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종건의 드라이펜]

[오피니언타임스=임종건] ‘아메리카 퍼스트(America First)’는 ‘아메리카를 다시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과 함께 2016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트럼프 후보가 내세웠던 대표적인 선거구호였다. 이 구호의 힘으로 그는 대통령이 됐다.

아메리카 퍼스트는 미국의 국익을 최우선으로 삼겠다는 것이고, 그래서 미국을 명실공히 세계 최강대국으로 만들겠다는 얘기였다. 국익을 챙기지 않고 강대국 폼만 잡았기 때문에 미국은 빈껍데기 강국으로 전락했다는 주장이었다. 자신이 가난해졌다고 생각하는 많은 미국인들이 여기에 공감했다.

ⓒ픽사베이

인간관계에서도 주먹이 세면 강자로 통한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조폭의 두목에 불과하다. 그가 부자라면 강자의 면모는 한층 공고해질 수 있다. 그러나 그가 돈만 탐하는 사람이라면 모리배로 간주될 것이다.

주먹과 돈은 강자가 되기 위한 필요조건이긴 하지만 충분조건은 못된다. 거기에 인간적인 매력이 더해져야 그는 진정한 강자가 된다. 그 같은 강자의 카리스마는 관용이나 신의와 같은 신사도를 겸비한 사람에게서 우러나온다.

미국이 2차 세계대전 이후 강국으로 군림할 수 있었던 것은 군사력과 경제력에서 최강인 것 외에 미국적 가치에 대한 세계인의 지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미국은 자유민주주의의 선봉이었고, 아메리칸 드림의 나라였다.

미국은 가난과 압제를 피해 이민을 온 사람들의 나라, 그래서 어떤 형태의 권력의 압제를 거부하고, 누구든 열심히 일을 하면 부자가 될 수 있는 기회의 땅이었다. 국민 개개인이 가진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게 하는 나라가 최강국이 되는 것은 자연의 섭리다.

세상의 절반이 공산주의 독재체제로 갈 때 미국은 자유민주주의의 가치를 지켰고, 그 가치를 공유하려는 세력들을 우방으로 삼아 포용하고, 원조를 아끼지 않았다. 2차 세계대전의 교전상대국이었던 독일과 일본까지 도와서 경제대국으로 만들었다.

지금도 미국은 국방력과 경제력에서 여전히 세계 최강국이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의 등장 이후 그가 추구하는 아메리카 퍼스트 정책으로 인해 국제무대에서 미국의 위상은 흔들리고 있다. 특정 이슈에서는 왕따 신세로 내몰리고 있다.

작년 함부르크 G20회의에 이어 지난 12월 1일 폐막된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G20회의에서 미국만 파리기후변화협약 조인에서 빠진 것이 대표적인 예다. 미국은 G20 회원국이 아니라 G19+1의 나라가 됐다.

중국과 러시아와 같은 잠재적 적대국은 물론, 전통적 우방인 유럽의 NATO 회원국들에게도 미국은 경계의 대상이다. 미국의 우방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의 국익을 위해서는 동맹을 버릴 수도 있는 사람으로 보고 있다. 그가 미군이 주둔하는 나라들에 대해 주둔경비를 전액 부담하라고 요구하면서, 그렇지 않으면 미군을 철수하겠다고 위협하는 것이 단적인 예다.

그는 취임 초부터 국내외의 거센 반대에도 불구하고, 멕시코 국경에 불법이민자를 막기 위해 거대한 장벽을 쌓고 있고, 일부 이슬람국가 사람들의 입국을 불허하는 조치를 취했다. 대다수 유엔회원국들이 합의한 파리기후변화협정에서 탈퇴했다.

그는 미국적 민주주의의 핵심 가치인 언론의 자유에 대해서도 불안정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자신에게 반대하는 언론보도에 대해 ‘가짜뉴스’ ‘국민의 적’이라며 싸우기를 일삼는다. 사우디아라비아의 반체제 언론인 카쇼기를 암살한 사우디 왕실에 대해서도 미국의 무기를 구매하는 나라라는 이유로 문제를 삼지 않겠다는 자세다.

무역전쟁에서도 시대착오적인 보호무역주의 방법을 동원하고 있다. 거기에는 피아의 구분도 없어 보인다. 미국 무역적자의 최대 원인 제공국인 중국이 주요 공격목표인 듯하지만 한국을 포함한 우방들도 예외가 없다. 세상의 온갖 불화와 갈등의 한 가운데 미국이 있다.

세상에 국익을 최우선으로 삼지 않는 나라는 없다. 그러나 그것을 추구하는 방법 여하에 나라의 품격이 좌우된다. 양보와 타협, 이익의 조화를 아랑곳하지 않고, 오로지 자국의 이익만을 위해서 좌충우돌하는 미국의 모습은 최강국의 면모와는 거리가 있다. 그런 방법으로 ‘아메리카 퍼스트’를 달성할 수 있을지 몰라도 ‘다시 위대한 나라가 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임종건

 한국일보 서울경제 기자 및 부장/서울경제 논설실장 및 사장

 한남대 교수

 한국신문윤리위원회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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