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성규의 하좀하]

청년대표 울고 

4월 1일 전국청년네트워크 대표가 대통령을 만난 자리에서 “정부가 청년의 삶 전반을 진중하게 고민하는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다. 청년 정책은 행정실무에 빠져 작동하지 않는 것 같다”라고 하면서 눈물을 쏟았단다.

오늘은 정말 우울한 이야기를 하나 들려주려고 한다. 내 이야기는 아니지만, 들으면서 화가 나기도 하고, 기가 막히기도 했다. 내가 지금부터 하려는 이야기는 요즘 뜨거운 이슈인 청년구직지원금에 대한 이야기다. 청년구직지원금을 집행할 때 중심적으로 고려해야 할 사항은 행정실무나 규정이 아니라 구직자 개개인의 사정이 되어야 한다. 

엄창환 전국청년정책네트워크 대표가 지난달 1일 문재인 대통령을 만난 자리에서 “정부의 청년 정책은 여전히 달라진 게 없다”고 얘기하고 있다. ⒸYTN뉴스 캡쳐

청춘은 울고 나도 운다

이름은 밝히지 못한다. 그녀는 미혼모다. 아이가 있지만, 수입은 없다. 이제 아기가 좀 커서 자립하고 싶었다. 취업을 해야 했다. 정부에서 구직활동을 지원한다고 해서 찾아갔다. 졸업한 지 2년이 지나서 정부에서 운영하는 청년구직활동지원금 대상이 아니었다. 졸업 2년이 지난 구직자는 금액이 좀 적더라도 거주 시에서 운영하는 구직지원을 받으라고 했다. 졸업 후 2년의 기준은 왜 정해진 것인지, 2년이 지나면 왜 300만 원의 지원금이 150만 원으로 깎이는지 이해가 되지는 않았지만, 시키는 데로 시청을 찾았다.

준비해야 할 서류는 적지 않았다. <주민등록등본>, <건강보험납부확인서>, <건강보험 자격확인서>, <건강보험 자격 득실확인서>, <고용보험피보험자격 이력 내역서>, <졸업증명서>를 가지고 오라고 했다.

아이를 데리고 시청에서 <주민등록등본>부터 뗐다. <건강보험납부확인서>는 시청에서 뗄 수 있지만 <건강보험 자격확인서>, <건강보험 자격 득실확인서>, <고용보험피보험자격 이력 내역서>는 시청에서 떼지 못한다고 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가보라고 했다. 역시 이해는 되지 않았지만, 다시 아이를 달래서 버스를 탔다. 버스에서 내려 한참을 걸어서야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도착했다. 두 가지 서류를 떼고 <고용보험피보험자격 이력 내역서>를 신청했더니 여기서는 발급이 안 된다고 근로복지공단에 가보하고 했다. 이제 떼를 쓰기 시작하는 아이를 끌다시피 해서 다시 버스에 올랐다. 근로복지공단에서 뗀 <고용보험피보험자격 이력 내역서>가 마지막이 아니었다. <최종학력 졸업증명서>도 필요했다. 고등학교 졸업증명서는 시청에서 뗄 수 있지만, 대학교 졸업증명서는 졸업한 대학까지 가야 한다고 했다. 다시 대학교까지 가서 <졸업증명서>를 뗐다. 이렇게 왔다 갔다 서류를 떼면서 이유를 알 수 없는 눈물이 났다고 한다.

아이 아빠는 뭐하시노?

드디어 집에 갈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관문이 하나 더 남아있었고, 그녀는 여기서 폭발했다. 주민등록상에 있는 가족은 그녀와 아이 둘. 담당자는 서류를 보더니 아이 아빠는 어디 있냐고 물었다. 그녀는 없다고 답했다. 담당자는 아이 아빠가 있을 거라고 다그쳤다. 그녀는 없다고 다시 한번 말했다. 담당자는 말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그녀는 아이 아빠는 있었지만, 가족은 아니라고 했다. 자신이 가져온 주민등록등본을 보라고 했다.

그래도 담당자는 끝까지 아이 아빠의 수입을 알아오라고 했다. 지금껏 아무 불평 없이 시키는 대로 모든 것을 준비한 그녀는 드디어 처음으로 왜냐고 물었다. 담당자는 아이 아빠가 돈을 보내주는 것 아니냐고, 그것을 확인해야 한다고 했다. 그녀는 화가 치밀어 눈물이 났지만 참으면서 그런 일은 한 번도 없었다고 말했다. 담당자는 몰래 돈을 보내줄 수도 있으니 증명을 해오라고 했다. 그녀는 울먹이며 연락할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담당자는 준비한 서류를 들고 가라고 말했다. 접수할 수 없다며.

그녀는 집으로 돌아오며 구직활동에 돈과 노력이 들어간다는 말이 맞다고 생각했다. 이 여성은 구직활동을 하기도 전에 버스를 타고 이 기관 저 기관을 돌면서 돈과 노력을 들였다.

청년희망재단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취업준비에 가장 큰 어려움으로 취업비용마련이 꼽혔다고 한다. 영어시험을 치는데도 돈이 들고, 컴퓨터 자격증을 따는 데도 돈과 시간이 들기 때문이다. 면접할 때 입고 가야 할 정장을 사는데도 돈이 든다. 청년구직활동지원금이란 스스로 취업을 준비하는 청년들의 취업비용 부담을 완화하고자 지원하는 사업이라고 한다.

지원대상은 기준중위 소득 120% 이하인 가구로 만 18에서 34세인 청년이라고 되어있다. 서류상에는 기준중위 소득이 120% 이상이라도 그 한참 이하로 살아가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18세가 되지 않아도 취업을 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34세까지만 지원한다는 기준은 또 무슨 행정 논리로 정했나? 아마 인구 통계치를 참고하니 지원할 수 있는 최대 연령이 34세까지였을 것이다. 35살이 되면 취업비용이 하늘에서 떨어지기라도 하나?

이미 다 가진 당신들은 한 번이라도 청년의 삶 전반을 고민한 적이 있는가?

단란한 가정을 꾸리고 안정된 직장을 가지고 있으며, 퇴직하면 죽을 때까지 200만 원 가까이 되는 돈을 매달 받게 되어있는 당신들아. 한 번이라도 대한민국에서 죽지 못해 버티고 있는 청년들의 삶에 대해 고민해 본 적이 있는가?

행정실무도 좋다. 규정은 당연히 지켜야 한다. 하지만 그 잘난 행정실무를 하면서 해당 정책이 만들어진 목적을 한 번이라도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실무급 공무원의 직권

정책의 입안단계에서 행정실무집행 차원에서 일어날 모든 변수를 고려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실무급 공무원의 직권이라는 것이 존재하는 것이다. 사람을 보지 않고, 서류만 보고 행정실무를 한다면 사람이 실무를 볼 필요가 없다. 컴퓨터가 훨씬 빠르고 효율적으로 행정실무를 볼 것이다.

청년 정책을 기안하고 집행하는 공무원들에게 마지막으로 묻고 싶다. 당신들에게 도움을 호소하는 청년들의 눈을 제대로 바라본 적이 있는가. 서류는 거짓을 말할 수 있지만, 사람의 눈을 거짓을 말하지 못한다.

일반 국민이 정부와 접촉하는 유일한 창구는 행정실무진이다. 최고위층 공무원의 청년대책에 대한 의지도, 정책고안자들의 완벽한 기안도 청년 정책의 성공을 보장하지 못한다. 행정실무진의 청년을 돕겠다는 의지가 청년 정책의 성공을 가져올 것이다. [청년칼럼=한성규] 

한성규

현 뉴질랜드 국세청 Community Compliance Officer 휴직 후 세계여행 중. 전 뉴질랜드 국세청 Training Analyst 근무. 2012년 대한민국 디지털 작가상 수상 후 작가가 된 줄 착각했으나 작가로서의 수입이 없어 어리둥절하고 있음. 글 쓰는 삶을 위해서 계속 노력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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