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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실, 가엽고 안쓰러웠던[이광호의 멍멍멍]
이광호 | 승인 2019.04.15 10:49

[청년칼럼=이광호] 우연히 발견한 이름. 혹시나 싶어 클릭해봤더니 예상이 맞았다. 필자가 졸업한 고등학교 국어 교사의 글이었다. 야자시간에 관한 내용이었다. 교사의 눈으로 본 야자시간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여전히 학생들은 잠을 자거나, 핸드폰을 하거나, 낙서를 하고 있었다.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도 물론 있었다. 미술 교사는 그런 학생들의 모습을 그려 글 사이에 넣었다. 두 교사의 공동 작업이었다. 그 글은 ‘노력’과 ‘희망’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해 아이들에게 강요한 시간은 무의미한 시간이 아니라 가엾은 시간이라고 말하며 끝이 났다.

당혹스러웠다. 그 교사가 가엽게 봤을 야자시간의 학생 중 하나였던 필자는, 수업시간 교사의 모습을 안쓰럽게 느꼈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엎드려 잠을 자는 교실에서 묵묵히 문제를 푸는 교사의 모습은 뭐랄까. 교육자보단 노동자에 가까웠다. 정해진 작업량에 맞춰 수능 날까지 할당량을 채워야 하는 사람 같았다. 저녁 시간과 주말에도 야자 감독을 하는 모습도 마찬가지였다. 그런 모습을 보며 국어 선생님이 되고 싶다는 잠깐의 생각도 일찌감치 접었다. 이 구조 안에 들어오면 똑같은 사람이 될 것만 같은 공포가 들었다. 교육이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다는 생각은 점점 옅어졌다.

Ⓒ픽사베이

내 수학 성적을 아는 사람이라면 깔깔대고 웃을 일이지만 수학부장이었던 적이 있다. 이유는 간단했다. 수학시간에 잠을 자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난 수업시간에 몇번 문제까지 풀었는지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 지레짐작으로 첫 문제를 시작하곤 했다. 그러다 내가 진도를 기억하자 진도를 체크하는 임무가 주어진 비공식적 수학부장이 됐다. 그렇다고 수학 성적이 오르진 않았다. 기초가 되어있지 않은 상태에서 수업을 열심히 듣는다고 해서 따라갈 수 있는 과목이 아니었다. 대부분의 수업은 앞 시간의 학습 목표를 성취했음을 기준으로 진도를 나가기 때문에 뒤늦게 쫓아간다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열심히 해도 안 되는 일이 있다.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는 상태로 열심히만 하면 아무 소용이 없다. 좋은 의도라고 무조건 좋은 결과를 가져오지 않는다. 교사 또한 아이들을 집중시키기 위해 수업시간을 장악하려 하지만 학생들은 교사의 일방적인 수업방식에 흥미를 느끼지 못한다. 교사는 아이들이 떠들고 집중하지 못하는 게 자신의 카리스마 부족, 혹은 만만하게 보여서라고 생각하고 더 위압적인 자세로 나온다. 혼자서 개별 학생들을 케어해줄 수 없기에 따라오지 못하는 학생이 있어도 진도를 나간다. 부진한 학생들은 점점 더 수업과 관심이 멀어진다. 교사도 학생도 열심히 해보려 하지만 점점 멀어지는 악순환이 반복될 뿐이다.

그 교사의 말이 맞다. 하루에 네 시간씩 책상에 앉아있는 시간은 낙오의 공포 앞에서 할 수 없이 지켜야만 했던 시간이다. 우리나라의 청소년 행복지수는 하위권을 벗어나지 못한다. 학업 흥미도, 자신감, 행복도, 자기주도학습 능력 또한 최하위 수준이다. 반면 상·하위 집단간의 학업 격차는 점점 벌어진다. 한 번 부진을 겪은 학생은 그 상황을 벗어나기 힘들다. 꾸준히 그 계단을 밟을 수 있었던 학생들만이 ‘우등생’이 된다. 그 외의 학생들의 꿈은 어느덧 뜯겨지고 찢어져 ‘현실’이라는 이름으로만 남을 뿐이다.

이러한 현실을 바꾸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는 교사들도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거꾸로 교실’로 알려진 플립트 러닝(Flipped Learning)을 도입한 교사들이 그 예다. 수업 내용을 교사가 동영상으로 미리 제작하고, 학생들은 이를 미리 보고 온다. 수업시간에 강의는 최소화하고 학생들과의 활동으로 채운다. 학생들은 친구들과의 관계의 중요성을 배운다. 교사 또한 교사라는 직업의 의미와 자존감을 회복한다. 자연스레 교실 분위기도 좋아지고 성적도 오른다. 물론 부작용과 반발이 전혀 없는 건 아니다. 적응하지 못해 다시 강의식 수업으로 돌아간 교실도 있다. 하지만 시도하지 않는 것보단 낫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공부할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이 아니었다. 칠판과 교사만 바라보며 필기를 따라 하고 문제를 푸는 방식에 익숙해진 우리는 스스로 공부하는 방법을 배우지 못했다. 그런 학생들을 한 공간에 앉혀놓고 시간을 보내게 하며 결실을 얻으려는 건 씨앗을 뿌리지도 않고 꽃이 피길 기다리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내가 하루에 네 시간씩 책상에 앉아 배운 건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무력감이 전부였다. 연민과 선의만으로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 그것이 강제라면 더욱더. 

 이광호

 스틱은 5B, 맥주는 O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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