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희진의 민낯칼럼]

[논객칼럼=안희진] 벌써 오래 전 일이다. 집안 혼사 때문에 경상남도 거창에 갈 일이 생겼다. 1월 초순, 강추위가 맹위를 떨치는 새벽. 첫차를 타려고 터미널광장으로 나갔다. 혼자 가는 길이라서 운전 자체가 망설여졌고 꽤나 장거리인데다가 혹시 빙판길이나 눈이라도 만날까 두려웠다. 기차는 직접 가는 노선이 없었고, 고속버스라면 안전하고 난방도 잘되리라는 생각에 망설임없이 고속버스를 택한 것이었다. 따스한 온기를 느끼면서 두터운 옷도 벗고 가벼운 마음으로 차창 밖을 보며 새벽여행의 낭만을 만끽하리라 생각하고 떠난 길이었다.

여섯시 반 첫차에 오르니 가슴이 털컹하는 느낌이 들만큼 차내가 썰렁하게 추웠다. 예상과는 달리 차 안은 난방이 전혀 안되어 있었다. 난방은커녕 차속은 마치 겨울왕국 같았다. 차는 정시에 출발했다. 한참 달리면 ‘히터’가 올라와 따뜻해지리라고 기대했지만 양재동을 넘어서까지, 톨게이트까지 왔음에도 강추위는 계속됐다. 그때까지도 운전기사의 아무런 안내나 설명이 없었으니 영문도 모른 채 두손을 비비고, 때로는 허벅지 밑에 두손을 깔고 이빨을 부딪치며 잔뜩 움츠리고 갈 수밖에 없었다.

Ⓒ픽사베이

승객 일부가 소리소리 지르며 운전기사에게 왜 이렇게 추우냐고 따져 물었다. 그렇지만 속시원한 대답은 없었다. 지극히 절제된 운전기사의 대답은 예의와 상식, 사명과 의무를 멀리 벗어난 궤변이었다. 밖의 추위가 너무 심해서 온기가 잘 돌지 않는다는 ‘말도 안되는’ 대답이었으니 말이다. 내 앞 창가에 앉았던 청년은 차창이 제대로 닫기지 않아 찬바람이 들어온다며 휴지로 틈서리를 막고 있었고, 또 그 옆의 부인은 발을 동동구르면서 진한 전라도 사투리를 섞은 욕을 해대며 얼어 죽겠다고 항의했다.

마침 내 옆자리에는 미국인이 있었다. 그 미국인은 코트도 입지 않고 장갑도 끼지 않은 채 앉아 있었다. 나는 두꺼운 코트에 장갑까지 끼고 있었지만 발바닥이 차오는 것을 참을 도리가 없었다. 나 역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소리를 높여 왜 이렇게 춥냐고 따져 물었다. 물론 운전기사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내가 미국인을 알뜰하게 보호해야 의무를 가진 것은 아니었지만, 미국사람이 떨고 있는 것을 보니 괜스레 미안하고 창피한 생각이 들었다. 버스회사 측이 출발 전에 차를 점검하고 난방을 시켜놓지 않은 것은 대체 무슨 까닭일까. 난방장치가 하필이면 고장이 난 것인지, 고장이든 아니든 몇 명되지도 않는 손님을 태우고 무작정 달려놓고 보자는 것이었는지 알 수가 없었다. 몇자리 앞의 어떤 외국인은 털코트를 무릎 위에 덮고 있었다. 버스회사는 말할 것도 없고, 우리 승객들 체면도 말이 아니었다. 경제대국이 어떻고 OECD가 어떻다고 소리를 높이면서 자동차 난방조차도 되질 않으니 마치 내가 회사관계자가 된 것처럼, 정부 관계자가 된 것처럼 미안한 생각이 자꾸만 들면서 얼굴이 붉어졌다.

새벽어둠이 벗겨지면서 농가들의 굴뚝에서 연기가 오르고, 이른 아침 둥근 해가 버스 정면으로 떠오르는 상쾌한 모습은 새벽을 사는 사람만이 맛볼 수 있는 아름다운 정경이다. 정경은 아름다웠지만 그래도 버스 안의 추위는 좀처럼 풀리지 않았다. 옆자리 미국인은 두팔을 으쓱 들어 보이며 이제 곧 햇살이 퍼져 따뜻해 질 것이라고 웃으며 말했다. 뒷자리에 있는 젊은 여인에게 그 이야기를 전했더니 억지로 웃는 얼굴을 조금 보여주었을 뿐이다. 아마도 ‘당장 추워 얼어죽을 판인데 무슨 소리냐’는 것이 아니었겠는가. 차창을 휴지로 틀어막던 청년과 발을 동동 구르던 부인네의 엄상궂게 얼어붙은 얼굴도 좀처럼 녹지 않았다. 이웃과 주변의 정도, 따스함도 없이 냉방버스를 타고 고행을 벗 삼아 여행하는 수밖에 없었다.

휴게소에 버스가 섰을 때 운전기사는 에스키모 방한복 같은 두터운 옷을 꺼내 입더니 마이크를 잡았다. 그리고는 냉랭하고 건조한 말투로 휴게시간을 알려주며 늦지말라는 경고성 당부까지 하고는 식당으로 향했다. 잠시 후 운전기사는 이쑤시개를 입에 물고 꺼억 트림까지 해대며 버스에 올라 승객석을 둘러보더니만 다시 아무말없이 핸들을 잡았다. 출발 때부터 첫 휴게소까지, 그리고 다시 떠날 때까지 운전기사는 승객에게 죄송하다는 한마디의 말조차 할 줄 몰랐다.

“버스 안이 추워서 여러 손님들에게 불편을 드리고 있습니다. 죄송합니다. 조금만 기다려 주십시오”라는지, “이런 일은 처음입니다. 사전에 철저한 점검을 못해서 이런 일이 생겼습니다. 죄송합니다. 곧 조치를 취해 여러분들의 불편을 없애고 목적지까지 안전하게 모시겠습니다” 이렇게 마이크에서 진심으로 미안하다는, 그리고 조치하겠다는 부드럽고 성의 있는 음성이 들려 왔다면 얼어붙던 승객들의 가슴도 활짝 피었을 것이 아닌가.  

 안희진

 한국DPI 국제위원·상임이사

 UN ESCAP 사회복지전문위원

 장애인복지신문 발행인 겸 사장

오피니언타임스은 다양한 의견과 자유로운 논쟁이 오고가는 열린 광장입니다. 본 칼럼은 필자 개인 의견으로 본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칼럼으로 세상을 바꾼다.
논객닷컴은 다양한 의견과 자유로운 논쟁이 오고가는 열린 광장입니다.
본 칼럼은 필자 개인 의견으로 본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반론(nongaek34567@daum.net)도 보장합니다.
저작권자 © 논객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