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기수의 중국이야기]

[오피니언타임스=함기수] 북측 대표의 ‘서울 불바다’ 발언으로 남북의 정세가 극도로 흉흉하던 1994년, 나는 베이징에서 대 북한 비즈니스를 담당하고 있었다. 당시 북한은 NPT(핵확산 금지조약)를 탈퇴하면서 핵개발을 공식화 했고 이에 미국이 이를 저지하면서 ‘영변 폭격설’ 등 남북관계는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었다.

‘승부는 안다. 그러나 변수는 있다. 우리는 3개월을 굶어도 버틸 수 있다. 이미 습관이 되어 있기 때문이다.’ 평소 만나던 북측 파트너와 작금의 흉흉한 사태에 대해 얘기가 나오지 않을 수 없었다. 가능하면 정치이야기는 안하는 것이 불문율처럼 되어 있었지만 그날은 예외였다.

그의 주장은 남쪽이 혼란과 불편함에 익숙지 않아 스스로 자중지란에 빠질 것이라는 얘기였다. 고층 아파트에 단전과 단수가 되면 냉장고가 녹아내리고 아파트가 거대 공중 화장실이 될 것이라는, 나로서는 생각해 보지도 않았던 얘기를 그는 서슴지 않고 내뱉었다.

©픽사베이

무역전쟁이라 일컫는 미중의 대립이 심상치 않다. 무역전쟁이라고 쓰고 패권전쟁이라고 읽는 모양새다. 지금으로서는 양쪽 모두 포기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는 소위 ‘치킨게임’의 양상을 띠면서 통상무역뿐만 아니라 정치, 안보, 금융 등 전방위로 확전 조짐을 보이고 있다. 새 강대국이 부상하면 패권을 놓고 기존 강대국과 무력 충돌한다는 ‘투키디데스의 함정’ 얘기까지 나오고 있다.

금년 7월과 8월에 걸쳐 미국이 중국산 수입품 500억 달러에 대해 25% 관세를 부과함으로써 촉발된 미중 무역분쟁은 중국이 미국산 수입품 500억 달러에 25% 관세로 맞불을 놓자 미국이 다시 9월 중국산 수입품 2000억 달러어치에 10%관세를 발효하면서 확대되었다. 중국은 600억 달러 10% 추가 관세로 맞대응하였고 이에 트럼프 대통령은 다시 2670억 달러 규모의 중국산 제품에 25% 관세 부과를 추가로 준비 중이라고 언급했다. 이는 사실상 미국이 중국에서 수입하는 모든 제품에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걸 의미한다.

양국 간 신경전은 갈수록 고조되고 있다. 미국은 중국의 양보 없이는 어떤 대화도 하지 않을 것임을 확실히 못 박았다. 이에 중국도 ‘무역전쟁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미국은 중국의 결심과 의지를 결코 얕보지 말라’고 경고했다. 중국 무역의 선봉인 중산(鐘山) 중국 상무부장은 ‘중화민족은 어떤 난관도 꿋꿋이 견뎌내는 불요불굴(不撓不屈)의 민족으로, 우리는 역사적으로 수 차례 외부 억압을 받아왔지만 어떠한 어려움 속에서도 굴복한 적이 없다’라고 주장하였다.

처음 미중 무역분쟁이 발발하면서 많은 사람들은 미국의 일방적인 승리를 예견했다. 그것은 한국이 중국의 사드 경제보복에 무방비로 당했던 이유와 흡사하다. 한중간의 국력 차이도 있지만, 상대국에 대한 의존도가 비대칭적이었기 때문이다. 한국은 2016년 대중 수출의존도가 25%에 달했고 전체 무역흑자 중 대중 무역흑자 비중이 42%였다. 반면, 중국은 2016년 대한 수출의존도가 4.5%에 불과했고 대한 교역에서 적지 않은 무역적자(375억 달러)를 기록하고 있었다. 한중 교역에서 중국보다 한국이 얻는 게 많았던 셈이다. 한국이 대응할 수 있는 수단은 제한적이었다.

그런데, 미중 교역에서는 중국이 얻는 게 훨씬 많다. 중국 해관총서(관세청)에 따르면, 2017년 중국의 대미 수출의존도는 18.9%에 달했고 중국의 전체 무역흑자 중 대미 무역흑자가 차지하는 비중이 무려 65%에 달했다. 그러나 미국의 대중 의존도는 훨씬 낮다. 미국 통계국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의 대중 수출의존도는 8.4%에 머물렀고 대중 교역에서 무려 3752억 달러의 무역적자를 기록했다. 특히 2017년 전체 무역적자(7962억 달러)에서 대중 무역적자가 차지하는 비중이 47%에 달했다.

따라서 미중간의 분쟁에서 분명한 것은 중국의 타격이 미국보다 훨씬 심하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중국은 지금까지 전혀 물러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그들은 관영매체 등을 통해 결사항전의 의지를 불태우고 있다. ‘미국은 중국의 역사와 문화를 전혀 모르고 있다’라고 일갈하였다.

미중 무역전쟁은 시진핑의 ‘중국몽(中國夢)’과 트럼프의 ‘미국 제일주의(America First)’가 첨예하게 맞붙은 불가피한 충돌이다. ‘중국몽’, 즉 중국의 꿈은 ‘위대한 중화민족의 부활’이다. 2017년 11월 트럼프가 취임 후 처음 중국을 방문했을 때 시진핑은, 명나라 영락제가 1403년 도읍을 정한 뒤 ‘중국’이라는 천하의 중심이었던 베이징에서 제국의 황궁 자금성을 통째로 비우고 트럼프 대통령을 맞이하였다. 특히 중화제국 최대의 영역을 지배했던 건륭제의 건복궁에서 건국 이래 외국 정상과의 첫 만찬을 주관함으로써 은연중에 그의 속내를 드러낸 바도 있다.

중국은 이번 무역전쟁의 본질이 중국의 부상을 억제하는 미국의 견제에 있다고 본다. 이번의 기(氣)싸움에서 밀리면 과거 처절하게 당했던 서구제국주의에 대한 또 한 번의 굴복이며 다시 그들의 무릎 아래로 들어가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리하여 중국은 절대로 미국에 굴복할 수 없다. 내가 이 대목에서 생뚱맞게 북한의 파트너가 의미심장하게 내뱉은 ‘우리는 삼 개월을 굶어도 견딜 수 있다’라는 말이 생각난 것은, 미중 무역전쟁은 결국 미국과 중국, 양국 국민의 국가를 위한 인내심과 어려움에 견디는 습관의 차이에서 승부가 날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이것이, 비록 속으로는 어떤 형태의 모습으로 결론 날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겉으로는 중국이 지는 모습은 절대 없을 것으로 보는 이유이다.

 함기수

 글로벌 디렉션 대표

 경영학 박사

 전 SK네트웍스 홍보팀장·중국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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