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렬의 맹렬시선]

[오피니언타임스=이명렬] 한 달 전 지인으로부터 넷플릭스의 무료 ID를 건네받았다. ‘블랙 미러’라는 SF 시리즈 드라마도 함께 추천받았다. 아이를 재우고 나서 무료하게 인터넷 검색을 하다 넷플릭스 앱을 클릭했다. 인기 콘텐츠, 지금 뜨는 콘텐츠, 내가 찜한 콘텐츠 등이 리스트에 뜬다. 영상과 이미지 중심의 직관적인 인터페이스는 편리했고 자막 처리도 시원시원했다. 스트리밍 서비스의 고질적인 문제인 화질 저하나 끊김 현상도 없었다.

앱의 운영보다 돋보이는 것은 콘텐츠의 질이었다. 블랙 미러 시리즈는 미래의 진보된 기술과 인류와의 접점에서 생기는 다양한 에피소드들을 1시간이라는 분량에 압축해서 담아 놓았다. CG는 이질감 없이 적재적소에 배치되어 있었고, 시공간을 가리지 않는 다양한 배경과 등장인물들의 연기도 매력적이었다. 침울한 새드 엔딩도 있고, 생각지 못한 반전을 던져놓는 에피소드들도 있다. 결국 시즌 4의 6개 에피소드를 이어서 다 보고 말았다. 창밖에는 이미 해가 뜨고 있다.

Ⓒ픽사베이

새벽녘의 음습함과 한기보다 넷플릭스의 저력이 더 무섭게 느껴진다. 새로운 플랫폼 공룡의 등장이다. 안타깝게도 유순한 초식공룡이 아니라 난폭한 육식공룡 티라노다. 넷플릭스의 개별 콘텐츠들은 영화관에 각각 상영해도 무리가 없을 만큼 완성도가 높다. 이미 봉준호 감독의 옥자는 넷플릭스와 협업을 통해 영화라는 장르의 정체성에 물음표를 던졌다. 우수한 콘텐츠 제작 역량과 공급, 유통 역량이 결합되면 파괴적인 힘을 가지게 된다. 넷플릭스는 엔터테인먼트 생태계의 상위 포식자로 군림하며 전 지구로 영역표시를 확대하고 있다. 운석이 떨어져 생태계가 뒤집히지 않는 한 잔인한 먹이사슬은 유지될 것이다.

플랫폼 비즈니스의 등장은 이미 우리 삶을 뒤흔들고 있다. 초등학생들의 장래 희망은 유명 유튜버로 바뀐 지 오래고, 학부모들의 카카오톡 채팅창은 학습 관련 정보와 공지가 실시간으로 쏟아진다. 잠시만 확인이 늦어도 중요 소식을 놓치기 일쑤다. 채팅창을 탈퇴하면 나와 자녀는 정보의 무인도에 오롯이 고립된다. 부루마블의 더블 주사위와 황금열쇠가 나와도 탈출이 어렵다. 신종 감옥이다. 변화에 빨리 적응하지 않으면 도태된다. 스마트폰에 익숙지 않은 일부 노년층은 이미 새로운 문맹을 접하고 있다. KTX 입석, 오프라인 은행 창구, 주민센터 민원서류 발급은 오롯이 노년층의 몫이다. 적응하지 않는 자에게 자비란 없고 불편함은 가중된다. 포식자는 언제나 느리고 약한 개체부터 노린다.

넷플릭스라는 공룡은 어떻게 진화할 것인가. 척화비를 세우고 규제하고 쫓아내야 하는가? 개인에게 가장 유리한 선택들이 쌓이면 집단의 변화를 이끌어내고 새로운 문화로 자리 잡는다. 결국 편리하고, 혜택이 많으며, 재미나고 매력적인 솔루션이 선택을 받고 살아남을 것이다. 이미 국내 유명 콘텐츠 제작사가 넷플릭스에 독점 제공한 콘텐츠가 화제를 모으고 있고, IPTV 사업자도 넷플릭스와 제휴해 TV에서도 오리지널 콘텐츠를 제공 중이다. 물론 기득권자인 기존 지상파 및 미디어 사업자들은 발 빠르게 동맹을 맺고 넷플릭스의 확산을 막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누가 살아남을 것인가. 주사위는 던져졌다.

며칠 전 아내의 따스한 배려로 극장가에 흥행 중인 극한직업과 사바하를 관람했다. 팝콘과 콜라를 사 들고 심야 영화를 홀로 즐기는 사치를 부렸다. 극한직업은 형사와 치킨이라는 이질적인 조합 속에서 맘 놓고 웃을 수 있었고, 사바하는 종교적 미스터리에 접근하는 인물들을 마음 졸이며 지켜볼 수 있었다. 두 영화 모두 만족스러웠다. 매력적인 콘텐츠에는 돈과 사람이 몰리기 마련이다. 플랫폼은 돈과 사람이 오가는 장터를 만들어 준다. 잘만 조합하면 충분히 위기를 기회로 만들 수 있다.

최근 타다와 카카오 카풀 같은 차량공유 서비스와 택시 업계 간의 갈등이 첨예하다. 고소와 비방으로 점점 진흙탕 싸움이 되어가고, 플랫폼의 방향성과 소비자의 가치에 대한 논의는 뒷전이다. 정부는 타협기구를 만든다고 하지만 유명무실하다. 이미 외국에서는 Grab과 Uber 같은 차량 공유업체가 급격히 성장하고 있고, 개인들도 차량공유 서비스에 대한 경험치가 쌓여가고 있다. 베트남여행에서 Grab을 활용했더니 차종, 기사, 요금까지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어 아주 편리했다. 변화의 속도가 섬뜩할 정도로 빠르다. 기회를 놓치면 분명 위기가 온다.

곧 넷플릭스 무료 ID의 사용 기한이 끝난다. 수면 시간 확보를 위해 당분간 유료 결제할 마음은 없다. 하지만 내가 찜한 콘텐츠의 새로운 시즌이 방영된다면 분명 마음이 흔들릴 것이다. 넷플릭스라는 콘텐츠 공룡이 얼마나 커나갈지도 자못 궁금하다. 다만 새로운 변화가 내 삶을 너무 뒤흔들지 않기를 조심스레 바라본다. 점점 변화가 두렵고 호흡이 벅차다. 인정하기 싫지만 나도 서서히 꼰대가 되어가는 모양이다.

이명렬

달거나 짜지 않은 담백한 글을 짓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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