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태의 우리 문화재 이해하기] 문화재의 이름에는 저마다의 특징이 있다

[오피니언타임스=김희태] 역사와 관련한 탐방을 다니다 보면 다양한 문화재를 접하게 된다. 처음 문화재를 접할 때 주목해서 보는 건 문화재의 이름이다.

우리가 각자 이름을 가지고 있듯 문화재도 불리는 명칭이 있는데, 자세히 보면 일정한 규칙이 있는 편이다. 보통의 경우 문화재 앞에 지역명이 붙는 것이 일반적이다. 가령 신라 왕릉의 경우 '경주(지역) + 무열왕릉(문화재)'하는 식이다.

안동 운흥동 오층전탑, 이름을 통해 지역과 소재지, 문화재의 특징을 알 수 있다. Ⓒ김희태

또한 사찰의 경우 '경주(지역) + 불국사(문화재)'로 불리는데, 가령 불국사 내에 문화재가 있을 경우 '경주(지역) + 불국사(문화재 소재지) + 삼층석탑(문화재의 외형, 재질)'으로 불린다. 반면 사찰의 이름을 모를 경우 소재지의 지명을 따서 불린다.  '경주(지역) + 장항리사지(지명, 문화재)'의 사례를 들 수 있다. 또한 탑이 있을 경우 '안동(지역) + 운흥동(지명, 문화재 소재지) + 오층전탑(문화재의 외형, 재질)'이라 불리게 되는 것이다.

■ 벽에 새긴 다양한 형태의 문화재

이처럼 문화재의 이름 속에는 특징과 형태가 드러나는데, 문화재의 이름을 통해 재질을 알 수 있다. 쉽게 불상을 예로 들면 이름에 재질을 넣게 된다. 가령 나무로 만들었을 경우 ‘목조(木造)’, 철로 만들었을 경우 ‘철조(鐵造)’, 돌로 만들었을 경우 ‘석조(石造)’로 불리는 식이다. 심지어 종이로 불상을 만든 사례가 있는데, 바로 ‘경주 기림사 건칠보살반가상(보물 제415호)’이 대표적이다. ‘건칠불(乾漆佛)’은 삼베 혹은 종이에 옻칠을 두텁게 발라 만든 불상이다. 이밖에 가장 쉽게 접할 수 있는 형태 중 ‘마애(磨崖)’가 있다. ‘마애’는 석벽에 글자나 불상을 조성하는 것을 말한다.

경주 기림사 건칠보살반가상, 재질이 종이로, 여기에 옻칠을 바른 불상이다. Ⓒ김희태
서산 마애삼존불, 백제의 미소로 잘 알려져 있으며, 벽에 새겨졌다 해서 마애불로 불린다. Ⓒ김희태
문경새재를 걷다 보면 볼 수 있는 마애비, 현감 이인면의 ‘선정비’와 ‘애휼비’다. Ⓒ김희태

즉 ‘마애’는 제작 방법인 셈. 이러한 형태의 문화재는 전국 어디서나 흔하게 볼 수 있다. 또한 어떤 형태로 벽에 새겼는지에 따라 해당 문화재의 이름도 달라지는 것을 볼 수 있다. 가령 벽에 불상이 새겨져 있으면 ‘마애불’이라 불리고, 종이 새겨진 경우 ‘마애종’으로 불린다. 또한 비석이 새겨져 있으면 ‘마애비’로 불리며, 탑이 새겨진 경우 ‘마애탑’으로 불린다.

우선 ‘마애’를 떠올릴 때 가장 먼저 생각이 나는 건 불상으로, 대표적인 ‘마애불’은 단연 ‘서산 마애삼존불(국보 제84호)’을 들 수 있다. 서산 마애삼존불은 일명 백제의 미소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 본존불과 좌우에 미륵보살, 반가사유상이 자리하고 있고, 본존불과 미륵보살은 서 있는 입상의 형태를 하고 있다.

■ 벽에 탑이 새겨져 있다면? 마애탑과 마애종

한편 ‘마애’ 형태의 종이 있어 눈길을 끈다. 바로 ‘안양 석수동 마애종(경기도 유형문화재 제92호)’이다. 보통의 경우 종이라고 하면 사찰에 있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조선시대만 해도 종은 도심에 설치가 됐다. 당시 종은 시간을 알려주는 기능을 했다. 우리 주변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종각(鐘閣)’, ‘종로(鐘路)’의 지명 역시 종이 있다는 의미에서 붙여진 것이다.

성덕대왕신종, 에밀레종 설화로 잘 알려진 종이다. Ⓒ김희태
안양 석수동 마애종의 전경. 벽에 새겨져 있어 ‘마애종’으로 불린다. Ⓒ김희태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종이라면 단연 ‘성덕대왕신종(국보 제29호)’를 들 수 있다. 흔히 에밀레종의 설화로 더 잘 알려져 있다. 본래 이 종은 ‘봉덕사’에 있다가 사찰이 폐사되면서 봉황대 앞과 경주부립박물관(현 경주문화원)을 거쳐 지금은 경주박물관 야외에 전시 중이다.

일반적으로 종은 실제 타종을 해야 하기에 실물 형태로 볼 수가 있지만, 석수동 마애종의 경우 벽에 종을 새겼다는 점에서 그 차이를 보인다. 또한 벽에 새겨진 마애종을 통해 고려 시대 동종의 특징을 살펴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는 문화재다.

‘경주 남산 탑곡 마애불상군’에 새겨진 마애탑, 그 모습이 황룡사 구층목탑을 연상하게 한다. Ⓒ김희태
황룡사 구층목탑 재현, 마애탑을 통해 탑의 외형을 유추해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는 문화재다. Ⓒ김희태

한편 벽에 탑이 새겨져 있는 사례도 있다. 마애탑 중 그 형태가 잘 남아있는 곳이 '경주 남산 탑곡 마애불상군(보물 제201호)'이다. 우선 ‘탑곡(塔谷)’에서 알 수 있듯 탑이 있어 붙여진 이름으로, 이곳 바위에는 두 기의 탑이 새겨져 있다. 그런데 주목할 점은 새겨진 탑의 형태가 마치 ‘황룡사 구층목탑’의 형태를 닮아 있다는 점이다. 황룡사 구층목탑은 자장법사의 요청에 의해 선덕여왕 때 만들어 졌으며, 신라의 세 가지 보물 중 하나로 당대에도 위상이 높았던 문화재였다.

황룡사지의 전경, 대몽항쟁 기간 중 불에 타 지금은 터만 남아 있다. ​Ⓒ김희태

하지만 재질이 목탑이라 화재에 취약했고, 결국 대몽항쟁 기간에 불에 타 사라지면서 지금은 그 터만 남아 있다. 이 때문에 ‘경주 남산 탑곡 마애불상군’에 새겨진 마애탑의 흔적은 황룡사 구층목탑을 연구하는 데 있어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이처럼 ‘마애(磨崖)’는 단순히 재질이나 조성 방식을 넘어서, 벽에 새겨진 우리의 역사와 문화라는 관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또한 지명에 영향을 미친 점이나 해당 시대의 특징을 읽을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해볼 역사의 현장이라고 할 수 있다.

 김희태

 이야기가 있는 역사 문화연구소장

 이야기가 있는 역사여행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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