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라니의 날아라고라니]

[오피니언타임스=고라니] 스물 두 살의 봄날, 횟집에서 고등학교 선배들을 만났다. 나를 포함해 대학생이 네 명에 은행, 자동차회사, 공공기관 등 다양한 직종에 몸담은 이들이 열댓 명이었다. 눈치 보지 말고 시키라는 선배들의 호령에 광어 대신 참돔을 주문했다. 소맥에 이어 팔자에도 없는 위스키로 2차를 달리고 반쯤 정신이 나가 있을 무렵, 갑자기 누가 옷을 갈아입으라고 재촉한다. 이게 무슨 소린가 싶어 정신을 차려보니 선배 몇 명이 가운을 입고 웬 방에 앉아 있고, 벽에는 처음 보는 여자들이 서 있다. 그제야 상황파악이 된 나는 서둘러 그 방을 나왔다. 이게 뭐 하는 짓이냐며 쌍욕을 하는 선배의 손을 뿌리치고는 신발도 못 신고 택시를 잡아탔다. 그 날 이후 난 죄 지은 사람처럼 선배들의 연락을 피했고, 다시는 그들을 만나지 않았다.

ⓒ픽사베이

불법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성매매는 우리 삶 가까운 곳에 있다. 남자들은 나이를 먹으며 자연스럽게 성매매에 동참하라는 압력과 유혹을 받는다. 대학과 군대에서는 또래집단의 동조압력이 가해진다. 남자들끼리 밤늦게까지 술을 마시다 분위기에 이끌려 우르르 업소로 몰려가거나, 군입대를 앞둔 친구를 ‘우정의 힘’으로 업소에 던져놓는 식이다. 그나마 이 시기에는 홀로 고고한 척 성매매와 담을 쌓고 지내는 것이 가능하다. 여가시간을 함께 할 사람을 선택할 수 있는 시기니까. 문제는 밥벌이를 시작한 후다.

내가 다닌 첫 직장은 남초회사였는데 남자들끼리 모이는 술자리에서는 어김없이 음담패설과 각종 무용담이 오가곤 했다. 어떤 대리는 태국에서 밤낮으로 붙어 다녔다는 현지여성의 나체사진을 보여주고, 어떤 과장은 강남 어느 업소를 가니 연예인보다 예쁜 어린애들이 속옷만 입고 나오더라고 기분 좋은 회상에 잠긴다. 어떤 선배는 신입사원 시절 자신의 멘토였던 차장이 “우린 형식적인 멘토링 대신 특별한 걸 하자!”라고 소위 ‘대딸방’을 데려갔다며 자신도 이런 선배가 되고 싶다고 했다. 아마 나의 고등학교 선배들도 같은 마음 아니었을까 싶다. 이제 막 고등학교를 졸업한 귀여운 후배에게 은혜를 베풀어 공짜로 섹스할 기회를 줬는데 똥 씹은 얼굴로 나가니 그들 입장에서는 얼마나 기분이 더러웠을까.

필명의 힘을 빌려 위와 같은 이야기를 썼지만, 남자들 세계에서 그들끼리 공유한 섹스스토리를 외부에 유출하는 것은 돌팔매 맞을 배신행위다. 은밀한 비밀을 공유하는 것 자체가 ‘너는 우리 사람’이라는 인정의 표현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야망 넘치는 일부 남자들은 성매매에 적극적으로 동참함으로써 조직 내 주류집단에 손쉽게 편승한다. 어쩌면 성매매가 불법이기에 그에 가담한 이들의 연대의식이 더욱 강화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회식도 근무의 연장으로 당연시되는 우리나라의 기업문화에서는 1차가 끝나고 귀가하느냐, 새벽닭이 울 때까지 상사의 곁에 남아 있느냐가 부하직원의 근태를 평가하는 척도가 된다. 1차, 2차, 3차를 지나 남자들만의 유흥이라는 끝판왕까지 통과한 이들은 갸륵한 충성심을 인정받지만, 검증을 통과하지 못한 이들은 괘씸죄와 근무태만죄가 더해진다. ‘혼자 깨끗한 척’하는 이들은 그렇게 주류집단에서 배제된다. 이런 문화가 만연한 조직에서 여자는 애초에 중심으로 진출할 기회조차 얻지 못하는 것이다. 업소에 가는 남자들이 여자를 성욕해소의 도구로 소비하는 것에 더하여, 이처럼 성매매 자체도 조직 내에서 내집단과 외집단을 나누는 도구로 활용된다.

“먹고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업소에 끌려가서 담배만 피다 나왔다거나, “먹고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성접대를 준비했다는 남자들의 이야기를 가끔 듣는다. 그럴 때마다 그 어쩔 수 없는 상황을 만든 인간들에 대한 분노가 치민다. 수치심을 삼키며 상사와 고객의 일그러진 욕망을 충족시켜야만 원만하게 사회생활한다는 소리를 듣는, 글러먹은 조직문화와 갑을관계는 도대체 개선이 가능한 건지 모르겠다.

나와 별 상관없는 이들의 사생활을 규범적으로 판단하는 오지랖을 부릴 생각은 없다. 성매매 자체에 대한 가치판단 역시 짧은 지면과 이해를 빌어 이야기하기엔 너무나 복잡하고 거대한 문제다. 다만 떳떳치 못한 유흥에 동참할 것을 강요하는 이들에게 이 말만큼은 하고 싶다.

하고 싶으면 너 혼자 해라. 제발. 

고라니

칼이나 총 말고도 사람을 다치게 하는 것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오피니언타임스 청년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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