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훈의 쇼!사이어티]

[오피니언타임스=이성훈] 동물구호단체에서 일하는 탓일까. 얼마 전 고향에 다녀오며 유독 시골 개들이 눈에 밟혔다. 개들은 태생적으로 주인과 강한 애착을 형성하며 자유롭게 산책하길 즐긴다. 그런데 짧은 목줄에 묶여 추우나 더우나 밥그릇만 끌어안고 사는 시골 개들의 모습은 참 딱해보였다. 흔한 시골 풍경이라며 그냥 지나칠 수는 없었다.

그중 8kg 남짓한 아기 리트리버가 기억난다. 유독 어리고 꼬질꼬질한 개라서 그랬나보다. 녀석은 택배트럭 하치장에 홀로 묶여 있었다. 생후 4~5개월 남짓한 수컷인데, 아직 젖니도 채 자라지 않았다. 녀석은 초면인 나에게 놀아달라며 껑충껑충 매달렸다.

고향에 머무는 내내 밤낮으로 아기 리트리버를 찾아갔다. 행복이 뭔지 알려주고 싶어서 여러 가지를 시도했고, 다행히 작은 시골 개에겐 서서히 행복이 싹텄다.

ⓒ이성훈

1일차 - 노즈워크 간식주기

첫날은 개 간식을 가져갔다. 특별히 개들이 좋아하는 노즈워크(nose-work, 냄새로 먹이 찾는 놀이) 방식으로 줬다. 습성상 개들은 마치 사냥하듯 ①냄새 맡고 ②발견하고 나서 ③먹는 것을 좋아한다. 이 과정에서 개들은 사냥에 성공한 듯 강한 ‘성취감’을 느낀다고 한다. 노즈워크 종이뭉치 10여 개를 던져줬고, 리트리버는 30분 신나게 놀았다. 하지만 목줄에서 해방되는 자유는 줄 수 없었다. 주인 허락도 없이 목줄을 풀었다가는 ‘개 도둑’ 오해를 받기 십상일테니.

2일차 - 개 산책하기

이튿날 아침, 개 주인을 기다렸다. 1시간 정도 지나, 미니밴을 탄 60대 노인이 등장했다. 인상이 온화한 견주에게 나는 준비된 말을 건넸다.

“안녕하세요. 저는 동물구조단체에서 일하는 사람인데요. 이 녀석 산책을 시켜줘도 될까요?”
“어이쿠, 제가 ‘순돌이’를 잘 못 돌봐서 고민이 많아요. 전문가 같으신데 여러 가지 알려 주세요.”
“하하, 녀석 이름이 순돌이군요.”

일이 잘 풀렸다! 나는 곧장 순돌이 목에 걸린 무거운 쇠사슬을 풀고, 가벼운 나일론 산책줄로 바꿔주었다. 순돌이는 가뿐한 듯 온몸을 털어댔다. 집 밖이 낯설어 어리둥절해하는 순돌이를 나는 한 가득 안았다. 시골 개 냄새가 물씬, 풍겨왔다. 그렇게 순돌이는 생애 첫 나들이를 떠났다.

순돌이를 가까운 학교 운동장에 내려놓았다. 녀석은 킁킁 풀냄새를 맡더니, 푹신한 잔디밭에 뜨끈한 배변을 보았다. 드디어 쌌구나! 산책 중 배변은 개가 건강하다는 징표이다. 개들은 후각이 인간보다 1만배 발달해서, 생활공간과 배변공간을 분리하고 싶어한다. 그동안 개집 옆에 똥 싸느라 얼마나 스트레스가 심했을까. 녀석의 똥은 단단하고 기름져서, 배변봉투에 쉽게 담을 수 있었다. 이후 힘껏 운동장 5바퀴를 달린 순돌이는 나무 그늘아래 풀썩 누웠다.

ⓒ이성훈

3일차 - 견주 설득

개의 운명은 오로지 주인의 손에 달려있다. 주인이 좋은 사람이면 행복할 것이고, 그 반대라면 불행한 것이다. 순돌이의 주인은? 솔직히 개 돌보는 실력은 형편없다. 그렇지만 사람이 넉넉하고 귀가 열려있어, 좋은 주인이 될 가능성이 있다. 순돌이가 행복하려면, 주인이 바뀌어야 한다. 그래야 내가 떠나도, 순돌이가 행복할 수 있다.

하지만 걱정이 앞섰다. 대개 견주들은 완고하다. 누군가 개 키우는 방식을 지적하면 ‘참견말라’며 거부하기 일쑤다. 부디 순돌이 주인이 귀 기울여 주길...나는 준비해둔 조언을 조심스레 전했다.

“순돌이가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세 가지를 부탁드릴게요. ①개목걸이를 헐렁한 가슴줄로 바꿔주세요. 목걸이는 목디스크를 유발하고 목살을 파고들거든요. ②목줄이 너무 무거워요. 쇠사슬을 제가 드리는 나일론줄로 바꿔주세요. ③매일 아침저녁으로 산책을 시켜주세요. 개에게 산책은 가장 신나는 놀이이자, 배설활동이거든요. 인간보다 냄새도 1만배나 잘 맡아서, 집 옆에 똥 싸는 건 얘들한테 엄청나게 스트레스거든요.”

조용히 담배를 태우고나서, 주인은 말했다.

“네, 그렇게 할게요. 저도 순돌이가 정말 건강하고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마지막 날 - 희망 그리고 작별

고향을 떠나는 날, 마지막으로 순돌이에게 향했다. 그 모습을 본 나는 감동했다. 단 하루만에, 순돌이의 많은 것들이 달라졌다. 무거운 쇠사슬 목줄은 가벼운 나일론으로, 숨 막히는 개목걸이는 편안한 가슴줄로 바뀌어 있었다. 어젯밤 조언이 오늘 아침에 현실이 됐다. 아마 부모님, 친한 친구라도 이토록 빠르게 조언대로 실천하지 못했을 것이다. 순돌이 견주에게 마음속 깊이 감사했다. 이 정도의 견주라면 앞으로도 순돌이를 꾸준히 돌볼 것이라는 믿음이 갔다.

이미 자유의 맛을 본 순돌이는 앞으로도 계속 자유를 누려야 한다. 행복은 전진할 뿐, 후퇴하지 않으니까. 다행히 견주가 좋은 사람이다. 순돌이의 남은 15년 견생도 쭉 함께해줄 것으로 믿는다.

글을 마치며

순돌이를 뒤로 하고, 시골 개들의 행복을 생각했다. 1미터 목줄에 체포된 삶, 목줄이 그리는 직경 1미터의 작은 동그라미가 시골 개들에게는 세상의 전부다. 여기엔 고독과 배고픔, 추위만 있다. 평생 독방에 갇힌 채, 이따금 간수 같은 주인이 주는 밥을 기다리는 것이다. 어릴 적에는 미처 궁금해 하지 못했다. 시골 개의 삶은 과연 행복할지를.

긴 글을 함께한 여러분, 시골 개를 만나면 꼭 질문해주기를 부탁한다. “시골 개는 행복할까?” 이 질문에는 세상을 바꿀 힘이 담겨있다. 운이 좋다면 주인의 관점을 바꾸고, 시골 개의 삶을 구할 수 있다. 순돌이가 그러했듯이.

 이성훈

20대의 끝자락 남들은 언론고시에 매달릴 때, 미디어 스타트업에 도전하는 철없는 청년!

오피니언타임스 청년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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