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영인의 정화수]

[오피니언타임스=도영인] 내가 나 자신을 잘 알고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보통 자신에 대해 개인이 가진 자아정체감은 다른 사람 눈에 비추어진 모습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자기를 잘 안다고 생각하는 가족친지들이나 다른 사람들의 생각이나 의견과는 별도로 자신을 스스로 마음 속 깊이 비추어 보고 진정한 자기 모습을 확인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정말 진솔하게 행복한 사람일 것이다.

직업이나 기타 활동분야에서 거의 최상수준에 달하여 크게 성공했을 경우에도 자기 자신을 정말 잘 알지 못하면 누구나 삶의 여정에서 부지불식간에 커다란 위험에 처할 수 있다. 만약에 내 에고가 한 순간에 의도하지 않게 내면의식을 장악하게 된다면, 이루고자 하는 일에 부정적인 결과가 초래되거나 자신이 몸담고 있는 가족이나 조직 내 인간관계에 나쁜 힘을 실어주게 되고 만다. 우리 안에 인간적인 에고 혹은 小(소)자아가 자리 잡고 있는 한, 내면에서 화산처럼 돌출하는 화를 이기지 못하는 탓에 오랫동안 쌓아 온 인간관계나 경력, 심지어 다른 사람의 목숨까지 파괴시키는 경우가 있다. 모든 사람의 내면에 있는 낮은 자아 혹은 소아(self)가 자신의 가장 큰 적이 되기도 한다는 사실은 자신의 느낌이나 생각을 어느 정도 살펴보면 누구나 어렵지 않게 알아챌 수 있다. 내가 평소에 어떤 표정을 습관적으로 짓고 있는지, 어떤 말이나 행동 혹은 동작을 부정적인 방식으로 하는지 살펴볼 수 있다면 나라는 사람의 진정한 모습을 자신의 마음속에 스스로 비추어 볼 수 있게 된다.

소위 ‘뚜껑이 열린다’라는 속된 표현은 자기 내면에 언제라도 성낼 수 있는 폭발 직전의 충동적인 성향이 통제되지 않고 있다는 말이 된다. 일생을 걸쳐 가슴 속에 언제 솟구쳐 터져 나올지도 모르는 화산을 묻어두고 산다는 것은 자기뿐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도 큰 위험을 주는 일이다. 보통 가정이나 직장에서 허용되지 않는 비윤리적이거나 비도덕적 성향을 억누르고 사는 일은 일반인들도 비교적 잘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런데 남으로부터 크게 비난받을 위험이 비교적 적은 일로서 화를 못 참고 소리 지르거나 엉뚱하게 아무것도 모르는 애완동물을 발로 걷어차는 등 성질을 내는 일은 흔히 볼 수 있는 행동이다. 자살을 시도하거나 다른 사람 목숨까지 해하는 극단적인 일을 벌이는 사람은 매우 드물지만 습관적으로 아이들한테 화내거나 자기보다 힘없는 위치에 있는 사람에게 욕설을 퍼붓는 등 불쾌하고 험한 행동을 습관적으로 하는 사람들은 훨씬 많다.

가장 낮고 천박한 것은 다른 것이나 다른 사람이기보다는 오히려 자기 안에 있는 소아적 에고라는 것을 아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므로 이것을 영적인 지도자들이 일반인들보다 먼저 깨달은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고타마 부다(Gautama Buddha)도 자기 자신을 정복하는 사람이야말로 모든 정복자 중에서 가장 위대하다고 하였다. 필자는 이러한 부처님의 말씀을 자기 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볼 수 있는 가능성이 누구에게나 열려있다는 가르침으로 이해한다. 이 희망적인 역량은 명상 등 자기계발을 위한 노력을 습관화함으로써 더욱 커지는 것으로 보인다. 자신의 소아적인 성향과 욕망에 사로잡히지 않고 열정적인 에고를 스스로 통제하는 것은 보다 신성한 내 안의 ‘님’ (대아, Self)이 자기 자신 안에 자리 잡을 수 있는 영역을 확장시키는 일이 된다. 우리 사회에서 흔히 보게 되는 갑질이나 왕따 같은 악습이 없어지려면 먼저 자신의 내면을 가라앉히는 의도적인 통찰력이 필요하다. 물질적인 풍요로움을 한국보다 훨씬 더 일찍 이뤄낸 선진국에서 요즘 흔히 하는 자기계발의 형태로서 온갖 종류의 명상이 유행하고 있다. 미국의 경우에 학령 전 아동들에게 명상을 가르치는 상류층 유치원도 생겨났다.

생각해보면 참 좋은 세상이다. 자신의 내면을 통찰하는 일이 옛날처럼 산에 들어가서 자기계발에 정진하는 도인들 혹은 수도원이나 절에서 정신세계에 집중하는 소수 수행자들에게만 가능한 일이 더 이상 아니다. 특정 종교가 없는 일반인들까지 손쉽게 할 수 있는 다양한 수행법이 유튜브 동영상이나 인터넷강의를 통해 전 세계적으로 접근가능하게 되었다. 다행히 우리나라에서도 명상이 실제 생활에서의 대인관계나 인지지능향상에 도움이 된다는 과학정보에 힘입어 명상의 생활화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 증가하고 있는 추세이다.

물질문명의 혜택을 평안하게 누리면서 동시에 자아의식계발에도 많은 시간을 투자하는 삶을 선택하는 일이 전보다 용이해졌다. 하루 종일 식구들을 위해 음식 만들고 빨래하고 청소하느라 자기계발을 위해 시간내기가 어려웠던 가정주부들까지도 의도하기만 하면 얼마든지 집에서 내 안의 행복을 가꾸기 위한 노력을 실천할 수 있게 되었다. 세탁기, 청소기, 온갖 편리한 요리도구, 더군다나 간단히 데우기만 하면 한 끼 식사가 되는 포장음식 등이 흔한 세상에서 누구라도 원하기만 하면 자기만의 조용한 시간을 내기가 옛날보다 훨씬 쉬어졌다. 물론 남녀노소 누구나 다 스마트폰 잡고 할 수 있는 게임이나 드라마 등 시간낭비의 유혹도 몇 배 더 많아진 것이 사실이지만 주어진 시간을 어떻게 쓸까에 대한 선택의 여지도 커졌다.

인격이나 의식수준에 관계없이 누구나 다 자기 몸을 지탱하기 위해 먹어야 하고 몸을 움직여서 의도하는 대로 자기 삶을 운영해야 하는 것이 인간의 조건이다. 인간이 가진 동물적인 본능이나, 물질중심적인 자아정체성은 우리의 삶을 고집스럽게 이기적인 에고 혹은 小我(소아)에 묶어두는 경향이 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갖고 있는 이 속성을 부정할 수 없다. 진실하지 않은 거짓, 자비롭지 못한 잔인성을 마음대로 표출하고 살 것인지, 아니면 좀 더 자애로운 큰 자아(Self)를 선하고 자유롭게 표출하면서 살 것인지를 결정하는 일은 각자의 몫이다. 모든 사람들의 깊은 내면에 숨겨져 있는 보다 높은 정신적 본체 혹은 타고난 신성은 우리를 소아적인 제한성에서 자유롭게 할 수 있다.

만약 내 안에 있는 소아(self)가 주인이 되어버렸다면 내면의 진정한 대아(Self)인 영원한 ‘님’의 목소리를 어디에서 찾을 것인가? 신체 상태나 사회적 지위 등 겉모습에 가려져 있는 내면의 의식세계를 들여다보고 진정한 자아정체감을 높은 수준으로 고양시키는 일은 직업의 귀천을 가리지 않고 남녀노소 누구나 일생에 걸쳐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다. 하층민으로 태어나서 15세기 인도사회에서 평생 베 짜는 일을 생업으로 먹고 살았던 카비르(Kabir)는 영혼을 일깨우는 영성적 시를 써낸 시인으로서 더욱 유명하다. 평범한 삶 속에서 영성적 수행과 먹고 사는 생업이 다르지 않고 하나로 융합된 삶을 살아 낸 이 신비주의 시인은 “님은 내 안에 계시고 그대 안에도 계신다”라고 노래하였다. 이처럼 먼저 자기 자신이 고귀한 존재라는 것을 앎으로써 다른 사람의 존엄성도 인정하게 된다.

문제는 사람은 인간사회라는 탁한 물속에 사는 물고기와 같아서 자기도 모르게 오염된 의식세계에서 헤엄치게 된다는 사실이다. 너나 나나 할 것 없이 누구나 오염된 공기를 숨 쉬고 살아야 하는 미세먼지 세상의 비극이 우리가 만들어 낸 보이지 않는 의식세계에도 적용이 된다. 한국 사회가 만들어 낸 이기적인 생활습관의 산물인 쓰레기더미를 가난한 나라에 보내버리면 그 쓰레기가 저절로 처리되지 않는 것처럼 자기 의식세계에서 만들어낸 크고 작은 문제들은 그 생각의 본질을 온전히 바로잡을 때까지 그냥 없어지지 않는다. 우리가 이미 쓰레기처리 역량을 넘어선 세상에 살고 있는 것처럼, 만약 우리 존재 그 자체가 문자 그대로 질투와 시기, 경쟁과 실패감 등 혼탁한 생각과 불행한 느낌의 조류에 물들어 있다면 이제는 카비르가 노래한 내안의 소중한 ‘님’까지 오염된 것이 아닐까?

페르시아가 낳은 신비주의 시인 루미(Rumi)는 숨어있어 잘 보이지 않는 적에 대해 스스로 뚜렷이 깨닫고 있어야 한다며 “너의 가장 나쁜 적은 네 안에 숨어 있다네, 그 적은 바로 너 자신 [“nafs” (self)] 혹은 잘못된 에고(ego)라네”라고 경고한 바 있다. 가짜뉴스처럼 해롭기까지 한 정보의 홍수에 내몰리는 세상에서 내 안의 ‘님’을 제대로 지키고 살려면 자기 자신과의 대화시간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아이구, 나도 모르겠다’라거나 다른 사람들 하는 대로 별 생각 없이 따라가다 보면 의도하지 않은 오염된 세상에서 헤어나기 어렵게 되고 만다. 결국 깨끗하지 않은 세상은 깨끗하지 않은 마음들이 만들어 낸 집단의식수준의 비극일 뿐이다. 평화롭지 못한 인간관계나 국제분쟁도 오염된 이념과 편파적인 믿음에서 출발한다.

혼탁하고 불안정한 세상에 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빛의 세계가 내 안에서 확장되는 느낌을 일상생활에서 점점 더 자주 경험할 수 있는 생활전략은 무엇일까? 우리는 스스로 하는 결정과 선택을 통해서 천국도 경험하고 지옥의 맛을 보기도 한다. 물론 내 몸이 타의에 의해 고문을 당하는 경우에 살아있다는 그 자체가 바로 지옥으로 변하게 되겠지만 평범한 일상생활에서는 어떤 상황에 대한 부정적인 감응이나 자신이 자발적으로 습관화한 불행을 자초하는 생각들로 인해 스스로를 괴롭히는 경우가 더욱 흔하다. 이유야 어찌되었든 적대감이나 미움으로 가득한 사람이 행복할 수 없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사회적 불의에 맞서서 싸우는 경우에도 자신의 마음을 원하는 대로 통제하고 지킬 수 있다면 평화로운 문제해결에 훨씬 더 효과적으로 될 것이다. 우리가 우리 안에 웅크리고 있는 동물적인 성향에 희생물이 되도록 스스로를 허용한다면 얼마나 슬픈 일인가?

특별히 신앙심이 깊거나 특정 종교단체에 속하는 경우가 아니더라도 누구나 다 자기 자신을 보호하고 좀 더 밝고 행복한 삶을 살 역량을 가지고 있다. 평소에 기도하거나 경전을 읽는 습관이 없는 평범한 세속인들도 얼마든지 자신 속에 내재한 밝음을 알아차릴 수 있다. 내 마음의 주인으로서 내가 나의 의식세계를 밝고 고요하고 올바르게 챙기려는 의도는 누구나 명상 등 자기계발 노력을 통하여 습관화할 수 있다. 기공명상이나 걷기명상 등 여러 유형의 자기계발은 누구나 다 혼자서, 그리고 이왕이면 여럿이서 다 함께 할 수 있는 실천의 문제일 뿐이다. 필자는 오늘도 겸손한 자세로 끊임없이 애쓰는 내 마음의 주인이 되고자 다짐한다.

도영인

한 영성코칭연구소장
영성과 보건복지학회 고문,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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