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미주의 혜윰 행]

[오피니언타임스=최미주] 학원에서 겨울 캠프를 갔습니다. 겁이 많아 놀이기구를 잘 타지 못하고 물놀이도 즐기지 못하지만 아이들이 좋아 따라간다 약속했습니다. 하루는 종일 놀이기구 탄 후 삼겹살 파티. 다음날은 집 갈 때까지 워터파크에서 놀기. 이 모든 걸 소화하기 위해선 상당한 체력과 책임감, 용기가 필요했습니다.

자이로드롭 앞에서 도망가는 나를 보고 아이들은 개그라도 보듯 웃어댔습니다. 한 번만 같이 타면 안 되냐 졸라댔으나 자신이 없었습니다. 조금만 더 어렸어도 눈 찔끔 감고 도전했을 법한데 어느 순간 점점 더 겁쟁이가 되어가는 자신을 마주하니 좀 씁쓸하더군요.

다음날 워터파크에서도 놀이동산과 유사한 상황이 반복됐습니다. 음흉하게 웃으며 뒤를 졸졸 따라다니는 아이들의 속셈을 이미 알고 있었죠. 키, 덩치가 상당한 녀석들의 목표는 나를 물에 빠트리는 것. 물에 빠진 생쥐 꼴을 보여주는 것도 싫지만 그보다 물 먹는 게 너무 무서웠습니다. 코에 물이 들어와 머리가 아프고, 꿀꺽꿀꺽 물을 먹는 그런 고통이 떠올랐기 때문이죠.

ⓒ픽사베이

마지못해 워터파크 내에 있는 미끄럼틀을 타기로 했습니다. 두 명씩 짝지어 타는 미끄럼틀 두 개, 혼자 구명조끼를 벗고 타는 미끄럼틀 하나가 있었습니다. 5명이라 한 명은 혼자 타야 하는 상황. 멋있게 선생님이 혼자 탈게라고 말하지 못했을 뿐더러 혼자는 절대 타지 못한다고 어리광을 부렸습니다.

미끄럼틀 앞에선 앞자리에 타지 않겠다고 또 한 번 떼를 썼습니다. 참 어른답지 못한 모습에 스스로 부끄럽기도 했으나 무서운 건 어쩔 수 없으니까요. 그런데 친절한 안전요원이 체중이 적은 사람이 앞에 타야 한다며 나를 앞자리로 옮깁니다. 가슴이 콩닥콩닥했습니다. 앞으로 어떤 세상이 내 눈앞에 펼쳐질까.

미로 같이 어두운 공간을 ‘아~’ 소리와 함께 내려가며 물을 잔뜩 먹었습니다. 정신 차리기도 전에 튜브가 뱅글뱅글 돌아 코까지 물이 들어왔지요. 심지어 무게를 잘못 잡았는지 튜브는 뒤로 내려가기 시작했습니다. 도착 지점에서는 튜브에서 내리다 물에 철퍼덕 빠져버리기까지 했죠. 그 영향으로 내 뒤에 탔던 중학생 현민이도 풍덩 빠져 물을 잔뜩 먹었고, 우리는 깔깔 웃어댔습니다.

다음은 다른 학생과 미끄럼틀을 한번 더 타기로 했습니다. 처음보단 긴장감이 덜 했습니다. 이젠 경로를 다 알고 있기 때문이죠. 앞자리에 타고 내려가며 전과 똑같이 물을 먹었습니다. 미끄럼틀도 똑같이 정신없이 돌았습니다. 그러나 안정적으로 착지했습니다. 튜브 위에서 차분히 버티는 법을 배웠기 때문이죠.

그렇게 아이들과 웃고 즐기며 1박 2일이 흘러갔습니다. 1인용 미끄럼틀은 끝내 타지 못했습니다. 구명조끼, 튜브 아무 장비 없이 혼자서 기구를 즐길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죠. 겁쟁이라 해도 어쩔 수 없습니다. 겁쟁이가 맞으니까요. 누군가 그랬습니다. ‘나이를 먹을수록 할 수 있는 일이 많아지지만, 스스로 안 하게 되는 일도 더 많아 진다’고.

사실 미끄럼틀 타기도 함께할 아이들과 튜브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 아닐까요? 나이를 먹을수록 점점 겁쟁이가 되는 이유는 경로를 모르는 미끄럼틀이 예고 없이 눈앞에 등장하기 때문이란 생각이 듭니다. 혹은 미끄럼틀에 탄 적도 없는데 이미 미끄럼틀 속을 헤매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기도 하죠. 한 번 들어가면 끝날 때까지 나올 수 없는 공간에서 아무런 장비 없이 혼자 낑낑대며 물을 먹고, 빙빙 돌면서.

올해는 또 어떤 미끄럼틀이 우리들을 기다리고 있을지 궁금하면서도 겁이 납니다. 이전과 유사한 경로의 미끄럼틀이 나타나면 긴장이 덜 되지만, 전혀 다른 미끄럼틀을 보면 겁이 나 어서 빠져 나오고 싶겠죠. 하지만 ‘그래봤자 미끄럼틀!’이라는 생각으로 꿋꿋이 견디기 위해, 스피드를 즐기기 위해 마음을 다잡으려 합니다.

다들 미끄럼틀 탈 준비되었나요?

최미주

일에 밀려난 너의 감정, 부끄러움에 가린 나의 감정, 평가가 두려운 우리들의 감정.

우리들의 다양한 감정과 생각들이 존중받을 수 있는 ‘감정동산’을 꿈꾸며.

100가지 감정, 100가지 생각을 100가지 언어로 표현하고 싶은 쪼꼬미 국어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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