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세미의 집에서 거리에서]

[논객칼럼=신세미] ‘낫 놓고 기역 자도 모른다’는 ‘ㄱ’ 자 모양의 낫만큼은 아니지만 호미도 살짝 ‘ㄱ’ 자로 구부러진 우리 전통의 농기구다.

서울서 자랐지만 오래 전 여름방학 때 시골집에 갔다가 할머니, 아주머니를 따라 밭에서 호미로 잡초를 솎아내고 흙 속의 감자를 캐본 적이 있다. 호미는 낫에 비해 예리한 날이 덜 길고 넓적하게 휘어진 구조라 초보자도 다루기가 크게 어렵지 않았다. 한 여름 뙤약볕 아래 쭈그리고 앉아 호미 질이 낯설고 서툴렀지만 도시서 경험하지 못했던 농사 일 체험이 신기하고 뿌듯했었다.

현대 일상에선 잊혀 지고 골동 신세였던 호미가 이즈음 해외서부터 유명세를 타고 있다. 세계적인 온라인 쇼핑몰 아마존에서 ‘호미(Ho-Mi)’, 구체적으로 ‘영주 대장간 수제 호미’가 원예코너의 대박 상품이라고 한다. 경북 영주의 한 대장간에서 50여년 경력의 달인이 불에 달군 쇠붙이를 두드려 꼼꼼하게 수작업 하는 호미가 아마존에서 한해 1000여개 이상 팔린다.

아마존닷컴에서 원예도구로 판매 중인 한국의 호미들. Ⓒ아마존닷컴

호미는 일반 원예용 모종삽과 다르게 날 끝이 뾰족하고 쇠 날의 목이 30도 정도 구부러지면서 가늘게 처리하고 자루 부분에 나무토막을 박아 손으로 잡기 좋게 만들었다. 호미가 마당에서 땅을 파고 잡초를 제거하는데 편리하다는 사실이 사용자의 입소문, 혹은 유튜브 등을 통해 확산되면서 서구서 호미애용자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이야기다. 값싼 중국산 제품의 공세에도 불구하고 15달러 정도 하는 한국 장인의 수제품을 찾는 주문이 이어지고 있단다.

해외서 호미가 호응을 얻으면서 국내서도 호미의 재평가가 활발해졌다.

도시사람에게 외국어처럼 생소한 이름의 호미가 박물관 전시의 주역으로 위상이 달라졌다. 서울 농협중앙회 농업박물관에서 ‘호미’전(6월 23일까지)이 지난 21일 개막했다. 전시장에 전국 각 지역별 각양각색 호미들이 한데 모여 있다. 호미는 장인들이 하나하나 손으로 만들기도 하고, 토질이나 자연 조건, 다루는 작물과 경작 방법에 따라 쇠붙이 날의 형태와 날카로운 정도 및 막대의 길이가 조금씩 다르다. 전시장에는 불에 달군 쇠붙이를 두들기는 전통 방식의 호미 만들기 체험존도 마련돼 있다.

우리 옛말에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는다’는 표현이 있다. 미리 하면 혼자 해도 수월한 일을 미루다가 커져 버려 감당하기 힘들어진다는 의미다. 여럿이 함께 하는 가래질과 달리 호미는 개인 작업이 가능해 농가에서도 여성들이 자주 사용한 농기구. 호미가 일상에서 친근했던 여성들이 그 쓸모와 미감을 자연스럽게 터득했던 것 같다.

‘고개를 살짝 비튼 것 같은 유려한 선과, 팔과 손아귀의 힘을 낭비 없이 날 끝으로 모으는 기능의 완벽한 조화는 단순 소박하면서도 여성적이고 미적이다. 호미질을 할 때마다 어떻게 이렇게 잘 만들었을까 감탄을 새롭게 하곤 한다.'

소설가 박완서 선생은 책 제목조차 ‘호미’인 산문집에 이렇게 ‘호미 예찬’의 글을 남겼다. 집 마당에서 흙 일을 즐겼던 작가는 ‘호미 질은 김을 맬 때 기능적일 뿐 아니라 손으로 만지는 것처럼 흙을 느끼게 해 준다’며 어느 나라의 원예기구보다 기능적이고 편리한 수제 무쇠 호미를 아꼈다.

한편 흙을 빚어 구워내는 테라코타 작가 한애규 선생은 아름다운 디자인의 대표사례로 호미를 지목했다. 한 인터뷰에서 그는 “손에 쥐기 쉽고 땅을 파는 농기구로 호미만한 디자인이 어디 있겠느냐”며 “아름답게 꾸미려고 더 구부릴 것도 없고 호미야말로 더하거나 뺄 게 없는 이상적인 디자인”이라고 했다.

통일신라시대 출토 유물에서도 확인된다는 호미는 오랜 세월 사용해온 만큼 전통 시가나 농가의 세시 풍속에도 등장한다. 전통 농기구라면 호미 외에 쟁기 삽 괭이 가래 쇠스랑 낫도 있지만 ‘1년 농사가 호미질에 달려 있다’고 할 만큼 전통적으로 농사일에서 김매기용 호미의 비중이 컸던 것 같다

‘오늘도 다 새었다 호미 메고 가자스라
내 논 다 매어든 네 논 좀 매어주마
오는 길에 뽕 따다가 누에 먹여 보자스라’

1580년 무렵 조선 선조 시대 정철은 강원도 관찰사 시절 지은 시조 ‘훈민가’에서 호미와 더불어 부지런히 일하고 서로 돕는 태도를 일깨웠다.  

또한 음력 7월 15일 백중의 별칭이 ‘호미 씻는 날’이었다. 농촌에서 논 밭의 김매기도 끝나고 비교적 한가한 시기라 잠시 농사일을 쉬며 즐기는 마을 축제였다. 지방 별로 호미씻이 호미걸이, 한자어로 세서연(洗鋤宴)이라 불렀다.

경기도 고양시 송포에 음력 칠월 칠석 세시민속으로 김매기가 끝난 후 여름농사를 마무리하고 풍년을 기원하는 ‘호미씻이’가 전해진다. 여름 비에 김매기가 밀렸을 때 모두 나서 김매기를 하며 부르는 평안도 민요 ‘호미 타령’이 있다.

우리 전통 농기구의 쓸모를 알아보는 해외 구매자의 호평에 힘입어, 용도 뿐 아니라 막 쓰는 평범한 일상용품까지 자연스럽게 디자인감각을 발휘한 우리 선조들의 탁월한 미감을 새롭게 주목하게 된다.

신세미

전 문화일보 문화부장. 연세대 신문방송학과 졸업 후 조선일보와 문화일보에서 기자로 35년여 미술 공연 여성 생활 등 문화 분야를 담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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