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미주의 혜윰 행]

[오피니언타임스=최미주] 주변 어른들은 한창 예민한 20대 후반, 30대 초반 청년들을 자극하지 말라고 했다. 세상이 내 앞길을 막는단 생각과 나보다 잘난 친구를 향한 시기·질투가 그 나이쯤에 한꺼번에 찾아오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랬다. 그 나이쯤이면 응당 겪는 고뿔에 걸려 2018년 상반기를 매일 눈물로 보냈다. 친구를 만나 위로받고 싶은 생각도 들지 않아 가슴 깊숙한 곳에서 서러움이 밀려올 때마다 일기를 썼다.

‘아픔만큼 성숙해진다고 한다. 도대체 어떤 성장이 기다리고 있기에 이다지도 견딜 수 없을 만큼 큰 성장통을 겪는 것일까. 그래 차라리 죽을 만큼 아파봐라. 이렇게 울고 나면 얼마나 큰 보물이 오는지 한 번 보자.’

여행도 가고, 영화도 보며 온갖 방법을 다 써봤지만 병은 낫지 않았다. 이를 악물고 버텼다. 내 자신이 때로는 미웠다가 때로는 불쌍했다가 연민의 굴레 속에서 벗어나질 못했다.

ⓒ픽사베이

만 번은 울었을까. 어느덧 상반기가 지나고 2018년도 3달 밖에 남지 않았다. 어떻게 됐냐고? 신기하게도 마음이 정말 가벼워졌다. 이제 웬만한 일에 쉽게 울지 않고, 나와 관련 없는 사람들의 말에 상처받지도 않는다. 영원히 행복하자는 말이 거짓말이란 걸 알게 됐고, 밥 한 끼 하자는 말이 안녕하세요라는 사실도 터득했다.

그런데 환절기 들어 감기에 걸렸다. 해마다 봄이면 감기에 걸리는데 올해는 멀쩡하길래 성장통에 대한 보상이 건강에도 주어지나 싶었다. 아쉽게도 그건 아닌가 보다.

침을 못 삼킬 만큼 목이 따갑고 약을 먹어도 낫지 않아 링거 한 대 맞으러 병원에 다녀왔다. 다음날 아침 몸이 날아갈 듯 개운해 날뛰는 내 모습을 상상하며 잠이 들었다. 웬걸? 목이 간질간질 가래가 나오더니 이제 목이 아니라 코에 병이 왔다. 코가 막혀 정신이 몽롱할 정도다.

하루아침에 완쾌하길 기대한 건 오랜만에 고뿔에 걸린 내 착각이었다. 원래 감기라는 녀석과의 만남은 나도 모르게 시작되어 목 따가움, 간지럼, 코 막힘, 콧물, 기침 순으로 진행되지 않던가.

링거 맞고 바로 나을 감기였으면 아예 걸리지도 않았겠지. 세상에 약 한 알, 링거 한 방으로 낫는 병은 그 어디에도 없다. 곪은 만큼 코를 풀고, 기침을 해야 한다. 뜻한 대로 일이 풀리지 않아 생긴 마음의 병도 똑같다. 아무리 낫고 싶어 몸부림치고 소리쳐도 울 만큼 울고 견딜 만큼 견뎌야 성숙해진다는 것을 왜 이제야 알았을까.

우연히 지독한 독감에 걸린 사람들이여. 어차피 한 번 넘어야 할 산 앞에서 내일이면 괜찮을까. 다음 주면 나을까 전전긍긍 애쓰지 말자. 더위 가듯 병 또한 할 일 끝낸 후엔 가기 마련이니까. 그 후엔 기필코 보상이 온다.

최미주

일에 밀려난 너의 감정, 부끄러움에 가린 나의 감정, 평가가 두려운 우리들의 감정.

우리들의 다양한 감정과 생각들이 존중받을 수 있는 ‘감정동산’을 꿈꾸며.

100가지 감정, 100가지 생각을 100가지 언어로 표현하고 싶은 쪼꼬미 국어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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