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하연의 하의 답장]

[오피니언타임스=이하연] 출근 3일차. 책 한권이 불현듯 떠올랐다. 무라타 사야카의 <편의점 인간>. 좀처럼 사람들 틈에서 섞이지 못하는 기이한 주인공이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이란 가면을 쓰게 되는 이야기다. 아르바이트생으로서 지켜야 할 언행을 모조리 습득하여 기계처럼 내뱉고 행동하게 된다.

물론 나는 <편의점 인간>의 주인공처럼 이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소설 속 주인공과는 달리 적당히 사회화가 이뤄져 모나지 않게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수준이랄까. 여러 개의 가면을 적재적소까지는 아니더라도 상황에 따라 바꿔 쓰는 능력도 갖추고 있고, 눈치껏 내 에너지를 조절해 사용하기도 한다. 점잖은 분위기에서는 내가 가진 흥을 숨긴다거나, 신나는 분위기에서는 흥을 모조리 드러낸다거나, 하는 식으로. 한 마디로 정상이다.

ⓒ픽사베이

이런 나에게도―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러겠지만―처음은 어렵다. 낯선 곳의 공기를 받아들이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새로 적응해야 하는 공간도 낯설지만 그곳에 서 있는 나 자신도 어색하기 때문. 매일 보는 얼굴이고 몸이지만 왠지 내가 아닌 것 같은 느낌. 모두가 나를 쳐다보고 나에게 한마디씩 말을 건넨다. 나는 고개를 숙이고 필요한 대답만 짧게 한다. 이것이 외부인이 내부인이 되는 첫 번째 관문이다. 낯설어하기. 처음부터 외부인이 내부인처럼 맛깔나게 군다면 어떤 소리를 듣게 될까. 눈치 없다? 나댄다? 물론 나는 처음부터 MC를 자처할 만큼 용기 있고 대담하지 않다.

두 번째 관문, 분위기 살피기. 나는 정보를 뒤져가며 사전 조사하는 스타일은 아니지만, 적어도 직장에서는 그 직장만의 분위기를 살필 필요가 있었다. “눈치를 봐야지!” 해서 그런 건 아니다. 어쩌다 보니 내가 그러고 있더라. 나도 모르게 생존 본능을 발휘한 셈이다. 그곳에는 이미 만들어진 저들만의 체계와 형식, 문화 따위가 있을 것이다. 새 외부인인 나는 그것들을 알고 터득해야 한다. 차츰 차츰 내부인으로 젖어들 준비를 하는 것이다. 그들은 이 행위를 일명 ‘센스’라고 부른다. 그들의 문화를 흐트러뜨리지 않으며 토 달지 않고 빨리 흡수하길 원하는 마음이 담겨있을지도 모른다. 일을 배울 때마다 들리는 말이 있다. “여기에 이것만 더 해주면 좋아요. 일 센스죠, 센스.”

세 번째 관문, 인간관계 훔쳐보기. 흔히들 사내 정치가 있다고 한다. 평소 신문을 볼 때 정치와 스포츠 분야를 건너뛰는 경우가 있는데 읽을 걸 그랬나, 싶었다. 어떤 팀은 어떤 팀과 사이가 좋고, 사이가 좋지 않다. 각 팀의 색깔이 다르기 때문. 여기에서 “왜?”는 중요하지 않다. 외부인이 그것까지 알려면 말을 많이 해야 하는데, 말을 많이 하는 건 여러모로 좋지 않다고 판단된다―사실 낯을 많이 가려서 말도 잘 못한다. 회사에서 ‘친한 친구’이자 ‘내 사람’을 만드는 건 상당히 어려운 일이다. 대학에서도 그랬고. 신입이면 신입답게 잠자코 있는 게 나을 듯하다. 이어서 말해보자면, 팀 별 색깔도 중요하지만 각각의 색깔을 아는 것도 중요하다. 적당하게 관계를 유지하고 상황에 대응하기 위해서다.

일단 세 가지 정도만 얘기하겠다. 아직 입사 3일차 병아리라 더 발견한 사실이 없다. <편의점 인간>의 주인공이 동료들의 표정과 말투를 스캔하고 눈치를 보는 장면이 자꾸 연상된다. 그 주인공처럼 어느새 나도 ‘회사 인간’이 되어있을지도 모르겠다. 한편으론 그런 날이 오길 바라면서도 한편으론 두렵다.

이하연

얼토당토하면서 의미가 담긴 걸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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