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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통근버스를 타는 까닭[고라니의 날아라 고라니]
고라니 | 승인 2019.01.17 11:00

[논객닷컴=고라니] 매일 아침 7시, 사당역 10번 출구 앞은 통근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서늘한 입김으로 가득하다. 피곤한 몸을 버스에 싣고 두 시간 가량을 좁은 의자에서 보내야 하는 이들이다. 가끔 운이 좋아 옆자리가 빌 때도 있지만 보통은 빈자리 없이 빽빽하게 앉아서 간다. 세상 혼자 사는 쩍벌남이 옆에 앉기라도 하는 날에는 몸이 닿는 불쾌한 느낌에 선잠도 들지 못한다.

통근버스로 출퇴근한다는 말에 천진한 친구들은 달달한 로맨스를 떠올리며 눈을 반짝이기도 한다. 아마 종착지가 스키장이나 놀이공원이 아니라 사무실이라는 사실을 간과했기에 가능한 발상인 것 같다. 버스의 분위기는 흡사 도살장으로 향하는 돼지우리와도 같은 것. 다들 예민하고 피곤한 상태에서 싸움이나 안 나면 다행이다. 웅크린 몸만큼 마음도 작아진다.

ⓒ픽사베이

길 위에서 보내는 시간이 아까워 처음에는 여러 가지 시도를 했다. 그러나 흔들리는 버스에서 무언가에 집중하기란 굉장히 어려운 일이었다. 야심차게 산 이북리더기는 일주일 만에 서랍 속에 처박았고, 영어 리스닝 파일은 자장가로 변질됐다. 결국 생산적인 활동은 포기하고 창 밖 풍경을 감상하며 경건한 명상의 시간을 보내게 됐다. 그러니까 멍 때리고 있다는 의미다.

차가 유난히 막히거나 길이라도 잘못 드는 날에는 회사에 제시간에 도착하지 못할 때도 있다. 통근버스를 타는 순간부터 업무가 시작된 것이나 다름없다는 상식은 아직까지는 일부 직원들만의 상식이다. 한 시간 일찍 출근하고 퇴근 후 회사 사람들과 술을 마시는 생활리듬에 익숙한 일부 상사들은 통근버스를 타는 직원들에게 회사 근처에 집을 구할 것을 종용하기도 한다. 거주비가 지원되는 것도 아닌데 보증금이며 월세 부담은 어차피 너네 사정이라는 식이다.

금전적인 문제는 논외로 하더라도 회사 근처에 산다는 건 말처럼 쉬운 문제가 아니다. 나도 허리디스크 걱정하며 소중한 시간을 길바닥에 버리고 싶진 않다. 그러나 거주지를 옮겼을 때 포기해야 할 것들을 생각하면 통근은 언제나 최악이 아닌 차악이다. 입사 전까지만 해도 회사가 시골에 있다는 말에 누렁이가 뛰노는 논밭이나 낚싯대가 드리워진 한적한 호숫가를 떠올렸다. 그런데 막상 와보니 황량한 허허벌판에 처량하게 서 있는 몇몇 건물들과 저 멀리 보이는 회색빛 아파트 단지가 전부였다. 미세먼지는 서울보다 심하고, 공사장 먼지까지 더해져 하늘은 어두웠다. 영화관이 금방 들어온다는 소문만 몇 년째 무성했고, 몇 안 되는 카페에는 늘 회사 사람들이 출몰해 금단의 구역으로 지정된 지 오래였다.

문화시설이나 밥 먹을 곳이 마땅찮은 건 감수할 수 있다. 영화는 집에서 보면 되고 밥도 직접 해 먹으면 그만이다. 절친한 지인들과 근교로 나가 고라니 같은 야생동물과 조우하는 것도 나름 즐겁다. 그러나 개인의 취향을 조정하며 삶의 질을 유지하는 노력은 아이가 생기기 전까지만 유효하다. 초등학교에서 걸어서 10분 거리에 “애인이 맨날 바뀝니다!”라는 간판이 달려 있는 유흥업소가 성행하는 모습을 봤을 때 느낀 경악스러움은 도저히 잊을 수가 없다. 교육 인프라가 열악한 것은 물론이고 제대로 된 병원도 없어 한밤중에 아이가 갑자기 아플 땐 차로 한 시간 거리에 있는 도시로 달려가야 한다. 그렇다고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산과 들이 있는 것도 아니고, 대부분 타지 사람이라 이웃들 사이에 넉넉한 인심이나 정을 기대할 수도 없다.

결국 회사 근처에 집을 마련한 사내부부들조차 아이가 유치원에 들어갈 즈음에는 다른 도시로 이주하는 경우가 많다. 나 하나가 아닌 가족의 삶을 생각했을 때 장거리 통근을 하며 몸으로 때우는 편이 낫다는 결론을 내린 것이리라. 그래서 회사 주변에 사는 사람들은 주로 미혼 남녀이거나 “삼대가 덕을 쌓아야 나처럼 살 수 있지”라며 씁쓸히 미소 짓는 나이 지긋한 주말부부일 가능성이 높다.

집으로 돌아가는 통근버스는 유난히 고요하다. 창틈으로 새어드는 고속도로의 소음조차 피로와 졸음이 가득한 머리들 사이에 내려앉을 곳이 없다. 상사에게 형편없이 깨졌거나 골치 아픈 업무를 마무리 짓지 못해 구겨진 마음으로 통근버스에 올랐다 해도 괜찮다. 버스가 다시 사당역에 돌아왔을 땐 이미 모든 감정이 소화돼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통근버스의 가장 큰 장점인지도 모른다.

오늘도 통근버스는 집과 회사의 경계 너머로 사람들을 실어 나른다. 

고라니

칼이나 총 말고도 사람을 다치게 하는 것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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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라니  88thre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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