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언의 잡문집]

[청년칼럼=시언] 진주 아파트 참사 이후 주요 뉴스들은 정신질환자 관련 범죄를 앞다퉈 보도했다. 어떤 정신병자는 칼로 옆방에 살던 고시원 입주자를 찔렀다고 하고, 또 다른 정신병자는 누가 날 해치려 한다는 환청에 홀려 앞동 주민을 폭행했다고 한다. 소식을 전하는 앵커의 목소리는 일견 객관적이고 공정해 보인다.

그러나 뉴스가 끝난 후 시청자들의 뇌리엔 ‘저런 미친놈들과 우리가 같이 산다니’라는 비이성적 공포와 ‘저런 놈들 잡아다 안 가두고 뭐하는 거야’라는 분노가 각인된다.

Ⓒ픽사베이

주요 일간지 온라인뉴스부에서 6개월 간 인턴 기자로 일한 적이 있다. 주요 업무 중 하나는 속칭 ‘우라까이’, 즉 타 언론사에서 올린 기사를 받아쓰는 것이었다. 명예로운 일이 아님을 알았으나 레드오션이 된 언론 환경에선 어쩔 수 없었다. 이 일을 함께 하는 인턴 동기만 여섯이다보니 소위 ‘잘 팔릴 기사’를 선점하려 다른 언론사 사건, 사고 기사란을 온종일 쳐다본 날도 부지기수였다.

“오늘은 뭐 자잘한 거 밖에 없냐”

점심 시간, 인턴 동기들끼리 한숨 쉬며 중얼거렸던 이 말은 살인이나 집단 폭행처럼 자극적인 사건이 없다는 푸념이었다. 같은 살인도 잘 팔리는 건과 그렇지 않은 건이 갈렸다. 용돈을 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어머니를 찌른 아들과, 그 아들에게 “옷 입고 도망가라”는 유언을 남기고 죽은 어머니의 이야기는 잘 팔렸다. 그러나 평범한 다툼 중 벌어진 사망은 잘 팔리지 않았다. 너무 흔했으니까. 맞다. 우리가 '우라까이'할 기사를 고를 때, 그 기준은 많은 경우 ‘잘 팔릴지, 그렇지 않을지’였다.

연일 계속되는 정신질환 범죄 보도를 보고 있으면 “요샌 왜 이리 미친놈들이 많아” 소리가 절로 나온다. 지금껏 나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6개월이나마 언론사에서 일해본 경험을 거친 지금의 나는 의심한다. 조현병 환자에 의한 진주 아파트 참사 사건 이후 전국의 정신질환자들이 약속이라도 한 듯 동시에 활개를 치는 걸까? 그게 아니라면 진주 아파트 사건 이후 정신질환자에 의한 범죄가 ‘잘 팔리는 기사’의 카테고리에 속하게 된 것 뿐일까.

“남의 목숨줄 건드릴 땐 너도 그만한 각오를 해”

기자의 책임감에 대해 한 선배는 그렇게 조언했다. ‘살인 혐의로 조사를 받고 있다’와 ‘살인으로 조사를 받고 있다’. 다른 사람 눈엔 큰 차이 없어 보이는 두 표현 사이에서 당사자는 천국과 지옥을 오가니, 기사를 쓸 때 그 무거움을 오롯이 알라는 직언이었다. 수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유효한 조언이라고 생각한다. 동시에 현재 정신질환자에 의한 범죄를 보도하고 있는 언론에게도 말이다.

“정신질환자에 대한 사회적 낙인이 확산돼서는 안됩니다” 

지난해 12월, 내담 중 환자의 흉기에 찔려 사망한 故 임세원 강북삼성병원 정신과 교수의 장례식장에서 동생 임세희씨는 이렇게 호소했다. 고인은 평생을 마음 아픈 이들을 위해 살았고, 그 자신도 우울증을 앓은 환자였음을 고백해가며 정신질환자에 대한 편견을 없애는데 헌신해 왔다. 유족은 이번 사건이 정신질환자들을 격리하고 단죄하는 시발점이 될 것을 염려했다. 유족의 바람은 통했을까. 정신질환자 관련 범죄의 댓글창을 보면 장담하기 어렵다.

기사쓰기는 돌 던지기와 비슷하지 않을까. 나는 오랫동안 그리 생각했다. 기자와 언론사는 기사라는 돌을 호수에 던져 크고 작은 파문을 일으킨다. 대다수의 파문은 해프닝에 그치지만, 어떤 파문은 대통령을 끌어내리고 관련 법을 뜯어고친다. 그러나 때때로 그 돌에 맞은 개구리들이 다치고 더러 죽는다. ‘쓰레기 만두’라는 워딩 하나가 만두업계에 종사하는 수많은 개구리들을 후려쳤듯이 말이다. 의도가 아니었다고 해도, 지금도 개구리들은 맞아 죽어 나가는 중이다.

정신질환자에 대한 언론 보도가 지금도 수많은 편견에 상처 입고 있는 정신질환자들을 맞출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면, 그 보도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돌을 던져야만 하는 당위에 대한 고뇌의 결과여야 할 것이다. 최소한 ‘잘 팔리는 얘기니까’ 이상의 근거는 댈 수 있어야 할 것이다. 故 임세원 교수가 자신의 우울증 병력을 고백함으로써 증명하려 한 대로, 정신질환은 여타 질환처럼 우리 모두가 앓을 수 있는 평범한 질환인 까닭이다. 

시언

철학을 공부했으나 사랑하는 건 문학입니다. 겁도 많고 욕심도 많아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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