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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의 사색[박정애의 에코토피아]
박정애 | 승인 2019.03.12 10:53

[논객닷컴=박정애]  3월의 아침은 뻐근하다.

밤새 잠을 설쳐 알람이 울려도 그것을 끄기 위해 일어나기도 힘든, 일어나도 다시 이불 속으로 기어들어가고 싶은 초저녁 어스름 같은 분위기다. 강아지도 날씨를 타는지 내가 방에서 나와도 제 샛노란 텐트에 틀어박혀 눈만 깜박거리며 쳐다본다. 블라인드에 비친 그림자만으로도 아침의 분위기가 소나기 쏟아지기 직전처럼 심상찮다는 것을 느끼지만 좀 더 분명히 확인하기 위해 베란다 통유리를 가리고 있는 블라인드를 살짝 걷어본다. 역시나 하늘이 잿빛인 것이 미세먼지가 가득 차 있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다. 등교를 위해 밖으로 나갈 수밖에 없는 아들을 위해 마스크를 찾아봐야겠다고 생각한다.

3월의 아침은 개운한 날이 거의 없다. 매일 아들 팔베개를 해 주거나, 코고는 소리에 몇 번씩 깨는 나처럼 묵직하게 시작된다. 이래서 어디 새싹이 나고 꽃이 피겠나 싶지만 그런 스산한 분위기에서도 연녹색 새순이 솟고 알록달록한 꽃들은 어김없이 피어난다. 날마다 힘들다, 그만 둘까, 못 살겠다, 하면서도 매일을 살아내면서 때가 되면 피워내는 우리 삶을 닮았다.

Ⓒ픽사베이

문득 오랫동안 저장해두고도 전화 한번 안 해 본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생각해 낸다. 그 중에서도 특히 한때 카페 라떼 같은 감정을 느꼈던 그런 존재들한테마저도 전화 한번 안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들 또한 나한테 전화 한번 하지 않았다. 아주 오랫동안 그들과 나 사이가 겨울이었음을 알게 된다. 봄은 매해 어김없이 오는데 나는 그리움을 싹 트게 하지도, 봉오리 짓게 하지도 못 한다.

하지만 그런 존재들을 이 봄으로 초대하지 못하더라도 나는 이제 슬프지도, 아프지도 않다. 그리고 그런 존재들을 초대하지 않는 이유는 바로 내 곁에 있는 내 남편과 아들을, 지나쳐 온 그 누구보다도 사랑하기 때문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러고 보면 그리움이란 결핍의 다른 이름일 수도 있겠다 싶다.

정갈한 백반 한 그릇으로 배를 채운 뒤의 나른함과 평안함. 지금 내가 그렇다. 이렇게 평안한 마음으로 책을 읽고 글을 쓰니 이보다 더 좋을 수가 없다. 태어나서 수없이 많은 봄을 맞이했지만 젊었을 땐 봄이 좋은 줄을 몰랐고 조금 나이 들어서는 존재의 불안함 때문에 봄을 느낄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살다 보니 이런 봄을 맞이하는 날도 있구나, 하는 감사한 마음을 품고 산으로 향한다.

며칠 전부터 잘 여문 봉숭아 씨 주머니처럼 터질듯 한 진달래 꽃망울 주머니를 보며 언제 터질까, 언제 터질까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연분홍빛 꽃망울이 터지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드디어 오늘 꼭 다문 모습으로 자태를 드러낸 아기 진달래를 만났다. 생명의 탄생이란 그런 것인지, 그저 동네 뒷산에서 피고 지는 흔한 봄꽃일 뿐인데도 보는 나를 설레게 하고 저절로 탄성이 터져 나오게 했다. 그 꽃을 보고 있자니 은은한 5촉짜리 백열 전구 불빛을 켜 놓은 것 같기도 하고 세상에 갓 얼굴을 내밀고 속싸개에 꼭꼭 동여매 잠들어 있던 내 아들을 보는 것 같기도 했다. 세상의 모든 새끼들은 왜 이다지도 귀엽고 연민을 불러일으키는지. 아마도 그런 마음 때문에 끊임없이 생명이 피고 지고 하는 것이겠지.......

걷다 보니 이제 갓 터진 아기 진달래를 필두로 주변의 모든 진달래 꽃 주머니들이 곧 터질 듯이 성이 나 있다. 내일 아침, 아니 오늘 오후면 모두 속싸개에 싸인 모습으로 그 자태를 드러내지 않을까 싶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게도 저 꽃망울처럼 연약하고 연민을 불러일으키는 어린 시절이 있었겠지. 그 시절에는 비디오는커녕 사진기도 없었으니 나의 갓난아기 시절은 그저 부모님들이 들려주시던 이야기로 짐작하고 상상할 뿐이다. 상상 속의 그 아기가 벌써 중년의 여인이 되었다. 그 여인은 모든 생명이 있는 존재들의 소중함과 아름다움을 깨닫고 그런 생명들을 함부로 대하는 세태에 가슴 아파하는 존재가 되어 있다. 하지만 일상의 견고함과 엄마라는 의무감에 꽁꽁 묶여서 그저 깨닫기만 한 사람일 뿐이다. 그것만으로도 감사하기엔 내키지 않는 양심을 지닌 소유자로 살고 있다.

봄이다. 만물이 소생하는 봄이다. 매년 꽃피는 봄을 맞이할 수 있다는 것은 그 어떤 진귀한 보석이나 명품 백을 선물 받는 것보다 설레고 감사한 일이다. 올해도 새롭게 피어나고 싶다. 어둠 속에서 신음하는 생명들에게 한 줌의 봄볕이라도 쬐게 해 줄 수 있는 그런 존재로.  

 박정애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졸업.
수필가이자 녹색당 당원으로 활동 중.
숨 쉬는 존재들이 모두 존중받을 수 있는 공동체를 향해 하나하나 실천해가려고 노력하는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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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애  bock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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