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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맛집 자가 판별법[김경빈의 위로의 맛]
김경빈 | 승인 2018.11.22 09:40

어느 동네에나 맛집은

부산 광안리 인근 주민이 된 지도 벌써 햇수로 4년차다. 부산하면 아무래도 바다 아닌가. 과장 조금 보태면, 집 앞에 유명 관광지를 두고 살아온 셈이다. 익숙하면 소중한 걸 잊는다고 했던가. 매년 여름마다 그야말로 파도처럼 물밀 듯 관광객들이 흘러들면, 그제야 새삼스럽게 깨닫는다. 그래, 여기가 광안리였지.

그러다 보니 밥집이며 술집이며 음식점들이 참 많다. SNS에서 화제가 된 수십, 수백의 핫플레이스부터 현지 주민들에게 평이 좋은 숨은 맛집까지. 나는 입이 짧은 탓에 다양한 맛집을 섭렵하진 못했지만, 그래도 꽤 만족스럽게 애용하는 곳은 있다. 아니, 있다고 믿었다.

광주에서 친구가 온다고 했다

광안리 불꽃축제가 열렸던 지난 10월 말, 광주에서 영어 교사로 재직 중인 고교 동창이 애인과 부산으로 오겠다고 했다. 가장 친한 친구 중 하나여서 반갑기도 했지만, 광주에 갈 때마다 늘 만족스러운 맛집을 소개해주었기에 나도 그에 상응하는 대접을 해야 한다는 약간의 부담감도 있었다. 연락을 받은 후, 읽던 책을 덮어두고 머릿속으로 내가 아는 음식점들을 리스트업하기 시작했다.

10분쯤 지났을까. 당황스럽게도 딱히 맛집이라고 할 만한 곳이 떠오르지 않았다. 분명 혼자서는 만족스러웠던 그 많은 음식점들이, 온통 성에 차지 않는 것이다. 여기는 분위기가 별로고, 저기는 외국인 손님들이 너무 붐비고, 거기는 맛은 있지만 너무 소박하고… 결국 4년을 살아온 광안리에서, 나는 인터넷 검색창에 ‘광안리 맛집’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이래선 광주의 내 친구나, 광안리의 내가 다를 것이 무어란 말인가. 나는 사실 맛집을 모르고 있었던 셈이다. 아니, 정확하게는 맛집의 의미를 모르고 있었다고 해야겠다.

ⓒ픽사베이

일종의 선물 고르기 같은 것

‘나만의 맛집 리스트’ 같은 걸 채워 넣는 일은 순수한 자기만족의 목적만으로는 부족하다. 그런 차원이었다면 내가 그리 고민하고 당황하지 않았을 것이다. 맛집을 선별해내고 기억하는 것은 오히려 일종의 ‘선물 고르기’ 같은 것이다.

우리는 스스로의 만족에 대해 대체로 관대한 성향을 보인다.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분명 있겠지만.) 100점 만점에 80점이나 그 이상 정도만 된다면, 뭐 그럭저럭 괜찮다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하지만 소중한 사람에게 전하는 선물이라면 그럴 수 없다. 80점보단 90점, 90점보단 기왕에 100점짜리를 선물해주고 싶지, ‘대충 이 정도면 되지 않겠어?’하는 마음으로 선물을 고르지는 않는다. 그러고 보면 사람이란 참 다정한 존재가 아닌가. 다른 사람을 자기 자신보다 더 아낄 줄 안다.

자, 진짜 맛집 자가 판별법이다

이쯤 되면 이 글의 제목인 ‘진짜 맛집 자가 판별법’이 무엇인지 감 잡으셨을 테다. ‘내게 소중한 사람,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와도 좋을 것인가’를 자문해보면 된다. 불만스럽지 않은 정도, 그럭저럭 먹을 만한 정도가 아니라 그 사람과 함께 행복한 만족감을 누릴 수 있는 정도인지를 가늠해보는 것이다.

맛, 가격, 인테리어 같은 보통의 요건들에 더해 내가 제시하는 ‘진짜 맛집 자가 판별법’을 시도해야 하는 이유는 또 있다. 이런 마음으로 음식점에 들어서면, 적어도 식사하는 동안은 소중하고도 사랑스러운 누군가를 떠올릴 수 있다. 그 사람의 식성을 되짚으며 메뉴판을 다시 살피게 되고, 둘이 와서 앉으면 좋을 것 같은 창가 자리도 눈도장 찍어두게 된다. 그리움의 맛, 설렘의 맛처럼 막연한 감각들이 새삼 생생해진다. 그렇게 계산을 하고 음식점을 걸어 나오면, 위장의 포만감보다 더 따스하고 든든한 애정이 온몸을 감싼다. 여차하면 대뜸 전화를 걸어 약속을 잡게 될 지도 모른다. 바야흐로 ‘혼밥’의 시대, 그러나 마음속에 함께 맛있는 걸 먹고 싶은 사람, 그리운 사람 한 명쯤 자리 잡고 있지는 않을까.

잊지 말자. 앞으로 맛집을 판별할 때는 ‘내게 소중한 사람,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와도 좋을 것인가’를 따져보자. 덕분에 내게도 그런 맛집들이 하나둘 생겼다. 쌀국수 가게 ‘라이옥’, 중화요리 ‘장가계’, ‘메이친’, 일본식 덮밥 ‘우츠와’, 한정식 ‘친정 엄마’, 카페 ‘We Breath' 등등. 언젠가 부산에 오면 연락하시라. 우리, 서로에게 소중한 인연이 될 수도 있으니까. [논객닷컴=김경빈] 

 김경빈

 글로 밥 벌어먹는 서른. 라디오 작가 겸 칼럼니스트, 시집 <다시, 다 詩>의 저자.

 논객닷컴 청년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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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빈  qlsrudrl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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