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애의 에코토피아]

[논객칼럼=박정애] 초여름의 천변 산책로에는 우유 판촉전이 진행 중이었다. 다른 계절에는 뜸하다가 여름만 되면 여러 우유 회사의 판촉 사원들이 일정한 간격으로 가판대를 설치하고 우유 홍보에 열을 올리곤 했다. 판촉 사원들마다 공짜 우유를 내밀며 말을 걸었다. 이번 기회에 아들한테 최고의 우유를 먹여야겠다고 생각했다.

판촉 사원들에게 이것저것 깐깐하게 캐물었고 그 결과 몇 가지 전문적인 지식까지 알게 되었다. 고온 살균보다는 저온 살균 우유가 신선하다는 것, 맛이 고소하다는 것은 풀이 아닌 옥수수 사료를 더 많이 먹인 증거라는 것.

나는 고민 끝에 서비스로 100ml짜리 우유도 열 개나 주고 한 달 간은 무료로 배달해 주겠다고 제안하는 한 판촉 사원이 내민 계약서에 서명을 했다.

Ⓒ픽사베이

“너 정말 이러기야?”

그렇게 엄선해서 고른 우유였건만 녀석은 우유를 입에 대지도 않았다. 시음 때는 ‘나도 나도’ 하며 게걸스럽게 마셔대더니 막상 1년 약정하고 배달을 하니 입에 대기는커녕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결국 우유는 내가 마셨고 아들은 내가 우유를 마시는 틈을 타서 재빠르게 내 양쪽 가슴을 만지작거렸다.

“나는 세상에서 엄마 쭈쭈가 제일 좋아.”

우유를 안 마실 거면 엄마 쭈쭈도 만지지 말라고 호되게 야단을 쳤다.

그러던 어느 날 담임 선생님한테 전화가 왔다. 녀석이 학교에 입학하고 처음으로 체험학습을 간 날이었다. 버스로 한 시간 정도 거리에 있는 ‘늘 푸른 농장’에 간다고 했다. 그런데 녀석이 젖 짜기 체험 도중 젖소 뒷발에 채여 뒤로 발라당 넘어졌다는 것이다. 아들이 입원했다는 병원으로 가면서 허술하게 관리한 선생님한테도 화가 났지만 내 아들한테 뒷발차기를 한 그 젖소를 찾아가 엉덩이에 발길질이라도 해 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다행히 부상은 심하지 않았다. 나는 금세 젖소를 잊었다. 퇴원한 녀석을 데리고 다시 산책을 시작했다. 가판대 판촉 사원과 산책로를 오가는 사람들을 아랑곳 하지 않고 녀석이 내 셔츠 안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녀석의 손을 빼내랴, 주위를 두리번거리랴 곤욕을 치렀다. 녀석은 또 세상에서 엄마 쭈쭈가 제일 좋다며 쭈쭈 타령을 했다. 그러다 말고 물었다.

“그런데 엄마, 우리가 소 쭈쭈를 다 먹으면 송아지는 뭘 먹어?”

“송아지?”

나는 녀석의 질문에 그제야 정신이 번쩍 들었다. 순간 산후조리원에 머물렀던 시간들이 떠올랐다.

두 시간 간격으로 모유를 먹인다는 것은 출산보다 더한 고통이었다. 숙면을 취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와중에도 모유가 나오지 않을까봐 그것을 더 걱정했다. 아이에게 초유를 먹여야 하는데 제왕절개를 했기 때문에 혹시라도 초유에 항생제가 들어 있을까봐 그것도 조마조마해 했다. 젖은 계속 도는데 녀석이 잘 빨지를 못 해 젖이 불다 지쳐 젖몸살이 난 적도 있었다. 새벽에 젖 마사지를 받고 젖을 짜다가 조리원이 떠나가라 소리를 꽥꽥 질러대기도 했다.

“엄마, 나 사람이 아니라 짐승 같아. 한 마리 젖소가 된 기분이야.”

나는 밤마다 엄마에게 전화해 울며 이렇게 하소연을 했다.

그 때 했던 말을 떠올리자 마음이 아려왔다. 녀석이 묻기 전까지 젖소한테서 젖이 나오기 위해서는 새끼를 낳아야 한다는 생각은 해보지 못 한 것이다. 젖소는 그냥 젖이 나오는 소인 줄 알았다. 엄마는 그냥 여섯 명의 아이도 풍덩풍덩 낳아 잘 기를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듯이. 겨우 딱 한 명, 녀석을 낳아 기르면서야 내 엄마가 얼마나 고통스런 삶을 살았을지 감히 짐작했으면서 젖소까지는 생각하지 않았다. 젖소는 그냥 그렇게 생각해도 되는 존재인 줄 알았다.

내 아들에게 최고의 우유를 찾아주기 위해 깐깐하게 굴었던 나. 하지만 젖소의 고통에는 무감각했던 나. 그런 내 자신이 부끄럽고 세상의 모든 젖소들에게 한없이 미안한 감정이 솟구쳤다. 

 박정애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졸업.
수필가이자 녹색당 당원으로 활동 중.
숨 쉬는 존재들이 모두 존중받을 수 있는 공동체를 향해 하나하나 실천해가려고 노력하는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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