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호의 멍멍멍]

[오피니언타임스=이광호] 습작생들에게 등단만큼 간절한 소망이 또 있을까. 내 이름과 작품이 신문에, 문예지에 실리는 경험은 상상만으로도 짜릿한 일이다. 하지만 이런 등단제도에 균열의 징후가 보이기 시작했다. 등단을 거부하는 작가들이 나타나고 있다. 문단 내 성폭력, 표절논란, 문단 권력 등 문단 내부의 문제들이 계속되는 가운데, 등단을 거치지 않고도 글을 쓰고 책을 낼 수 있는 경로가 다양해졌기 때문이다. 기존 한국문학에 피로감을 느끼던 독자들의 호응 또한 그들의 존재에 힘을 보태고 있다.

©픽사베이

등단제도의 균열

독자들은 새로운 작품을 찾는다. 좋은 작품이라 해도 비슷한 내용, 비슷한 문장, 비슷한 전개가 반복된다면 지루함을 느낄 수밖에 없다. 하지만 등단제도는 실험적이고 도전적인 작품의 수상이 어렵다. 여러 차례의 투표를 거쳐 심사위원 다수의 지지를 받아야 하는 선정 과정 때문이다. 전복적이고 도전적 작품이 예선에 통과한다 하더라도 결심까지 도달하는 과정에서 탈락할 가능성이 높을 수밖에 없다. 물론 이런 문제들을 개선하기 위한 노력이 없는 것은 아니다. 민음사는 과감히 공모제를 폐지하고 새로운 형태의 문예지 ‘릿터’를 창간했다. 은행나무 또한 문예서평지 ‘악스트’를 창간하는 등 문단 내에서도 변화를 꾀하고 있다.

등단제도가 문학의 재생산에 긍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신춘문예와 문예지 공모전 같은 등단제도는 문학의 내용과 질마저 제한한다. 작가 지망생들은 심사위원의 입맛에 맞는 글을 쓰기 위해 일명 ‘등단용 글쓰기’를 수련한다. 그러다보면 자신의 개성을 점점 잃을 수밖에 없다. 등단 이후 익숙해진 패턴에서 탈피해 전혀 다른 글을 쓰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다보니 ‘한국문학은 거기서 거기다’, ‘뻔하다’, ‘재미없다’는 이야기가 나오게 된다. 문단 내에도 문학성과 파격을 함께 겸비한 작가와 작품들이 분명 존재하지만 독자들의 갈증을 채워주기에는 부족한 실정이다.

독자와의 직접 소통

공모전이나 신춘문예를 거치지 않을 방법은 없을까. 이슬아 작가는 이메일 구독 시스템을 통해 독자들을 만났다. 구독료 1만원을 내면 한 달 간 직접 에세이를 보내주는 프로젝트였다. SNS를 통해 홍보하고 직접 이메일을 통해 원고를 보냈다. 1만원의 구독료가 쌓여 학자금 대출 2천 500만원을 다 갚는 성과를 거뒀다. 작성한 원고를 모아 <일간 이슬아 수필집>도 독립 출판했다. 대형서점에는 입고하지 않아 독립서점을 통해서만 구매할 수 있는 번거로움이 있었음에도 4천부 이상이 팔렸다. 등단을 거치지 않은 작가라 하더라도 좋은 글의 진가를 독자들이 먼저 알아본 것이다. 이에 문학동네에서도 18년 10월 25일 이슬아 작가의 글과 그림을 엮은 『나는 울 때마다 엄마 얼굴이 된다』를 출간하였다. 등단을 거치지 않았다 하더라도 그의 글이 가지고 있는 문학성을 문단에서 인정한 셈이다. 동시에 동네책방이 선정한 2018 올해의 독립출판에도 선정되었다.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한 성장과 출판

김동식 작가는 주물노동자였다. 80년대 문단이 아닌 독자들이 노동시를 찾았듯이 김동식 작가의 작품 또한 독자들이 먼저 알아보았다. 그는 인터넷 커뮤니티 ‘오늘의 유머’에 2016년 5월 13일에 첫 작품을 올렸고, 1년 6개월 동안 약 300편이 넘는 글을 썼다. 3~4일에 한 편씩 글을 내놓는 엄청난 속도였다. 맞춤법, 문장, 스토리 등에 대한 독자들의 댓글은 다음 작품에 반영되었다. 작가 혼자 글을 써 완성한 후 독자에게 발표하는 기존의 방식과는 분명 다른 것이었다. 김동식 작가의 글은 『대리사회』의 작가인 김민식 작가의 눈에 띄어 출간 제의를 받아 5권의 소설집으로 출판되었다. 소설 교육은 물론 등단을 거치지 않고도 단행본을 출간한 작가가 되었다. 김동식의 소설은 2018년 8월 기준 1권 『회색인간』이 4만 부, 2권 『세상에서 가장 약한 요괴』가 8000부, 3권 『13일의 김남우』가 8000부, 4권 『양심고백』이 4000부, 5권 『정말 미안하지만, 나는 아무렇지도 않았다』가 4000부 팔렸다.

등단제도 정면 거부

백인경 작가는 <우리의 꿈은 ‘등단’이 아니다>라는 텀블벅 프로젝트를 통해 「서울 오면 연락해」시집을 출간하였다. 좋은 시를 규정짓는 기준과 시인의 자격을 부여할 수 있는 이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며 시작된 미등단 시인 출간 프로젝트이다. 백인경 작가는 텀블벅 스토리를 통해 “‘등단’은 심사위원의 취항이며 제도일 뿐이다. 좋은 작가를 선택하는 것은 오롯이 독자의 몫이다. 나의 꿈은 ‘정식 시인’이 아닌 ‘좋은 시인’입니다.”라고 밝히며 등단제도를 공개적으로 거부하는 입장을 밝혔다. 해당 프로젝트는 후원자 164명, 263만 5500원의 후원금을 모으며 후원 목표를 초과 달성하는 데 성공했다. 등단제도만이 좋은 시를 규정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데에 164명이 목소리를 모은 것이다.

그럼에도 문학은 필요하다

한국문학이 대중들의 흥미를 끌지 못하는 건 최근의 일이 아니다. 문학보다 더 재미있는 것들이 넘쳐나는 시대다. 문학을 찾는 독자는 그리 많지 않다. 문학의 위기라는 말은 오래전부터 있었다. '문학을 읽는' 독자들도 자신만의 기준으로 좋은 책, 좋은 글을 찾는다. 그럼에도 문단은 등단제도를 고수하고 있다. 좋은 작품이 무엇인지 선정하는 기준을 문단이 독점할 수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기존의 문인들이 상금을 위해 복수 등단을 하는 경우도 빈번하다. 그러다보니 신인들이 문단에 진입하기 점점 더 어려워지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등단제도가 본래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문학의 본질적 문제는 읽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한국문학 시장을 넓히지 못하면 독립출판도, 기존의 문단도 지속될 수 없다. 등단하지 않았다고 문단에서 배척할 필요는 없다. 기본적인 문장력과 문학성을 가지고 있는 작가라면 문단 내에서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자세를 보여주어야 한다. 실력 있는 신인 작가들이 성장할 수 있도록 비평, 인터뷰 등에 나서 각자의 역할에 충실하면서도 협력의 가능성을 보여주어야 한다. 미등단 작가들의 작품이 문단 내로 진입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려 있어야 문학의 다양성이 살아날 것이다.

문단은 작품성, 문학성, 대중성을 겸비한 작품을 만들어 낼 수 있는 토양을 마련하고, 그 땅위에 신인 작가들이 새 씨앗을 뿌려 한국문학에 신선한 결실을 가져오는 그런 날을 기대해본다.

 이광호

 스틱은 5B, 맥주는 O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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