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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년 빛나는 인사[김부복의 고구려POWER 5]
김부복 | 승인 2018.11.12 11:34

[논객닷컴=김부복] 고국천왕은 키가 9자나 되는 ‘구척장신’이었다. 큰솥을 거뜬히 들어올리는 ‘천하장사’이기도 했다. 생김새도 영웅 그대로였다. 생각은 깊고 날카로웠다. 힘과 지혜를 모두 갖춘 임금이었다.

고국천왕이 나라 살림을 맡길 인재를 찾고 있었다. 신하들은 너도나도 안류(晏留)를 꼽았다. 안류는 학식과 덕망이 높은데다 백성의 신임까지 받고 있는 ‘국사무쌍(國士無雙)’이라고 입을 모았다.

그러나 안류는 사양했다. 스스로 적임자가 아니라고 밝혔다. 안류는 그러면서 을파소(乙巴素)를 추천했다.

“나는 막중한 국정을 맡을 사람이 못됩니다. 압록곡 좌물촌에 을파소가 있습니다. 성격이 강직하고 사려 깊은 사람입니다. 나라를 잘 다스리려면 그 사람을 등용해야 합니다.”

그러자 몇몇 신하들이 반대하고 나섰다. 누군지 알 수도 없는 사람이 윗자리에 오면 아무래도 상대하기가 껄끄럽기 때문이었다.

고국천왕은 그렇지만 을파소를 불렀다. ‘중외대부’라는 벼슬을 제안했다. 상당히 높은 관직이었다. 하지만 을파소 역시 벼슬을 거절했다.

“다른 현명한 사람을 뽑아 더 높은 관직을 내려야 합니다. 그래야 나라가 제대로 설 수 있습니다.”

고국천왕은 을파소의 마음을 읽었다. 벼슬을 올려서 국상(國相)으로 임명했다.

EBS <역사가 술술>에서 ‘농부 을파소 재상이 되다’ 편을 방송하고 있다. ⓒEBS 방송 캡처

을파소는 곧바로 능력을 발휘했다. ‘진대법(賑貸法)’을 실시, 굶주리는 백성을 구제했다. 나라를 12년 동안 잘 다스렸다. 을파소가 세상을 떠났을 때는 온 나라가 슬프게 울었다.

안류는 대단한 인재였다. 신하들은 물론이고 백성에게도 명망이 높았다. 나라의 국상을 맡고도 남을 인재였다. 그런데도 안류는 자기보다 더 뛰어난 을파소를 임금에게 소개한 것이다. 고구려는 덕분에 을파소를 얻을 수 있었다.

고국천왕의 인사는 후대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았다. 실학자 성호 이익(李瀷·1681∼1763)은 고국천왕을 격찬했다.

“…후세에 와서도 혹 어진 사람을 추천하여 뽑기는 했으나, 대개 낮고 천한 관직에 앉혀놓고는 재능이 없다고 했다. 그랬으니 준마에게 쥐를 잡으라고 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고국천왕은 가히 지혜가 밝고 과단성이 뛰어나다고 일컬을 만하다.”

고구려는 이처럼 훌륭한 인사를 했다. 고국천왕의 인사는 1000년이 넘어서도 빛을 내고 있었다.

알다시피, 진대법은 식량이 부족해서 굶주리는 백성에게 3월에서 7월 사이에 나라에서 보관 중인 곡식을 빌려줬다가 10월에 돌려받는 제도다. 서기 194년에 시행된 진대법은 고려시대의 ‘의창’, 조선시대의 ‘환곡제도’로 1000년 넘게 이어졌다.

송나라의 개혁정치가 왕안석이 진대법을 ‘벤치마킹’하기도 했다. 진대법과 유사한 ‘청묘법(靑苗法)’을 추진한 것이다. 곡식 대신 돈을 빌려주는 게 진대법과 다를 뿐이었다.

민중왕 때인 서기 45년에도 진대가 있기는 했었다. 동부 지방에 큰물이 들어 기근에 빠진 백성을 구하기 위해 진대를 실시한 것이다.

그러나 이는 일시적이고, 제한된 지역에서 시행된 진대였다. 그 범위를 전국적으로 확대하고 항구적으로 실시한 것은 고국천왕 때였다. 그래서 진대법이 제정된다는 소식을 듣고 ‘모든 백성이 크게 기뻐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나라의 인사는 중요하다. 조선 중기, 남명(南冥) 조식(曺植·1501∼1572)이 선조 임금에게 글을 바쳤다.

“남의 나라를 잘 염탐하는 사람은 그 나라의 국력을 보지 않았습니다. 사람을 얼마나 잘 쓰고 못쓰는가를 보았습니다.… 어진 사람을 쓰는 것은 다스림의 근본입니다. 옳은 인재를 쓰지 않으면 소인이 나라를 마음대로 하게 됩니다.…”

인사를 하는 것을 보면 그 나라의 국력이 강한지 약한지 여부까지 알 수 있다는 충고였다. 그러니 인사를 할 때 바짝 신경 좀 써야 할 것이라고 강조한 글이었다.

조선 말,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1762∼1836)은 이렇게 썼다.

“인재를 얻기 어렵게 된지 오래되었다. 온 나라의 영재들 가운데에서 발탁을 해도 부족할 텐데 오히려 영재의 8∼9할을 버리고 있으면서 어떻게 인재를 구할 것인가. 소민(小民)이라며 등용하지 않는다. 해서(海西), 개성(開城), 강화도(江華島)사람이라며 등용하지 않는다. 관동(關東)사람과 호남(湖南)사람은 절반을 등용하지 않는다. 서얼도 등용하지 않는다. 북인(北人)과 남인(南人)은 등용하지 않는 것이 아니면서도 등용하지 않는다. 등용될 수 있는 것은 오직 수십 가구의 문벌 좋은 사람뿐이다. 그나마 그 중에서도 무슨 사건에 연루되어 등용될 수 없는 사람이 많다.…”

정약용의 지적도 조식과 ‘닮은꼴’이었다. ‘인사(人事)는 만사(萬事)’라고 했는데, 발탁해도 부족할 인재를 되레 버리는 나라가 강해질 수는 없을 것이었다.

오늘날 대한민국의 인사는 또 어떤가. 코드 인사, 정실 인사, 보은 인사, 회전문 인사, 돌려막기 인사 등등의 논란이 그치지 않고 있다. 문재인 정부 들어서는 한 가지 인사 방식이 추가되고 있다. 이른바 ‘캠코더 인사’다. ‘캠프와 코드, 더불어민주당’에서 땄다는 인사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1년 4개월 동안 340개 공공기관에서 1651명의 임원이 임명되었는데, 그 중에서 365명이 ‘캠코더 인사’였다는 야당의 주장도 있었다. ‘내로남불’이라는 비아냥거림도 나오고 있다.

안류처럼 더 좋은 인재에게 자리를 양보하겠다는 사람이 있다면 아마도 ‘천연기념물’이다. 발탁될 기회만 생기면 ‘사생결단’으로 달려들고 있다. 도덕성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이 드러나도 ‘일단 버티기’다.

김부복  news34567@nongae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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