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요의 미디어 속으로]

“보는 내내 소름이 돋네요...서로를 존중해주며 각자의 입장을 차근차근 말씀해주시는 데 양측 다 공감이 되고 한 국민으로서 20대 대학생으로서 어떻게 합리적으로 판단해야 할지 큰 도움이 됐습니다. 이렇게 점잖고 건강한 토론이 앞으로 많아진다면 대한민국의 미래가 훨씬 밝아질 것이라 생각합니다. 사실 홍 대표님에 대한 편견이 있었던 게 사실이지만 오늘 토론은 정말 감명 깊게 봤습니다...”

‘홍카×레오’에 쏟아진 찬사와 비판

지난 6월 3일 유튜브로 방송된 ‘홍카×레오’에 달린 댓글 중 하나다. 혐오와 증오, 대립과 갈등만 보여주는 정치 현실에서 두 사람의 토론은 오랜만에 신선한 모습을 보여주었다는 반응이 대부분이다.

홍준표 전 대표가 유시민 이사장보다 토론을 잘했다거나 더 옳다는 댓글도 꽤 많다. 확증편향적 콘텐츠 소비 패턴을 벗어나지 못한 홍 전 대표 지지자들일 것이다.

보수와 진보를 대표하는 두 논객이 상대방의 말을 경청하고 그 정당성을 일부 인정하면서 자신의 입장을 논리적으로 제시하는 자세였지만, ‘진정성’의 결여로 감동을 주지는 못했다는 비판도 있다. 자신의 정치적 입장을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으로 포장하는 전시장으로 전락했다는 것이다.

이 방송은 130만이 넘는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고, 달린 댓글도 2만 개가 넘는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전 대표의 ‘TV홍카콜라’구독자 30만과 유시민 사람사는세상 노무현재단 이사장의 ‘알릴레오’구독자 85만의 합을 넘는다. 정치권과 정치권에 기생하는 행태를 버리지 못한 언론은 ‘나만 옳고 너는 틀렸다’는 진영논리와 배타적 이분법에 빠져있다. 이 방송에 대한 폭발적인 관심은 현실을 타개할 수 있는 희망을 찾고자 하는 국민들의 염원 때문일 것이다.

10년 전, ‘대폿집 토크’데자뷰

10여 년 전 비슷한 토론방송을 한 적이 있다. 2007년 12월 2일 일요일 저녁 8시에 KBS스페셜 ‘대폿집 토크, 4인의 정객- 시대를 토(吐)하다’란 프로그램이다. ‘홍카×레오’ 방송 첫머리에 홍 전 대표가 “10년쯤 전에 KBS 특집 프로그램에서 유시민 이사장과 토론하고 처음이다”라고 말했던 그 프로그램이다. 당시 나는 프로그램 책임프로듀서였다.

17대 대선을 20일 남겨놓은 시점이었다. 정동영 후보를 내세운 대통합민주신당의 유시민 대통합위원장, 이명박을 내세운 홍준표 한나라당 클린정치위원장, 권영길을 내세운 노회찬 민주노동당 선대위원장, 문국현을 내세운 정범구 창조한국당 선대본부장에게 국회도 아니고, 방송국 토론 프로그램 스튜디오도 아닌, 서민들이 즐겨 찾는 선술집에서 만나자고 제안했다. 숙명여대 부근이었다. 매상은 제작진이 다 부담하기로 하고 선술집을 하루 저녁 통째 빌렸다. 필사의 레이스를 펼치고 있는 대선 개막 첫 주였다.

선거에 가장 깊숙이 참여해 뛰고 있는 각 캠프 책임자들에게 한 호흡 쉬면서 우리 사회의 미래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대화하자는 것이었다. 상호 비방과 속 보이는 선거운동만 아니라면 좋겠다는, 단 두 가지 조건만 내건 주제 제한 없는 토론, 소주를 앞에 두고 한자리에 둘러앉은 그들이 ‘계급장 떼고’ 들려줄 취중토크였다. 토크를 녹화하기 위해 중계차 한 대 외에 ENG 카메라 3대를 더 동원했다. 

한자리에 모이자 홍준표 위원장이 먼저 입을 뗐다.

“우리가 얼마나 거짓말만 하고 다녔으면 KBS가 술까지 먹여가면서 솔직하게 얘기하라고 하겠노?”

4인 중에 제일 나이가 어린 유시민 위원장은 부지런히 돼지목살, 곱창 등을 구워서 익으면 ‘형님들(?)’ 접시 위에 옮겨주는 ‘착한 아우(?)’ 역할을 하면서도 부지런히 토론을 끌어나갔다. 현장 유세를 마치고 조금 늦게 합류한 노회찬 위원장과 정범구 본부장도 토크에 본격 참여했다. 당대 최고의 정치 논객들은 솔직하게, 계급장 떼고 선거가, 정치가 우리 사회의 어떤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 토로했다. 정정당당하게 선거에 임할 것도 약속했다.

‘말 잔치’에 가려진 ‘정치 구조 개혁’

제작을 담당했던 황진성, 조정훈 두 프로듀서는 이를 깔끔하게 편집해 방송에 내보냈다. 다행히 그때는 음주 방송에 대한 심의규제도 없었다. 방송 다음 날, 아날로그 시대라 댓글은 없었지만 수많은 전화를 받았다. 제작진이 신선한 기획을 마련했다고 격려하는 내용이었다. 프로그램은 장안의 화제가 되었다. 약한 취중에 그들은 서로 차이를 인정하면서도 상대를 이해하고 존중하는 ‘숙의’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비방과 막말, 프레임 왜곡, 심지어 상대를 타도 대상으로 보는 말은 자제했다.

10년 후 세 사람은 정치 일선에서 물러났고, 한 사람은 타계했다. 그리고 다시 ‘홍카×레오’가 등장했다. 그래서 이후 우리 정치는 더 나아간 것인가? 적어도 더 나아지는 계기는 마련했다고 할 수 있을까?

10년 전 그런 사례를 보여주었다고 해서, 그리고 다시 두 사람이 이런 사례를 보여주었다고 해서 정치인들이나 언론이 진영논리를 벗어나 열린 마음을 보여줄 수는 없다. 여야 거대 양당 구조로는 ‘올 오어 낫씽’ 게임만 무한 반복할 수밖에 없다. 정치나 언론이 활동하는 구조와 틀을 바꾸지 않고 말만으로는 바뀌는 게 없다. 말은 정치적 올바름을 치장하는 액세서리일 뿐이다. 

 이상요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 교수

  방송통신심의위원회 보도교양특별분과 위원

  전 <KBS스페셜> C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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