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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청산, 작은 허물은 덮자[임종건의 드라이펜]
임종건 | 승인 2019.03.11 10:10

[논객닷컴=임종건] 3·1절 100주년의 해인 올 해 국가와 민간단체들이 다양한 방법으로 기념행사를 열었다. 언론에서 본 3·1절 뉴스 가운데 필자의 눈길을 끈 것 중에 일제에 부역한 면장의 송덕비를 철거하라는 것과, 친일문학인과 음악인들이 작사 작곡한 교가를 교체하라는 것이 있었다. ‘빨갱이 청산이 친일청산’이라는 문재인 대통령의 3·1절 기념사 발언은 개념조차 모호하고, 그동안에 못 듣던 친일문제여서 많은 논란이 일었다.

면장 송덕비는 충북 음성군에서 벌어진 일로서, 공물착취 등 일제의 수탈정책에 앞장선 공로로 일제에 의해 내지(일본) 여행의 포상까지 받은 면장을 위해 세워진 송덕비는 철거돼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픽사베이

광복회 광주전남지부에서 시작한 교가 교체 움직임은 대상 중·고등학교가 여러 곳이어서 전국적으로 제법 논란거리가 되었다. 문학인 음악인 외에도 친일 화가와 조각가들의 작품을 공공의 공간에서 철거하라는 해묵은 논란도 재연됐다.

친일청산은 해방 후인 1948년 출범한 반민특위에서 시작됐다. 특위는 7만여 건을 조사대상으로 삼았으나 실제 조사 후 재판에 회부된 사건은 559건이었고, 그마저 1년 뒤 활동 중단으로 흐지부지됐다. 친일청산이 안 된 원죄를 반민특위가 지게 된 배경이다.

그 후 역사학자 임종국 씨 등 민간에서 추진해오던 친일청산 작업은 1999년 친일인명사전 편찬을 목표로 민족문제연구소가 발족하면서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10년 뒤인 2009년은 친일청산의 연구와 조사의 결과물이 잇달아 나왔다.

민족문제연구소가 4776명의 친일인사를 수록한 인명사전을 발간했고, 동시에 2004년 공포된 반민족행위진상규명특별법에 따라 2005년 발족한 대통령 소속의 반민진상규명위가 친일반민족행위자 1006명의 명단을 그해 최종적으로 발표했다.

두 기관의 숫자가 다른 것은 선정 기준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다. 전자가 정황증거를 포함해서 대상자를 선정했다면, 후자는 이론의 여지가 없는 증거를 선정기준으로 삼았다. 대부분의 친일문제로 인한 사회적인 갈등이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으로 비롯된 이유이기도 하다. 민족문제연구소의 인명사전에서 가장 큰 논란이 되었던 박정희 대통령, 애국가 작곡가 안익태, 언론인 장지연 등이 친일반민족행위자 명단에서 빠진 배경도 그것이다.

일제에 부역한 사람을 단죄하는 것은 마땅한 일이다. 다만 당사자를 역사의 죄인으로 만드는 것이기 때문에 최대한 신중을 기해야 한다. 민족문제연구소의 방법보다는 고위직 부역자들의 명백한 친일행각을 단죄한 반민진상규명위의 접근방법이 타당한 이유다.

교가 교체 논란의 대상자인 문학인 예술인들 중에는 반민족행위자 명단에 오른 사람도 있으나 대다수는 친일인명사전에 오른 사람들이다. 그들이 작사 작곡한 교가는 변절하기 전 애국심이 충만했던 시절의 작품도 있고, 해방 후의 작품도 있다. 가사 내용도 모두 애국심과 학구열을 고취하는 것일 뿐 일제에 대한 찬양이 들어갈 리가 없다.

예술은 예술로 평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가사나 곡에 아무런 흠이 없는 그런 교가를 못 부르게 하는 것은 예술을 과도하게 정치화하는 것이다. 학교에 따라서는 100년 넘게 불러온 교가일 수도 있다. 동문들은 새 교가를 배우기 위해 학교를 다시 다녀야 할 판이다.

3·1절을 앞두고 어느 대학교수는 작곡가 안익태가 친일을 넘어 친나치를 했다며 애국가를 버리고 국가를 새로 만들자고 주장했다. 그의 주장을 들어보니 안익태가 나치 치하의 독일에서 살았다는 것이 나치부역의 주된 근거였다. 이러다가 1936년 나치시절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에서 일장기를 달고 우승한 손기정 선수를 친일파라고 하는 날이 오지 않을까 걱정되었다.

친일의 정도는 식민지배의 기간이 35년으로 비교적 길었던 관계로 사람에 따라 편차가 크다. 을사5적에서 공출을 독려한 면장까지 있는 이유다. 능동적 친일도 있겠으나 대부분은 마지못해 순응한 생존형 친일이었을 것이다.

일제의 부역자들은 초기에 애국적이었던 사람이 말기에 와서 친일로 변절한 사람도 많다. 일제가 태평양전쟁 패전을 앞두고 최후발악을 하던 시절, 그들은 일제의 협박과 강압에 굴복했거나 독립의 희망을 잃고 지레 좌절한 사람들이다.

일제청산을 하급관리인 면장 수준으로까지 끌어내리는 것은 갈등의 저변을 확대시킬 뿐이다. 그런 발상이 발전하면 일제에 적극적으로 저항하지 않은 것도 부역이 될 수 있다. 그렇잖아도 현 정부의 적폐청산으로 사회가 분열되어 국가의 동력이 시들어 가고 있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그런 마당에 문 대통령의 ‘빨갱이’ 발언은 새로운 갈등구도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매우 부적절하다. 국내에서의 빨갱이 문제는 김일성이 일으킨 한국전쟁에서 연유한 것이지 일제청산과는 직접적 관련성도 없는 것이다.

현재 수준으로나마 친일청산이 이뤄진 것은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의 진보정권의 공로다. 문재인 정부가 해야 할 일은 노무현정부의 친일반민족행위자 진상규명 수준에서 인적청산은 지속하되 사소한 친일문제는 덮고 가는 것이다. 대신 독립유공자 후손들을 지원하는 일에 더 신경을 써야 한다. 두 번 다시 나라를 잃지 않도록 국력증진과 국민통합에 노력할 일이다.

경술국치(庚戌國恥)가 나라의 치욕인 것은 나라를 지켜내지 못한 민족 모두의 책임이라는 뜻도 있다. 나라를 빼앗긴 것도 억울하고 수치스러운데, 해방 후 74년이 되도록 친일 문제로 동족끼리 반목하고 갈등하는 것 또한 수치스런 일이다.

 임종건

 한국일보 서울경제 기자 및 부장/서울경제 논설실장 및 사장

 한남대 교수

 한국신문윤리위원회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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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건  imjk4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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