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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만큼은 떳떳하게![최미주의 혜윰 행]
최미주 | 승인 2019.04.08 10:54

[청년칼럼=최미주] 새 학기가 시작된 지 벌써 한 달이 지났습니다. 중등부 수업 후 복도에서 야간자율학습을 마치고 영어 수학을 배우러 온 고1 학생들을 만납니다. 어깨가 축 늘어진 채 하품하는 아이들을 보니 괜스레 마음이 착잡합니다. 학년 올라가며 국어 수업이 주말로 밀리게 돼 평소보다 아이들을 자주 볼 수 없어 아쉽기도 하구요.

조금이나마 힘이 되고 싶은 마음에 종 치기 직전까지 말을 건넵니다. 학교에서 무슨 일은 없었는지, 급식은 맛있는지, 힘든 일은 없는지. 순식간에 종이 울려 아이들이 교실로 들어가면 그렇게 퇴근합니다. 다음엔 사탕이라도 주머니에 넣어주고 와야지. 쓴웃음이 납니다.

기다리던 주말, 일주일 한 번 고등학생 학생들을 만날 수 있는 시간이 다가왔습니다. 안타깝게도 달콤한 잠을 깨우는 방해꾼이 되어야 합니다. 집을 나오자마자 휴대전화를 꺼내 학생 한 명 한 명에게 전화 겁니다. 그렇게 전쟁 시작. 잠이 덜 깬 목소리로 10분만 더 있다가 깨워달라는 아이, 30분 더 자려는데 너무 일찍 깨우는 거 아니냐며 삐치는 아이도 있습니다.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욱! 하지만 호흡을 가다듬고 다른 학생에게도 연락합니다.

일주일 내내 피곤했을 텐데 토요일 이른 시간 아이들이 잠을 이겨내고 자리에 앉았습니다. 버스가 늦게 왔다며 허겁지겁 뛰어오는 학생도 있습니다. 이런 아이들을 보니 잠을 깨울 때 들었던 나쁜 생각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흐뭇한 웃음이 새어 나옵니다. 어떻게든 약속을 지키려는 아이들이 기특하고 예쁘기 때문이지요. 아마 수백 번은 잠과 싸웠겠죠?

수업 도중 한 학생에게 전화가 옵니다. 친구와 벚꽃 보러 가서 수업에 못 온다네요. 거짓말 할 법도 한데 솔직하게 말하는 모습이 귀여워 혼낼 수 없었습니다. 평일 내내 온 세상의 알록달록한 꽃을 보며 마음이 얼마나 콩닥콩닥 했을까요? 재미있게 놀고 오라 전했습니다.

Ⓒ픽사베이

꽃잎이 여기저기 흩날리는 완연한 봄이 찾아왔습니다. 다들 주말에 벚꽃놀이 간다고 한창입니다. 할 일이 쌓였다는 친구는 날이 이렇게 좋은데 억울해서 일 못하겠다며 다 제쳐 두고 꽃놀이 간다고 합니다. 토요일 국어 교실에 앉은 아이들도 벚꽃을 보고 싶다고 노래 부릅니다.

참 신기합니다. 사람들은 공부 환경을 중요시 합니다. 너무 춥거나 더우면 효율이 오르지 않죠. 그렇다면 요즘처럼 날씨가 좋으면 일 효율이 올라야 하지 않나요? 반대로 이번엔 날씨 좋은 것이 문제가 됩니다.

각양각색의 스터디카페와 프리미엄 독서실이 곳곳에 생기고 있습니다. 럭셔리한 분위기와 쾌적한 환경 탓에 20만 원이 훌쩍 넘는 비싼 가격에도 불구하고 프리미엄 공간들이 인기를 끕니다. 어떤 어른도 스터디카페에 가는 학생들을 비난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격려하죠.

하지만 학생들은 정작 돈 주고 가지 않아도 되는 공원은 떳떳하게 가지 못합니다. 꽃놀이는 중간고사 기간, 성적이란 부담을 안고 조용히 행하는 일탈이 되어 버리지요. 300원만 넣으면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코인 노래방에 간 사실은 비밀이 됩니다.

언젠가 방학 때 아이들에게 단체로 영화 보러 가자고 제안한 적이 있습니다. 영어 단어 시험 본다고 오후 1시까지 부르면 전혀 모이지 않는 아이들이 아침 9시, 영화관 전원 출석! 떡볶이도 먹으며 웃고 떠들며 행복했었죠.

꽃놀이 다녀온 학생이 이번 주 수업 와서는 자기를 버리지 말라 합니다. 혹시나 수업 빠지고 놀러 간 자기를 포기하고 시험 범위에 나올 내용을 알려주지 않을까 걱정됐나 봅니다. 마음이 아픕니다.

다음 주 토요일엔 고1 아이들에게 9시까지 공원가자고 전화 걸고 싶습니다. 책 말고 도시락 챙기라고, 참고서 아닌 돗자리를 사라고 닦달하고 싶습니다. 벚꽃만큼은 떳떳하게 봐도 되지 않을까요? 

최미주

일에 밀려난 너의 감정, 부끄러움에 가린 나의 감정, 평가가 두려운 우리들의 감정.

우리들의 다양한 감정과 생각들이 존중받을 수 있는 ‘감정동산’을 꿈꾸며.

100가지 감정, 100가지 생각을 100가지 언어로 표현하고 싶은 쪼꼬미 국어 선생님.

논객닷컴은 다양한 의견과 자유로운 논쟁이 오고가는 열린 광장입니다. 본 칼럼은 필자 개인 의견으로 본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최미주  cmj782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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