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홍의 세상읽기]

[논객칼럼=이계홍] 지난 10일 KBS 주간 미디어 비평 프로그램 ‘저널리즘 토크쇼 J’가 동아일보·조선일보·서울신문의 과거 친일행적을 다루었다. 필자는 동아일보와 서울신문 두 매체에서 근무한 경력이 있어서 이 프로를 관심있게 지켜보았다.

동아일보·조선일보 두 매체 공히 민족지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고, 필자 역시 일정 부분 이에 동의한다. 두 매체는 내년 창간 100주년을 앞두고 벌써부터 민족지의 위상을 드높이는 특집을 꾸미고 있거나 꾸밀 계획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 시간 현재 친일 매체라는 비판도 적지 않게 받고 있다는 것 또한 사실이다.

사물은 자신이 보고자 하는 관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동아일보·조선일보 지면에서 일제에 저항했던 기사만을 골라 병렬시키면 항일 민족지로 보일 수 있고, 반대로 친일의 행적만을 나열하면 고약한 친일 신문이 될 수 있다. 그것은 자칫 기회주의적인 양비·양시론의 함정에 빠지게 하는 근거도 될 수 있다. 그러나 지성적 태도라면 이런 자기 관점의 착시효과를 걷어내고, 양심에 따라 짚고 넘어갈 것은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한다고 본다.

두 신문에서 친일 기사를 찾아내려면 결코 적지 않다. 식민지 청년학도들에게 일본제국군에 입대하라는 순회강연을 하고, 친일 정책을 홍보하는 기고문과 기사들을 수없이 찾아볼 수 있다. 일제 치하의 공기를 마시고 사는 한에 있어서는 그 길을 가지 않을 수 없으며, 따라서 어쩔 수 없었다는 상황론도 제기된다.

그러나 나라를 되찾기 위해 목숨을 건 항일투쟁자도 있다. 우리의 역사에는 우리의 허무와 절망을 딛고, 독립된 이상사회를 건설하기 위해 그들 자신의 안락과 행복을 기꺼이 헌납한 항일투사들이 있다. 그들에게 겸손하기 위해서도 과에 대해선 인정할 건 인정해야 한다. 그러나 불행히도 그런 성찰의 자세는 아직까지 나오지 않고 있다.

반대로 공에 대해서 자사 지면을 통해 대대적으로 보도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매년 창간기념일이면 이런 공이 예외없이 특집으로 꾸며진다. 물론 과보다 공이 많다는 것도 관점에 따라 인정할 수 있다. 하지만 공은 당연한 의무다. 식민지 백성들의 고통에 동참하고, 해방과 독립의 메시지를 꾸준히 발송하며 희망을 주는 작업은 민족의 대변지로서, 사회적 공기로서 취해야 할 당연한 의무다. 의당 해야 하는 일이기 때문에 굳이 공을 내세울 필요도 없다.

신문은 ‘세상의 정보’라는 재료를 가공해 제품을 만들어 파는 상품이다. 그래서 라면같은 상품을 만들어 이윤을 내는 개인기업과는 회사 성격이 구분된다. 신문을 상품이나 물건이라고 말하지 않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교과서적인 얘기지만, 그래서 공공의 이익을 위한 공공재로서 공정하고 편견없이 사실을 보도하고, 진실을 추구해 세상의 등불 역할을 해야 하는 임무가 주어져있다.

나쁜 권력을 감시하고, 진실 보도로 여론을 환기하면서 담론 시장을 형성하고, 국민을 바른 길로 이끄는 안내견 역할.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이런 역할들이 훼손되거나 사라졌다. 사실과 진실이 왜곡되었다. 정파지로 전락했다. 억울하고 소외받는 약자 편에 서는 것이 아니라 강자, 가진 자의 입장에서 지면을 꾸민다. 자본과 유착해 사익 추구에 매몰되었다.

신문사는 돈을 벌긴 하되 일반 상품을 팔아 이윤을 내는 사기업과는 엄연히 구분되는 공공재인데도 일반 사기업보다 더 한 상업성을 보여준다. 그래서 사람들은 지면을 사적 용도로 전락시켰다고 비판한다.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가 결성 44주년을 맞아 18일 서울 광화문 동아일보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동아일보·채널A 사장)김재호는 공적 기능을 해야 할 신문을 사적 이익을 위해 악용했다”며 “지금처럼 살아가는 동아일보는 특정 가문의 사유물로서 반민주·반민족적 행태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판정을 받아야 마땅하다”고 비판한 점에서도 그 일면을 읽을 수 있다.

조선일보와 동아일보. 정통 민족지라는 이름을 무색케 하는 독재찬양과 미화의 제작태도. 일제치하 천황폐하 만세 기사와 뭐가 다르냐는 비아냥이 나왔던 것도 그 때문이다. 군부독재시대를 지나오는 동안 뚜렷한 저항과 투쟁없이, 독재에 편승해 사세를 확장하고, 거대 언론권력으로 성장했다고 보는 견해가 많다. 이런 행태 때문에 일제 강점기의 민족지로서의 정당성도 상실했다고 본다.

친일잔재가 무엇인가. 해방 이후 정치 경제 등 모든 기득권을 장악하고, 역사를 비틀고, 친일·친미의 구호 아래 색깔론을 뿌리며 이익을 취하는 수구보수적 태도다. 냉전 반공 대결주의 프레임을 걸어 국민을 편을 갈라 분열시키고 억압하는 구조. 기회주의적이고, 수단을 정당화하는 풍토. 약육강식이 지배하는 세상. 상대가 힘이 약하면 가차없이 밟아버리는 오만과 군림... 이런 잔상이 바로 친일 잔재이자, 오늘날 말하는 청산해야 할 적폐다.

일제 협력자라도 반성하고 성찰하는 가운데 참회의 길을 가는 사람이 친일파일 수는 없다. 용기있는 사람으로 평가받을 수 있을지언정 비난받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데 이 시간 현재까지 자신의 친일 행적에 대해 침묵하거나 부인하고, 일제군국주의나 권위주의 정권의 향수에 젖어 민주화세력을 야유하고 조롱한다. 자기 이익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비이성적 태도로 매서운 필봉을 휘두른다. 친일신문이 아니라면서 친일의 행적을 그대로 보여준다.

“친일 잔재가 사대주의, 기회주의 등의 인식으로 이어졌다. 정의를 추구하기보다 이기는 것이 정의라는 인식을 심어줬다. 이를 지적하는 것은 대한민국 발전을 위해 중요하다”(저널리즘 토크쇼 J에 패널로 출연한 방학진 민족문제연구소실장).

“지배계층과 지배 엘리트, 사회 지도층의 머릿속에 아직도 식민지적 태도와 역사관이 남았고, 지금도 그들이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동 프로 정준희 중앙대 겸임교수).

두 사람의 멘트는 동아·조선을 바라보는 아쉬움의 표현일 것이다.

두 매체 중 한때 필자가 근무했던 동아일보는 자유당독재와 박정희 유신독재, 전두환·노태우 군부독재시절 상대적 정론지로서 역할을 다했다. 70년대와 80년대 민주주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발분해온 것은 이 나라 민주화의 큰 족적으로 남아있다. 이때 동아일보가 친일신문이라고 비판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엄혹한 군부정권 시절 나라의 민주화를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는 국민적 격려와 지지가 있었다. 그런데 불명예스럽게도 그 이후의 행적에서 친일신문이라는 오명의 꼬리표가 따라붙었다. 결국 친일의 오명은 오늘의 제작 방향과 불가분의 관계로 결부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동아·조선 양대 매체가 스스로 민족의 대변지로 영광을 되찾는 길은 어렵지 않다. 비용이 드는 것도 아니다. 시민의 집단지성과 함께하는 질높은 민주주의와 정론의 가치에 충실하면 된다. 양심적 여론시장을 깔아주면 된다. 특정 정파의 이익과 사익 추구, 자본에 예속된 논조에서 벗어나 정론의 논조를 펴면 친일신문이라는 오명은 자동적으로 소멸될 것이다.

가혹한 식민지 시절과 군부독재시절, 열악한 환경에서도 선배 기자들이 민족정론지로서의 거탑을 쌓기 위해 헌신 분투한 전통이 사라져선 안된다. [오피니언타임스]

이계홍

동아일보 문화부 차장, 여론독자부 차장

서울신문 수석편집부국장 통일문제연구소장

용인대 겸임교수, 동국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객원교수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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