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미주의 혜윰 행]

[청년칼럼=최미주] 교원 연수에 간 친한 언니로부터 전화가 왔다. 연수원에서 내 중학교 선생님을 만났다는 것이다. 둘 다 나와 친분이 있을 뿐인데, 한 번도 본 적 없는 선생님을 어떻게 알아봤단 말인가?

사연은 이랬다. 연수원에 온 선생님들이 소속 학교, 과목, 이름을 서로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는데 낯익은 이름이 들렸단다. 혹시나 했는데 전공이 음악이라는 걸 듣는 순간 확실하다 싶어 그분께 나를 아느냐고 물었다고 한다. 언니한테 중학교 은사였던 선생님 관련 이야기를 굉장히 많이 했기에 벌어진 해프닝이다. 내가 그렇게 많이 말했었나? 새삼 웃음이 났다.

그런데 되돌아온 선생님 대답이 더 인상적이었다. ‘혹시 미주 아세요?’ 하는 물음에 단번에 ‘아~ 거기 사는 언니.’ 하며 언니가 사는 지역이름을 대더란다. 선생님 역시 제자가 평소 이야기하던 친한 언니를 세심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픽사베이

대학교 때 모교로 교생실습을 갔다. 학창시절부터 선생님들을 잘 따르는 터라 방과 후엔 집에 가지도 않고 선생님들을 졸졸 따라 다녔다. 카페, 스포츠 용품점에다 배구며 등산까지. 한 달이 금방 지나갔다.

중3 담임인 교감 선생님은 아빠처럼 매일 애정 담긴 잔소리를 했고, 평소 잘 따른 국어 선생님은 예전 그대로의 모습으로 내 모자람을 채워줬다. 체육 선생님은 혹시나 밥이라도 굶을까 떡이며 빵이며 먹을 걸 잔뜩 챙겨줬고, 과학 선생님은 과학자답게 현실적인 조언을 많이 했다. 중1 담임 사회 선생님은 중1 내 모습을 고스란히 기억했다.

특히 음악 선생님은 말하지 않은 힘든 점까지 척척 해결해줬다. 그 후에도 사회생활에 서툰 제자가 힘들어 할 때마다 구세주가 되어 주었다.

낯선 학교에서 교생 실습을 한 동기들 중엔 해당 학교에 불만을 갖기도 했다. 반대로 나는 모교 선생님들의 사랑 속에서 한 달을 풍요롭게 지내며 값진 추억을 만들었다.

혹시 애들이 배고플까 빵을 사고, 감기 걸린 학생에게 잔소리하며 생강차를 억지로 먹이는 내 모습이 스쳐 지나간다. 그리고 느낀다. ‘아, 내가 이런 행동을 한 데는 이유가 있구나.’ 나는 내 제자들에게 과거 선생님들이 베풀어 준 모습 그대로를 흉내 내고 있었다. 사랑을 받아본 사람이 사랑할 줄 안다고, 그런 사랑을 받아봐서 내가 현재 이렇게 행동할 수 있는 거란 생각이 든다.

몇 시간 뒤 음악 선생님에게도 연락이 왔다. 연수원에서 '내 친구'를 만났다고. 분위기가 미주랑 비슷해 단번에 네 친구겠다 생각했다고. 안부를 묻고 당장 선생님과 데이트하기로 했다. 여러 선생님들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음악 선생님이 어떤 마음으로 제자의 고민을 들어줬는지, 왜 고1 담임선생님이 아기 같은 나를 그토록 걱정했는지 이제야 조금은 알 것 같다.

언젠가 나도 제자가 나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하고 다니는, 그래서 제자의 친구까지도 기억하는 좋은 선생님으로 기억될 수 있을까?

스승의 날, 평소 연락하지 못했던 선생님에게 감사 인사를 전한다.

선생님이란 꿈을 꾸게 해준 모든 선생님. 고맙습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최미주

일에 밀려난 너의 감정, 부끄러움에 가린 나의 감정, 평가가 두려운 우리들의 감정.

우리들의 다양한 감정과 생각들이 존중받을 수 있는 ‘감정동산’을 꿈꾸며.

100가지 감정, 100가지 생각을 100가지 언어로 표현하고 싶은 쪼꼬미 국어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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