 속에서 말 한 방울 쉽게 흘려내지 못해, 오늘도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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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은송  seoe011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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