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진선의 너영나영]

[오피니언타임스=황진선] 요즘 사법농단 사태를 대하는 사법부를 보면 판사는 인품을 보고 뽑는 게 아니라는 말이 새삼 떠오른다. 이는 교수·의사 같은 전문직들과 마찬가지로 우리 사회의 최고 엘리트인 판사들이라고 해서 높은 윤리와 도덕 감정을 지닌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제 식구 챙기기 급급한 판사들

오히려 고위 법관일수록 국민의 시선은 아랑곳하지 않은 채 검찰의 사법농단 수사에 저항하고 관련 판사들을 비호하는 데 집착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사법부 독립은 국민에게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인데, 자신들의 독점적 권한을 유지하고, 제 식구와 제 집을 지키기 위한 방패막이로 여기는 게 아닌지 묻고 싶다.

이제 여론 법정에서는 사법농단은 의혹이 아니라 기정사실화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대다수 국민은 양승태 사법부가 상고 법원을 도입하기 위해 재판을 놓고 청와대와 거래를 시도했다고 생각한다. 판사들은 역지사지해야 한다. 사법농단 피해자들의 억울함을 풀어주기 위해서라도 그 실체가 밝혀져야 한다. 그들이 유야무야 넘어갈 것으로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재판의 ‘외관상 공정’이 무너지면 판결의 공정성을 의심 받는 것은 당연하다. 이미 확정 판결이 내려진 사건은 그 당부를 다시 심의하는 재심 절차를 개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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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론 법정에서는 사법농단 기정사실화

‘방탄 법원’이라는 얘기를 자주 듣는다.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2018년 7월20일부터 10월4일까지 검찰이 사법농단 수사를 위해 청구한 압수수색 영장의 기각률은 90%에 이른다. 완전 기각률이 27.3%, 일부 기각률이 72.7%였다. 일반 사건보다 기각률이 10배 가까이 높다. 양 전 대법원장의 자택 압수수색 영장은 네 번이나 기각했다. 서울중앙지법이 법원행정처와 재판연구관실, 양 전 대법원장 자택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기각하면서 내세운 사유는 ‘임의 수사·임의 제출을 진행하지 않았다’  ‘주거 평온을 해칠 수 있다’  ‘행정처 문건이 재판에 영향을 미쳤다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었다. 일반 사건 영장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기각 사유다.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고교·대학 동문인 한 고법부장판사는 임 전 차장이 지난달 15일 검찰에 소환돼 조사를 받고 다음날 새벽에 귀가하자 갑작스럽게 ‘밤샘 수사는 고문’이라며 글을 올렸다. 이러면서도 이중 잣대가 아니라고 강변하는 것은 국민을 우습게 아는 것이다.

직권남용 인정 안 되면 꼬리 자르기로 끝날 수도

검찰은 지난 14일 사법농단의 실무 총책인 임 전 차장을 구속 기소하면서 △직권남용 △공무상비밀누설 △형사사법절차 전자화 촉진법 위반 △허위공문서 작성 △직무유기 △위계공무집행방해 △특가법상 국고 손실 등의 죄목을 적용하고 30여 개 범죄사실을 기재했다. 그 중에서 상고 법원을 추진하기 위해 징용소송과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법외노조 소송, 원세훈 전 국정원장 댓글공작 소송, 박근혜 전 대통령 측근의 특허소송 등을 놓고 청와대 측에 거래를 시도한 의혹, 곧 직권 남용이 핵심 혐의로 꼽힌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재판 거래 의혹’이 형사법상 죄가 되는지, 곧 직권 남용에 해당하는지를 놓고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직권남용죄는 공무원이 직권을 남용해 부하에게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하거나 그의 권리 행사를 방해한 때 성립한다. 그런데 행정처 차장은 법적으로 재판 지원 업무를 할 뿐 재판에 개입할 직무상 권한은 없기 때문에 남용이 성립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여기에다 사법농단 사건을 맡은 판사가 자신의 의사와 다르게 임 전 차장 뜻에 맞춰 판결했다는 것이 증명돼야 하는데 아직 그런 진술을 한 판사는 없다고 한다. 사법농단 수사에 부정적인 일부 보수 언론은 이런 점을 들어 직권남용죄 적용이 쉽지 않다고 동조하는 모습이다. 임 전 차장 역시 구속영장 실질 심사에서 사실 관계를 대부분 인정하면서도 징계 사유는 될지언정 형사처벌을 받을 일은 아니라는 방어논리를 폈다고 한다.

임 전 차장에게 적용된 주요 혐의에는 양 전 대법원장과 박병대 전 법원행정처장 등 대법원의 전 수뇌부가 공범으로 적시돼 있다고 한다. 그런 만큼 직권남용 혐의가 인정되지 않는다면 사법농단의 ‘몸통’인 양 전 대법원장과 전 수뇌부에 대한 수사와 기소는 어렵게 될 개연성이 높다. 안철상 법원행정처장은 사법농단 의혹에 대해 여야 4당이 추진하고 있는 특별재판부 설치와 관련해 위헌 소지가 있다는 입장을 거듭 밝혔다. 특별재판부가 설치되지 않으면 ‘셀프 재판’으로 진행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사법농단 진상 규명과 처벌이 더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사법부 내에는 사법농단 사건이 ‘꼬리 자르기’, 곧 임 전 차장을 사법처리하는 것으로 끝나기를 바라는 세력이 만만치 않다.

‘위헌 고백하고 탄핵 촉구 결의하자’ 제안…다행스러워

다행스럽게도 대구지법 안동지원 판사 6명이 ‘양승태 대법원’ 사법농단에 연루된 현직 판사들에게 헌법에 위반한 책임을 묻기 위해 국회에 탄핵소추를 촉구하자고 제안해 이목을 끌고 있다. 이들은 사법부 구성원 스스로 행한 재판 독립 침해행위에 대해 형사법상 유무죄의 성립 여부를 떠나 위헌적인 행위임을 국민들에게 고백해야 한다고 했다. 직권남용죄가 성립되지 않더라도 위헌적 행위를 한 사법농단 판사들을 탄핵해 퇴출해야 한다는 뜻으로 읽힌다. 이들은 이러한 노력은 사법부를 인권과 정의의 최후의 보루로 여기고 있는 대부분의 국민들에 대한 법관들의 최소한의 실천적 의무라고 했다. 구구절절 옳다.

오는 19일 열리는 전국법관대표회의에서는 이들의 제안을 받아들여 국회에 탄핵 소추 촉구 결의안을 내야 할 것이다. 그래서 사법부의 신뢰 붕괴를 막을 수 있는 첫 걸음이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양승태 사법농단 대응을 위한 시국회의’는 이미 지난달 30일 권순일 대법관과 이규진 이민걸 김민수 박상언 정다주 판사 등 6명을 탄핵 소추해야 한다고 국회에 명단을 제안했다.

헌법 위반 처벌 위해 법 왜곡죄 도입 필요

헌법 제106조 1항은 법관은 탄핵 또는 금고 이상의 형의 선고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파면되지 아니하며, 징계처분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정직·감봉 기타 불리한 처분을 받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처럼 판사들의 신분을 다른 공무원보다 더 엄격하게 보장하는 것은 권력으로부터 독립해 공정한 재판을 하도록 하려는 취지인데 이를 배반한 것이 분명해 보이는데도 처벌을 하기가 어렵다면 국민은 분노할 수밖에 없다. 이는 입법불비다. 심상정 정의당 의원이 발의한 ‘법 왜곡죄’는 재발 방지를 위해서 꼭 필요하다. 법 왜곡죄가 있었다면 탄핵 소추라는 지난한 절차를 밟을 필요도 없고 직권남용죄 성립을 둘러싼 논란도 일지 않았을 것이다. 독일에서 이미 시행 중인 법 왜곡죄는 법관, 기타 공직자 또는 중재인이 법률사건을 지휘하거나 재판을 함에 있어 당사자 일방에게 유리하거나 불리하게 법을 왜곡한 때에는 1년 이상 5년 이하의 자유형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사법부에 대한 민주적 통제 시작해야

판사들은 법과 양심에 따른 독립적 재판을 이유로 외부의 간섭과 통제를 받지 않는다. ‘임명된 권력’으로 국회의원이나 대통령처럼 국민이 선거를 통해 퇴출할 수도 없다. 그런 만큼 다른 집단보다 더 높은 윤리가 필요하다. 그러나 이번 사법농단은 판사들이 일반 계층보다 높은 윤리를 지닌 것이 아님을 보여주고 있다. 아울러 통제받지 않는 권력, 제왕적 권력은 반드시 부패한다는 교훈을 새기게 한다. ‘재판 거래는 없었다’고 강변하는 판사들은 대부분 대법관, 법원장, 고등법원 부장판사 등 고위직이다. 고위 법관일수록 공공적 사회적 객관적 양심을 저버리고 조직 이기주의적 성향을 드러낸 것은 민주적 통제가 미치지 않기 때문이다. 사법 권력 역시 주권자인 국민의 법감정과 건전한 상식을 배반해서는 안 된다. 사법농단의 진상을 철저하게 규명해 관련자들에게 책임을 물어야 환골탈태와 신뢰 회복의 전기가 마련될 수있다. 사법농단 판사들을 탄핵소추하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 헌법재판소가 국회의 탄핵소추를 받아들여 현직 판사들을 파면하면 전·현직 고위 법관들을 형사법으로 처벌할 수 있는 길도 열릴 것이다.

 황진선

 오피니언타임스 공동대표

 전 가톨릭언론인협의회 회장

 전 서울신문 사회부장 문화부장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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