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하늘의 하프타임 단상 16]

캥거루는 벽을 넘었습니다,
동물원의 벽을.

하나님 맙소사,
벽이 어찌나 높던지요.

하나님 맙소사,
세상은 어찌나 아름답던지요.

43살 나이에 뇌졸중으로 쓰러진 뒤 가까스로 의식은 회복했지만 몸 전체가 마비된 채 살아야 했던 프랑스 언론인 장 도미니크 보비(1952-1997)가 읊은 ‘캥거루의 노래’다. 그는 이후 남은 인생 15개월 동안 자신의 유일한 소통수단인 왼쪽 눈꺼풀을 20만 번 이상 움직여 책 ‘잠수복과 나비’를 냈다. 그리고 8일 뒤 나비가 되어 날아갔다고 한다.

그 높은 벽을 뛰어넘는 용기와 치열함이 있었기에 그는 누구도 만나지 못한 아름다운 세상을 볼 수 있었다. 어느 순간부터인가 작은 울타리 앞에서도 당황하는 자신을 보며, 그의 노래가 새삼 감동과 존경심으로 다가온다. 은퇴자가 다시 일을 시작하는 것도 크건 작건 하나의 벽을 뛰어넘는 일일 것이다.

어떤 이유에서든 나와 같은 은퇴자 대다수가 인생 후반전에도 계속 일을 하기 원한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이 오랜 기간 해 오던 일이라면 별다른 준비 없이도 잘 해낼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런데 이것이 착각일 수 있다는 것을 요즘 깨닫는다.

Ⓒ픽사베이

같은 일을 한다 해도 자신이 일하는 환경은 예전과 다르다. 문화가 달라졌다. 이것은 같은 일이라 해도 일 처리 방식이 변했음을 의미한다. 사전 이해나 준비 없이 나섰다가는 낭패를 볼 수도 있는 것이다.

나 역시 육십 대 중반에 스타트업을 처음 경험한다. 이곳에서도 오랜 기간 내가 해오던 일을 계속하니 즐겁다. 하지만 준비가 있었으면 좋았을 것이다. 일의 종류는 같아도 많이 다른 일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생각지 못했다.

일반적으로 은퇴자들이 지내온 직장은 수직체계의 피라밋 조직이다. 그런 은퇴자들이 그동안의 경험을 활용해 사회적기업에서 일하게 되는 경우가 요즘 들어 제법 생겨난다. 그런데 이들 사회적기업은 대부분 수평조직 체계의 스타트업이다. 이로써 은퇴자들은 생소한 문화의 벽을 마주하게 되는 것이다.

실리콘밸리의 스타트업 창업가 폴 그레이엄(Paul Graham)은 자신이 쓴 칼럼에서 “스타트업은 빠르게 성장하도록 설계된 기업이다”라고 특징짓는다. 스타트업의 가장 큰 덕목은 빠른 성장이라는 얘기다. 이를 위해 이들은 앞만 보고 달려나간다고 했다.

겉으로 드러나는 스타트업의 특징 중 하나로 ‘자유로운 노동환경’을 얘기한다. 우선 복장이 자유롭고, 출퇴근도 탄력적이다. 이것이 구성원들의 업무집중도를 높여 더 빠른 성장을 가능케 한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또 하나 스타트업의 근간을 이루는 문화로 ‘수평적 조직’을 꼽는다. 계급장을 없애는 것이다. 회사대표와 막내가 마주 앉아 문제해결을 위해 토론한다. 적은 인원으로 많은 역할을 수행하려면 빠른 의사결정이 요구된다. 그러기에 스타트업은 의사결정에 여러 단계를 거치는 수직조직보다 수평적 조직을 택한다.

하지만 대다수 기존 기업들의 경우는 어떠한가. 아직도 피라밋 구조가 대부분이다. 개인의 창의성조차도 조직 결속력 안에서 발휘되길 원하는 곳이 많다. 이들은 상명하달(上命下達)의 조직체계를 띈다.

만약 스타트업이 전통적인 기업에서 일하던 사람들을 데려다 그들의 기존 업무를 계속하도록 한다면 어떨까? 처음엔 문화 차이로 인한 어느 정도의 갈등이 불가피할 것이다. 그리고 이 물리적 결합이 화학적 결합으로 바뀌는 데는 시간과 에너지가 요구된다.

갈등(葛藤)이란 한자어는 칡(葛)과 등나무(藤)가 같은 나무를 감아 올라가는 모양을 나타낸다. 이들을 한 공간에 심어 놓으면 칡은 왼쪽으로, 등나무는 오른쪽으로 감아 올라가 서로 꼬이게 된다. 자연상태에서는 피할 수 없는 현상이다.

문화의 차이도 이런 현상을 초래한다. 그래서 다른 문화권을 여행하기 전에 문화 차이를 공부하기도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선의로 한 행동이 자칫 상대에게 무례(無禮)로 비쳐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일례로 대화를 나누면서 상대방의 눈을 바라보는 ‘아이 컨택’은 관심의 표현이다. 일반적으로 친밀감을 높여주는 행동으로 이해된다. 하지만 문화가 다른 아프리카와 일부 중앙아시아지역에서는 이것이 무례가 된다. 상대방을 얕잡아 본다는 뜻으로 해석되는 것이다.

같은 공간에서 숨 쉬어도 그동안 생활해온 방식과 환경, 경험의 차이가 이러한 문화 차이를 만들어 낸다. 부모와 자녀 간에 쉽게 좁혀지지 않는 세대 차이가 그것일 것이다. 거기에 반드시 따라붙는 두 글자가 ‘갈등’이다.

기업도 어떤 전통과 관습을 지키며 지나왔는지에 따라 특유의 문화를 갖는다. 그것은 그 조직에서 생활하는 구성원의 몸에서도 자연스럽게 배어나는 것을 본다. 삼성 사람들과 현대 사람들은 행동 패턴이 확연히 다르다. 그것은 다른 것이지, 누가 틀린 것은 아니다.

잠깐 재미있는 상상을 해 본다. 만약 삼성그룹이 현대자동차 사람들을 데려다 자동차를 만든다면, 그 조직은 어떤 문화를 갖게 될까? 처음엔 약간의 혼란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한쪽에서는 전통이고 관습인 ‘당연한 일’이 다른 한쪽에는 불쾌함을 유발하는 ‘무례’가 될 수도 있다.

심리학에서는 갈등을 ‘개인이나 집단이 가지고 있는 두 가지 이상의 목표나 동기, 정서가 서로 충돌하는 현상’이라고 설명한다. 이러한 현상은 개인이나 집단의 내·외부에서 발생할 수 있다.

그것을 해결하려면 ‘역지사지(易地思之)’로 상대의 입장을 이해하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갈등의 오면 먼저 처지를 바꾸어 생각해 보라는 주문이다. 교과서에 나옴 직한 얘기다. 실행이 말처럼 쉽지는 않지만, 포기해서는 안 될 일이다.

지난날을 되돌아보니 내 인생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 게 ‘어떤 사건’이나 ‘갈등’ 자체가 아니었다. 거기에 내가 ‘어떻게 반응했는지’가 내 삶에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 반응은 나의 선택이다. 내 삶에 평화를 유지하기 위한 선택으로 ‘침묵’을 넘어설 만한 것은 없어 보인다.

너희는 외치지 말며
너희 음성을 들리게 하지 말며
너희 입에서 아무 말도 내지 말라

그리하다가 내가 너희에게
‘외치라!’고 명령하는 날에 외치라(수6:10)

 최하늘

 새로운 시즌에 새 세상을 봅니다. 다툼과 분주함이 뽑힌 자리에 쉼과 평화가 스며듭니다. 소망이 싹터 옵니다. 내가 죽으니 내가 다시 삽니다. 나의 하프타임을 얘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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