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청년칼럼 이하연 하의 답장
외부인이 내부인이 되는 과정[이하연의 하의 답장]
이하연 | 승인 2018.12.24 09:53

[논객닷컴=이하연] 출근 3일차. 책 한권이 불현듯 떠올랐다. 무라타 사야카의 <편의점 인간>. 좀처럼 사람들 틈에서 섞이지 못하는 기이한 주인공이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이란 가면을 쓰게 되는 이야기다. 아르바이트생으로서 지켜야 할 언행을 모조리 습득하여 기계처럼 내뱉고 행동하게 된다.

물론 나는 <편의점 인간>의 주인공처럼 이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소설 속 주인공과는 달리 적당히 사회화가 이뤄져 모나지 않게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수준이랄까. 여러 개의 가면을 적재적소까지는 아니더라도 상황에 따라 바꿔 쓰는 능력도 갖추고 있고, 눈치껏 내 에너지를 조절해 사용하기도 한다. 점잖은 분위기에서는 내가 가진 흥을 숨긴다거나, 신나는 분위기에서는 흥을 모조리 드러낸다거나, 하는 식으로. 한 마디로 정상이다.

ⓒ픽사베이

이런 나에게도―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러겠지만―처음은 어렵다. 낯선 곳의 공기를 받아들이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새로 적응해야 하는 공간도 낯설지만 그곳에 서 있는 나 자신도 어색하기 때문. 매일 보는 얼굴이고 몸이지만 왠지 내가 아닌 것 같은 느낌. 모두가 나를 쳐다보고 나에게 한마디씩 말을 건넨다. 나는 고개를 숙이고 필요한 대답만 짧게 한다. 이것이 외부인이 내부인이 되는 첫 번째 관문이다. 낯설어하기. 처음부터 외부인이 내부인처럼 맛깔나게 군다면 어떤 소리를 듣게 될까. 눈치 없다? 나댄다? 물론 나는 처음부터 MC를 자처할 만큼 용기 있고 대담하지 않다.

두 번째 관문, 분위기 살피기. 나는 정보를 뒤져가며 사전 조사하는 스타일은 아니지만, 적어도 직장에서는 그 직장만의 분위기를 살필 필요가 있었다. “눈치를 봐야지!” 해서 그런 건 아니다. 어쩌다 보니 내가 그러고 있더라. 나도 모르게 생존 본능을 발휘한 셈이다. 그곳에는 이미 만들어진 저들만의 체계와 형식, 문화 따위가 있을 것이다. 새 외부인인 나는 그것들을 알고 터득해야 한다. 차츰 차츰 내부인으로 젖어들 준비를 하는 것이다. 그들은 이 행위를 일명 ‘센스’라고 부른다. 그들의 문화를 흐트러뜨리지 않으며 토 달지 않고 빨리 흡수하길 원하는 마음이 담겨있을지도 모른다. 일을 배울 때마다 들리는 말이 있다. “여기에 이것만 더 해주면 좋아요. 일 센스죠, 센스.”

세 번째 관문, 인간관계 훔쳐보기. 흔히들 사내 정치가 있다고 한다. 평소 신문을 볼 때 정치와 스포츠 분야를 건너뛰는 경우가 있는데 읽을 걸 그랬나, 싶었다. 어떤 팀은 어떤 팀과 사이가 좋고, 사이가 좋지 않다. 각 팀의 색깔이 다르기 때문. 여기에서 “왜?”는 중요하지 않다. 외부인이 그것까지 알려면 말을 많이 해야 하는데, 말을 많이 하는 건 여러모로 좋지 않다고 판단된다―사실 낯을 많이 가려서 말도 잘 못한다. 회사에서 ‘친한 친구’이자 ‘내 사람’을 만드는 건 상당히 어려운 일이다. 대학에서도 그랬고. 신입이면 신입답게 잠자코 있는 게 나을 듯하다. 이어서 말해보자면, 팀 별 색깔도 중요하지만 각각의 색깔을 아는 것도 중요하다. 적당하게 관계를 유지하고 상황에 대응하기 위해서다.

일단 세 가지 정도만 얘기하겠다. 아직 입사 3일차 병아리라 더 발견한 사실이 없다. <편의점 인간>의 주인공이 동료들의 표정과 말투를 스캔하고 눈치를 보는 장면이 자꾸 연상된다. 그 주인공처럼 어느새 나도 ‘회사 인간’이 되어있을지도 모르겠다. 한편으론 그런 날이 오길 바라면서도 한편으론 두렵다.

이하연

얼토당토하면서 의미가 담긴 걸 좋아합니다

 

 

논객닷컴은 다양한 의견과 자유로운 논쟁이 오고가는 열린 광장입니다. 본 칼럼은 필자 개인 의견으로 본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하연  slimmey@naver.com

<저작권자 © 논객닷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매체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논객닷컴 | (03163) 서울 종로구 인사동길 12, 대일빌딩 1405호
대표전화 : 070-7728-8569 | 팩스 : 02-722-6500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박종국
제호: 논객닷컴 | 등록번호 : 서울, 아 01778 | 등록일 2011년 9월 27일 | 발행일: 2011년 10월 1일 | 발행ㆍ편집인 : 권혁찬
Copyright © 2019 논객닷컴. All rights reserved.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