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종건의 드라이펜]

[오피니언타임스=임종건]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노동당위원장 간의 9·19평양선언에서 특기할 일은 김정은의 서울방문을 명문화한 점이다. 아직 김정은의 서울 답방을 장담하기는 어려우나 정부는 답방의 연내 성사를 전제로 대비하고 있는 모습이다.

문 대통령은 지난 달 28일 기자들과 등산을 한 자리에서 “김 위원장이 원한다면 제주도 구경을 시켜주겠다”고 말한 것으로 보도됐다. 이 발언은 SNS 공간에서 거친 역풍을 일으켰다. 나라 경제가 어려운데 김정은 접대가 그리 중요하냐는 볼멘소리 일색이었다.

김정은의 국회 연설 문제도 논란이 되고 있다. 문희상 국회의장이 김정은의 국회 연설을 허용할 뜻을 밝혔고 여권 의원들이 여기에 가세하고 있다. 자유한국당이 반대입장이라 이를 무시하고 강행하기는 힘들 것으로 보이나, 이뤄진다면 그의 방남에 화룡점정이 될 것이다.

김정은이 묵게 될 호텔을 둘러싸고 업계의 신경전도 치열하다고 한다. 그가 묵었다는 것만으로 브랜드 가치가 치솟을 것에 대한 기대감에서다. 그의 서울 체류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경호이기 때문에 시내 변두리에 위치해 경호상 유리한 워커힐 호텔이 벌써부터 유망 호텔로 거론되고 있다고 한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노동당위원장이 9·19 평양정상회담을 마치고 악수를 하고 있다. ⓒ청와대

분단 73년 동안 북한의 실권자가 남녁 땅을 밟은 것은 지난 4월 27일 문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위해 판문점 남측지역인 평화의 집에 온 김정은이 처음이었다. 판문점 남쪽은 기술적으로 남쪽 땅일 뿐이어서 그곳에 온 것을 한국에 왔다고 할 수는 없다.

김일성도, 김정일도 한 번도 남한에 오지 않았고, 김정일은 남한의 김대중 노무현 두 전직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때 두 번이나 오겠다고 약속하고서도 안 왔다. 김정은이 서울에 와야 마침내 북한 실권자가 최초로 남한에 오는 것이다.

김정은의 서울방문은 그가 가진 몇 차례 안 되는 해외여행이나, 앞으로 하게 될 해외여행과는 완전히 다른 여행이다. 서울은 천만 인구가 사는 대한민국 수도이자 자유와 다양성이 보장된 개방도시다.

여기에서 사는 사람들이 북한에 대해 가지고 있는 감정 또한 다양하다. 남한 사람 중에는 일부 친북세력도 있겠지만, 대다수는 분단 이후 북한이 자행한 6·25 전쟁을 비롯한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도발에서 거의 일방적인 피해자였다. 북한 정권에 불신과 반감을 지닌 사람들이 많다고 봐야 한다.

서울에 사는 사람 중에는 김정은의 방문을 환영하기 위해 광화문에서 인공기를 흔드는 사람이 있을 수 있으나 동시에 그의 사진이나 인공기를 불태우는 사람도 나올 수 있다. 군중의 환영에 익숙한 사람이 군중의 반대에 부닥치는 첫경험이 될 것이다.

그의 서울 방문은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 대통령의 평양방문과도 다르다. 북한은 권력의 지시로 주민을 동원해 연도에서 환영할 수 있으나 서울에선 그런 풍경은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서울 사람들이 그를 환영하지 않는다고 그가 오해할 것까진 없다.

그의 두 차례에 걸친 극비리 중국방문과도 다르다. 언제 어떻게 가서 무슨 얘기를 했는지 북한도 중국도 일언반구도 없다가, 시진핑 주석과 만난 사진 한 장 언론에 내면 끝이다. 그러나 그의 서울방문은 도착에서 떠날 때까지 그의 기침소리까지 언론에 노출될 것이다.

그가 서울에서 보여줄 언행은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북한의 대남 도발은 대부분 선대(先代)인 김일성과 김정일 시대에 저질러진 것이다. 그렇다고 그가 그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선대의 과오에 대해 그가 어떤 말을 하느냐가 그의 서울방문의 성패를 가를 것이다.

그가 선대의 죄과를 모른 체하고 영웅행세나 하려는 것으로 비치면 그의 서울방문은 역풍을 맞을 것이다. 김정은의 방문이 중요한 게 아니라 그가 와서 할 말이 중요함을 정부가 얼마만큼 인식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진정성 있는 사과를 할 의사가 없다면 그는 차라리 오지 않는 것이 나을지도 모른다.

그 점에서 그의 서울방문은 그에게도 위험부담이 있다. 지난 9월 평양정상회담 때 그는 자신의 서울방문 계획에 대해 “측근들 대다수가 반대하지만 가기로 했다”고 밝혔다. 그도 이런 저런 위험요소를 알고 있다는 얘기일 것이다.

그의 서울방문은 남한의 정치상황에 비추어 볼 때 착잡한 면도 있다. 두 전직 대통령과 전직 국정원장들이 구속됐고, 전직 대법원장마저 사법처리 대상에 올라 있는 시점이다. 이들은 북한이 주적(主敵)이던 시절 대북 대결정책의 정점에 있던 사람들이다. 그들의 정책도 국익과 안보가 명분이었다.

이들의 구속에 쾌재를 부를 사람이 나라 밖에 있다면 그가 누구일까? 김정은의 서울방문은 가족을 골방에 가두고 이웃을 불러 잔치하는 꼴이다. 남남화해도 못하면서 남북화해를 외치는 이 현실에 대해 ‘그들의 죄명은 국정농단이란 말이요’라는 한마디로 수긍할 사람이 얼마나 되겠나?

그 점에서 김정은의 방남은 최소한 구속된 전직 대통령들이 풀려난 뒤에 이뤄지는 것이 정치도의에 맞다는 생각도 든다. 자신의 서울방문으로 남남갈등이 폭발할 것을 꿰뚫어 보고 김정은이 오는 게 아닐까 두렵다.

 임종건

 한국일보 서울경제 기자 및 부장/서울경제 논설실장 및 사장

 한남대 교수

 한국신문윤리위원회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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