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애의 에코토피아]

[논객칼럼=박정애] 그는 신념있는 사람이었다. 공교롭게도 출근 전이나 쉬는 날만 맞추어서 착불 택배가 오곤했다. 나는 상냥하게 입금해드리겠다고 말했다. 그전 기사님은 착불인 경우 미리 통장번호를 알려주고 입금해달라고 했었다. 그러면 간단하게 해결될 일이었다. 그런데 새로 바뀐 이 사람은 변함없는 말투로 같은 말만 반복했다.

“입금은 받지 않습니다.”

반드시 배달 즉시 달라는 것이었다. 달랑 단돈 2500원인데 그까짓 것 떼어먹을까봐 저렇게 깐깐하게 구나 싶으면서도 한편으로는 하루 종일 배달하고 입금내역까지 확인하려면 얼마나 힘들까 싶은 마음이 들어 그의 신념을 지켜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착불 택배 올 때가 됐다 싶으면 미리 2500원을 챙겨서 우산꽂이 안이나 문틈에 끼워두기도 했다. 하지만 신경쓸 때보다 잊어버릴 때가 더 많았다. 그럴 때는 택배 배달 시간에 맞추어 서둘러 출근하곤 했다. 슬슬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그러다 결국 화가 폭발한 사건이 발생했다. 감기에 걸려 집에 누워 있는데 전화가 온 것이다. 나는 한두번 거래 한 것도 아니고 내가 떼어먹을 사람도 아니니, 이번만 입금해드리겠다고 말했다. 내가 통사정을 하는데도 그는 녹음 재생버튼이라도 누른 듯 같은 말만 반복했다.

“입금은 받지 않습니다.”

Ⓒ픽사베이

나는 화가 치밀어 올라 지금은 아파서 갈 수가 없다고 소리를 질렀다.

“그럼 옆 매장에 부탁해 두세요.”

그는 아무런 감정의 동요없이 되받았다.

“이것 보세요.”

옆 매장 주인도 당신을 싫어해서 부탁하기가 미안하다고 말하려다가 그만두었다.

“저 이따 오후 1시에 출근하니까 그때 갖고 오세요.”

찰나의 침묵이 흘렀다.

“전 퀵이 아니라서요.”

이것 봐라. 한 번 해 보자는 건가? 고작 택배 기사 주제에, 하는 마음이 들었다. 당장 택배회사에 전화해서 기사를 바꿔달라고 항의할까 싶은 마음도 들었다. 그런 한편으로 만약 내가 그런 짓을 했다가 이 인간이 복수한답시고 칼부림을 하거나 석유를 뿌리고 불이라도 지르면 어떡하지? 하는 불안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그는 더 이상 내게 신념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고객의 감정을 상하게 한 똥고집만 센 재수없는 인간일 뿐이었다. 당신 신용 불량자야? 라는 말이 튀어나올 뻔했다. 하도 완강하게 입금을 거부하니 통장에 돈만 들어오면 빚쟁이들이 귀신같이 냄새 맡고 달려드는 신용불량자가 아닐까 싶은 의심이 들었던 것이다.

그의 신념을 존중해 주자는 내 신념은 사소한 불편의 연속으로 인해 부서지고 말았다. 모든 것이 갑 중심인 이 대한민국에서 비록 2500원이라는 적은 액수이지만, 돈을 내는 고객한테 어디 함부로 갑질을 하려고 한단 말인가.

물론 나는 불시에 배달될 착불 택배비를 매달 초에 복도의 소화전함에 넣어두는 것으로 스스로 합의를 보았다. 택배 기사는 착불일 때만 전화를 했다. 나는 전화를 받지 않고 앞으로는 항상 소화전함에 넣어두겠다고 문자를 보냈다. 이로써 그는 그의 신념을 지킬 수 있게 되었고, 나는 나의 변심을 감출 수 있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이번 택배기사 사건을 통해 내 안에 도사리고 있는 갑과 을의 관계에 대한 고정관념과 단순 노동 종사자를 무시하는 마음이 얼마나 단단하고 독한 것인가를 깨닫게 되었다. 비단 나뿐이겠는가. 그래서 대부분이 갑이 되고 고급 노동자가 되기 위해 초 경쟁하는 피폐한 사회가 돼 버린 것이다. 승리한 소수를 위해서.

선호하는 직업군의 확대가 행복지수를 높이는 지름길이다. 이를 위해서는 제대로 된 노동개혁이 이루어져야만 한다. 택배 기사도 선호 직업군에 포함되는 세상이 된다면 우리 학생들도 사교육의 사슬에서 풀려나게 될 것이다. 사교육비 부담에 출산을 포기했던 젊은 부부들도 자식 키우는 기쁨을 선택하게 되지 않을까. 

‘입금은 받지 않습니다.’라는 단호한 거절을 순도높은 진심으로 존중해주는 사회. 그런 세상이 하루 빨리 도래하기를 바라본다. 

 박정애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졸업.
수필가이자 녹색당 당원으로 활동 중.
숨 쉬는 존재들이 모두 존중받을 수 있는 공동체를 향해 하나하나 실천해가려고 노력하는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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