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구의 문틈 금융경제]

[논객칼럼=김선구] 지난 겨울은 눈이 유난히 오지 않아 겨울 가뭄이라 불릴 만하다. 해갈을 위해서도 봄비가 특별히 기다려진다.

비하면 우산이 당연히 떠오르고, 바람에 흔들리기 쉬운 기업의 경영자들은 우산하면 비오는 날 우산을 뺏는 은행을 떠올릴지 모른다.

수출입은행 창원지점이 폐쇄된다는 발표를 보고 창원경제단체가 이는 비오는 날 우산 뺏는 격이라며 철회를 건의했다는 보도가 금년 3월 6일자 경남도민신문에 실렸다.

은행에 대한 이런 비난은 비단 기업인들 말고 금융당국 최고수장이나 언론으로부터도 흔히 나온다.

Ⓒ픽사베이

이런 은행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과 같은 맥락에서 금융위원회는 자금중개를 강화하라며 금융의 '사회적 책임'과 '생산적 금융'을 강조하고 있다.

은행에서 대출을 일으키면서 어떻게 상환될지를 꼼꼼히 따져보고 사후관리를 하는게 당연한 의무이고, 이를 두고 은행을 비난할 수는 없다.

다만, 국내은행의 대출회수 관행에서 자세히 따져보면 회수하지 않아도 되거나 대출약정상 기한이 도래하지도 않은 기업으로부터 무리하게 대출을 회수해온 사례들이 적지 않다보니 은행에 이런 굴레를 씌어놓고 때만 되면 그런 비난이 이어지는 게 아닌가 싶다.

국내은행 역사를 외환위기 이전과 이후로 크게 나누어도 무방할 정도로 큰 변화가 일어났다.

외환위기는 이전 국내 은행을 대표하던 5대은행이 이제는 그 이름도 사라진 참사로 이어졌다. 도매금융 즉 기업금융을 주도하던 5대은행이 사라지고 소매금융, 달리 말해 개인소비자금융을 주로 취급하던 은행과 후발은행으로 기업여신규모가 커지기 전의 작은 규모의 은행들이 위기를 버텨냈다.

신한 하나등 후발은행이 외환위기를 비교적 잘 견뎌낸데는 경영이 기존 대형은행에 비해 상대적으로 건실했던 점도 물론 기여했겠지만, 기업여신거래처에 대한 자금위기 소문이 나돌면 여신규모가 작아 상환을 재촉하여 받아내기가 5대은행에 비해 손쉬운 점도 한몫했다.

 지금까지 부실여신이 증가하는 시점에는 어김없이 은행의 약싹빠른 여신회수에 대한 감정적인 비난여론이 들끓고는 했지만, 지금까지 이런 현상이 반복될 뿐이다. 은행과 여신거래처의 관계에서 무슨 문제가 존재하는지를 살펴보고 그 대책을 만들어 나가는 단초를 제공하려 한다.

1. 기업과 은행의 거래관계에서는?

비단 은행과의 거래에서만 적용되는 분류는 아니나 관계지향형 영업과 개별거래 중심형 영업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관계지향형에서는 그 관계가 장기간에 이어지고 거의 동반자관계와 비슷해 단기간의 유리와 불리보다는 장기간의 가치창출에 무게를 둔다. 이에 비해 후자의 경우는 당장의 거래에 한해서 나에게 최고의 조건을 제시하는 상대방을 골라 거래를 하는 영업이다. 주식거래소나 경매시장같은 문화가 이에 해당한다.

우리나라에서는 기업이나 은행이 관계지향형 영업을 한다면서도 내부적으로는 그런 문화가 발달하지 않았다. 외환위기 이후 은행에서도 RM(Relationship Manager) 즉 관계영업담당자란 제도를 만들어 운용하고는 있다.

미국 포드자동차가 한참 잘 나가던 시절 이야기다. 포드와 거래하려는 전 세계 유수은행들의 러브콜이 심했지만 포드사는 거래은행을 매년 선정하는데 당장의 거래조건보다도 어려울 때 함께했던 은행들과의 장기관계를 무엇보다 우선했다.이를 통해 관계지향형 거래란 당장의 이해관계만 따지는게 아니란 걸 배운 기억이 있다.

이런 관계지향형 거래관계를 해치는 문화가 기업과 은행 쌍방에 존재한다. 단기성과를 반영한 성과급과 평가가 이루어지는 기업문화에서 자리이동도 잦다보니 자기가 담당하고 있을 때 최대의 이익을 끌어내려는 담당자나 경영진의 고객관리문화가 자리 잡고 있다.

카나다은행에서는 RM이 담당업체를 비교적 오래 담당해도 개인적으로 손해가 나지 않도록 거래기업들의 포트폴리오를 키워가면 직급도 올라가는 제도를 도입하기도 했다.

또 다른 요인으로는 기업이 숨김없이 회사사정을 은행과 공유하면서 관계를 유지하다가 일시적인 위기를 맞으면 회사사정을 익히 알고있는 은행과 머리를 맞대고 함께 위기를 헤쳐나가기 수월한데 속사정을 감추다보니 일시적인 유동성 위기인지를 믿지 못하고 묻지마식으로 가급적 빨리 회수하려 한다. 

2. 우산을 다른 은행보다 먼저 뺏어야 유리한 제도

사실이건, 악성 소문이건 회사에 대한 나쁜 소문이 돌기 시작할 때 발 빠른 은행이 먼저 자금을 회수하는게 유리했던 경험이 은행내부에 축적되어 있다. 이런 관행을 바꾸기 위해서는 기한이익을 상실시키는 조항을 구체적으로 또 엄격하게 객관화시키고, 부도시 부도전 몇 개월동안 대출을 회수한 모든 금융회사들로 하여금 법원이나 공적기관에 회수한 대출금을 토해내서 누가 변제의 우선순위인지를 가리는 제도를 도입하는 것도 유용해 보인다. 섣불리 대출회수에 나서도 득 될 게 없도록...

비오는날 우산을 뺏지 않는다는 말이, 구체적인 자료에 의해 철저히 분석해도 위기를 이겨낼 가능성이 낮아 보이면서 청산가치가 계속기업가치보다 크다고 판단되어도 대출을 회수하지 말고 팔짱만 끼고 있으라는 말과는 다르다는 걸 정부나 기업도 분명히 이해할 필요가 있다.

 김선구

 전 캐나다 로열은행 서울부대표

 전 주한외국은행단 한국인대표 8인 위원회의장

 전 BNP파리바카디프생명보험 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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