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성규의 하좀하]

[오피니언타임스=한성규] 작년에 퇴직을 하려고 했는데 끝내 못하고 장기휴가를 받았다. 크게 불만이 없는 직장이었다. 나는 한국인이 이민가고 싶어 하는 나라 5위권 안에 드는 뉴질랜드 주민이었고, 웬만해선 잘리지 않는 뉴질랜드 정부 공무원이었다. 그것도 갑 중의 갑인 국세청 소속이었다. 일도 나쁘지 않았다. 어카운트메니저라고 회계법인 대표들 찾아가서 차나 마시며 새로운 정책에 대해서 담소를 나누거나 회사 대표들 앉혀놓고 세금교육 시키는 일이었다.

회사 동료들과의 관계도 좋았다. 처음에는 어, 얘는 왜 이렇게 생겼지? 중국인 아냐? 하는 반응이었으나, 사람들 살아가는 건 다 엇비슷한지라 한 2년쯤 지나자 다 친구가 되어서 잘 지냈다. 무엇보다 출퇴근 시간이 자유로웠고, 평균적으로 서너 시가 되면 퇴근했다. 한국에서는 업무시간 이외에 카톡이나 전화를 한다고? 뉴질랜드에서 그런 짓 하면 업무시간 끝난 후부터 연락받은 시간까지 근무시간으로 쳐서 1.5배의 월급을 지급해야 한다. 무엇보다 팀장이 나보다 빨리 집에 갔고, 지진 났을 때 직장 오지 말라는 연락 말고는 업무시간 이외에 연락을 받은 역사가 없다.

군대용어로 꿀 중에도 아주 고급품이라는 마누카우 꿀만 빠는 인생을 살고 있었다.

ⓒ픽사베이

뉴질랜드에선 내부고발 같은 숭고한 목적 없는 공무원도 잘 그만둔다

그런 내가 갑자기 퇴직을 하겠다고 했으니 한국에 있는 친구들이 놀란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뉴질랜드에서는 공무원이 내부고발이나 그런 거창한 이유 없이도 잘 그만둔다. 장기 여행을 간다거나 해외 직장경험을 쌓는다고 많이 관둔다. 총리도 출산휴가를 받거나 가족과 시간을 보내겠다고 중간에 그만두는 나라니까. 대통령 하지 말라고, 하지 말라고 해도 끝까지 붙잡고 있다가 강제로 끌어내려져서 감방까지 가는 일은 아마 나라가 망할 때까지 벌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런 내가 그만둔 이유는 하고 싶은 일이 많았고, 하고 싶은 걸 5년 동안이나 참았고, 더 늦기 전에 다하고 죽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고 싶은 일 꾹 눌러가며 해야 하는 일만 하다가 갑자기 가스라도 먹어서 죽으면 너무 억울할 거 같아서 이것저것 계산 없이 결심했다

2019년 새해 돈 안 되는 결심 3가지

먼저 소설책을 쓰기로 결심했다. 그동안 전자책은 두 권 정도 냈지만, 올해에는 정말 종이 냄새 풀풀 나는 책을 낼 생각이다. 벌써 구상은 다 끝내놓았는데, 책상에 앉아서 쓰는 작업은 더디게 진행되고 있다. 이야기라는 게 공상하고 떠벌이고 돌아다닐 때는 즐겁지만 일단 쓰기 시작하면 노동이 되니까. 돈은 안 되겠지만 상관없다.

둘째 사회적기업이라는 것을 해보기로 결심했다. 뉴질랜드 국세청에서 일하면서 기업들의 흥망성쇠를 많이 목격했는데, 사업에서 성공과 실패는 흔히 있는 일이었다. 몇 번 망하든 대박을 터트리든 끝까지 살아남는 자들은 자기가 사업으로 이루고자 하는 목표가 명확한 기업인들이었다. 나는 이런 사람들에게는 핫도그 장사를 하더라도 기업가 즉, 엔터프리너라고 불러주었다. 대한민국 사회에서는 벌써 진부한 말이 되었지만 다 같이 모여서 다 같이 잘 사는 게 목표인 사업을 한다면 계속 행복하게 할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돈이 안 되겠지만 한 10년만 목표를 포기하지 않으면 어느 정도 성과는 분명 있으리라 생각한다.

셋째 행복해지기로 했다. 이건 좀 추상적인 목표라서 좀 구체적인 세부목표들을 세워보았다. 세부목표를 대내적인 목표와 대외적인 목표로 다시 나누어 잡았다. 대내적으로는 잘하는 일보다는 좋아하는 일 하기. 근심 걱정하기보다는 현 시점에서 할 수 있는 일 하기. 시간도 많으니 취미인 책 읽기를 하루에 두 권 정도로 늘려보기, 뭐든지 쌓아놓고 근심하기보다는 버리고 나눠주기.

대외적으로는 화내고 맞서기보다는 일단 피했다가 천천히 수긍하기, 내 이야기를 들어주고 이야기를 듣고 싶은 사람들과의 대화 늘리기. 남에게 보이려고 살지 말고 자기에게 부끄럽지 않게 살기. 건방지게 가르치려 하지 말고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배우기 등등을 정했다. 다 아는 거라고? 말이 쉽지 위에 있는 세부목표 여덟 가지만 지킨다면 확실히 행복해질 것 같다.

돼지와 먹방 크리에이터의 차이점

2019년은 황금돼지해라고 한다. 유튜브 영상을 틀어서 돼지를 한번 검색해봤다. 돼지들은 정말 별 볼일 없는 음식을 맛있게 먹고 꿀꿀 몇 번 하다가 잔다. 아주 행복해 보인다. 돼지라는 검색어에 먹방 크리에이터들도 딸려 나왔다. 맛있는 음식도 아주 전투적으로 먹어댄다. 참 내, 그렇게 먹어야 돈이 된단다. 먹고 살려고 한다는데 그렇게 억지로 먹고 살면 과연 행복할까? 즐거운 일을 하더라도 남을 의식하기 시작하는 시점부터 업이 되는 것임을 왜 모르는가.

나와 비슷한 시기에 외국계 회사에서 퇴사한 한국 선배가 있다. 어떻게 사냐고 물으니 이것저것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나보고 뭐하냐고 묻기에, 그동안 읽고 싶었는데 못 읽었던 책을 하루에 두 권 정도 읽고 글도 쓰고 여행도 다니고 한다고 했다. 그러니까 그런 것 말고 뭐 하는 일이 없냐고 다시 물어본다. 돈 되는 일은 어떤 걸 하느냐고 묻는 것이었다. 그제야 나는 아무것도 안 한다고 답해 주었다.  이제 대한민국은 먹고사는 문제는 어느 정도 해결됐다. 하지만 아직도 대한민국 사람들은 더 잘 먹고 더 잘살려고 걱정하고, 서두르고 무리하고 전전긍긍하고, 서로 비난하고 경쟁하고 싸운다.

2019년 새해 결심을 퇴사로 잡으신 분들에게 한마디만 하고 마치려고 한다. 퇴사하면 당분간이라도 돈 안 되는 일 좀 해보라고. 퇴사하고도 돈 벌려고 억지로 먹고 살면 회사 다니는 것과 별 다를 게 없다. 거창한 일이나 돈이 되는 일 좀 안하면 어떤가. 등 따시고 배부른 게 장땡이라는 내가 아주 좋아하는 한국말도 있다. 새해에는 주위의 한국 사람들이 다들 좋아하는 일을 조금씩 늘려가며 좀 행복해졌으면 좋겠다. 

한성규

현 뉴질랜드 국세청 Community Compliance Officer 휴직 후 세계여행 중. 전 뉴질랜드 국세청 Training Analyst 근무. 2012년 대한민국 디지털 작가상 수상 후 작가가 된 줄 착각했으나 작가로서의 수입이 없어 어리둥절하고 있음. 글 쓰는 삶을 위해서 계속 노력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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