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타임스=권오용] 국세청이 발표한 국세통계연보에 따르면 2017년 우리나라의 기부금은 약 12조 9000억원으로 나타났다. 이는 2016년보다 약 2000억원 늘어난 것으로 새희망씨앗, 어금니아빠 사건 등 연이은 기부단체 횡령사건으로 얼어붙은 기부문화를 생각하면 의외의 증가다.

지난해 기부단체의 투명성 및 효율성도 많이 좋아졌다. 국세청 결산공시를 토대로 한국가이드스타가 공익법인들의 투명성 및 효율성을 평가한 결과에 따르면 공시연도 2018년에 만점을 받은 공익법인은 143개로, 2017년 만점 법인 94개에 비해 크게 늘어났다. 악화된 기부환경에도 불구하고 공익법인의 투명성 제고를 위한 노력이 기부금 증가로 연결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영국 자선지원재단인 CAF(Charitable Aid Foundation)에서 2018년 10월 발표한 세계기부지수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100점 만점에 34점, 146개국 중 60위를 차지했다. 전년도에 비해 순위는 두 계단 상승했으나 점수는 그대로다. 우리나라의 경제규모가 세계 10위권임을 감안하면 한참 부끄러운 수치이다. 무엇 때문에 이런 격차가 발생할까.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민이 기부를 하지 않는 이유는 ‘기부금 사용처가 투명하지 않아서’라는 응답이 60.7%로 1위다. 기부를 한 사람조차도 61.7%가 제대로 썼는지 알 수 없다고 답했다. 결국 자기가 내는 기부금의 쓰임새를 투명하게 알 수 있다면 국력에 걸맞은 만큼의 기부 순위를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경제지수와 기부지수의 격차해소는 방법의 문제이지 불가능한 과제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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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부문화 투명성 강화를 위한 첫 번째 과제는 ‘제도개선’

한국가이드스타는 지난 3년간 공익법인 투명성 및 효율성 평가를 진행하며 공익법인들의 투명성을 강화하고 기부자들의 권리를 개선하는 데 앞장섰다. 정부도 공익법인 투명성을 확대하기 위한 방안으로 공익법인회계기준 제정, 공익위원회 설립 추진 등 다양한 개선 방안을 내놓으며 힘을 보탰다.

최근 일부 기업이 공익법인을 경영승계 목적을 위해 악용하고 있다는 공정위의 발표가 있었다. 기업소속 공익법인뿐만 아니라 모든 공익법인들이 사회공헌 활동을 열심히 하더라도 지배구조 즉 이사회가 내·외부 압력으로부터 독립성을 유지하지 못하도록 구성되어 있다면 공익법인 설립 의도에 의심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이상적인 공익법인 이사회는 경영진에게 사업의 방향과 전략을 인도하는 조력자이며, 최고의사 결정자로서의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 따라서 이사회를 누구로 구성해야 하며, 의무와 권한의 범위가 어디까지인지에 관해 규정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이에 신탁 이사회를 구성하는 것을 제안하고 싶다. 공익법인은 기부한 사람이 참석하는 것이 아니라 기부자의 뜻을 잘 구현해 줄 수 있는 사람이 낫다. 이런 사람들로 구성된 신탁 이사회를 통해 경영 승계 논란을 해소할 수 있다. 영국 정부는 공익법인 기준에 관한 지침서를 제공해 공익법인들이 어떻게 이사회를 구성하고 운영해야 하는 지 도움을 주고 있다. 우리나라도 공익법인을 위한 이러한 가이드라인이 제공되는 것이 필요하다.

권오용 (재)한국가이드스타 상임이사

기부문화 투명성 강화를 위한 두 번째 과제는 ‘기술개발’

기부문화의 투명성 확보는 제도개선뿐 아니라 기술의 개발로도 가능하다. 최근 자선분야에서는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하는 사례가 늘고 있으며,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다. 미국 내 대표적인 자선단체인 피델리티자선기금(Fidelity Charitable)은 2017년 암호화폐를 통해 6900만 달러의 기부금을 모았다. 2016년의 암호화폐 기부금은 700만 달러에 불과했지만 1년 사이 거의 10배로 성장한 것이다. 또한 세이브더칠드런·그린피스·적십자 등도 암호화폐로 기부금을 받기 시작했는데, 2017년에만 무려 3조 3000억원이 모금되었다고 한다. 유엔의 경우 시리아 난민에게 직접 접근할 수 없자 홍채로 물건을 계산할 수 있도록 암호화폐를 지원금으로 보내기도 했으며, 요르단의 아즈라크 캠프에 있던 1만여명의 시리아 난민들에게 이더리움 블록체인 기술에 의한 전자바우처 형태의 지원금을 지급하기도 했다.

이보다 먼저 제도의 발전과 더불어 기술의 도입을 통해 사회문제를 해결한 사례로는 버스환승제도와 교통카드 개발을 들 수 있다. 2000년대 초반 대중교통 이용자들의 편의를 위해 새로운 기술을 바탕으로 전국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교통카드를 개발하고 나아가 같은 구간에서 버스환승 시 추가 금액을 내지 않는 제도를 도입했다. 이로 인해 교통난이 완화되고 대중교통 이용자들의 지출을 줄여주었으며 대다수 국민이 현재까지 잘 활용하고 있다.

또한 몇 해 전 강원도 산하기관의 한 공무원이 공금을 횡령한 사건을 계기로 강원도, 농협, 핀테크 기업이 머릴 맞대어 지자체 자금 관리 솔루션을 구축했다. 은행과 지자체를 전산으로 연결하여 거래 정보를 상급자가 실시간으로 모니터링 하는 것이 가능해졌으며, 지출금액을 도중에 임의로 변경하지 못하는 기능도 추가했다. 이 기술의 개발로 횡령의 가능성을 원천 차단했으며, 강원도에서 횡령 예방 효과가 입증되면서 이 자금관리 솔루션은 전국 지자체로 확산됐다.

이 두 가지 사례는 우리나라에서 제도 개선과 더불어 기술 개발을 통해 사회적 문제를 해결한 가장 가치 있는 도전으로 평가된다.

최근 잇따라 터진 기부금 횡령사건은 어려운 이웃에게 가는 손길마저 막아서고 있다. 누가, 어디에, 얼마를 썼는지 실시간으로 투명하게 검증되는 기술의 개발은 기부금 유용과 횡령을 둘러싼 오랜 비리에서 비영리분야를 해방시킬 수 있는 환경을 만들 것이다. 그렇게 되어야 묵묵히 일하는 대다수의 성실한 모금단체가 비영리분야의 주역으로 등장하고 투명한 기부문화가 정착될 것이다.

더 나은 미래를 위한 기부문화 활성화를 위해서 공익법인들이 관련법을 제대로 이해하고 준수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정부는 공익법인들의 법 준수 여부를 제대로 감독하고 제도 개선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기부자들은 인정에 호소하는 ‘빈곤 포르노(poverty pornography)’ 모금광고만을 보고 기부하는 것을 지양하고, 한국가이드스타나 국세청의 정보를 통해 기부단체의 투명성과 효율성을 비교 판단하여 현명하게 기부하는 인식 제고가 필요하다.

제도의 개선과 기술의 도입으로 투명한 기부문화가 조성되고 어려운 이웃을 향한 나눔의 손길도 따스해지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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