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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소리 2題[안희진의 민낯칼럼]
안희진 | 승인 2019.07.04 10:19

<개소리I>

이런 일이 있었다. 한국장애인연맹(한국 DPI) 기획실장/국제위원을 겸했던 시절, 호주DPI에서 전문이 왔다. ‘한국개의 종류와 애완견 문화에 대해 알려 달라’고 했다. DPI(Disabled Persons' International)에서 난데없이 개종류? 애완견 문화? 터무니없다고 생각했지만, 진돗개, 삽살개, 풍산개는 물론, 똥개, 잡종개 등등에 이르기까지 상세히 조사하여 전문을 보냈다.​

이틀 후 다시 전문이 왔다. 한국 개역사를 상세히 알려달라고 했다. 개역사? 개역사라니? 살큼 짜증이 일었지만, 국제회의 때마다 만나는 사람들이요, 자주 통화하는 사이이니 화를 내거나 모른 척할 수는 없다. 다시 가축으로서의 개, 가족으로서의 개, 하다못해 보은의 오수개 설화까지 엮어 써보냈다. 다시 또 왔다.​

이번에는 “너는 개를 좋아하느냐, 보통 한국인들은 모두 개를 좋아하느냐”였다. 허허... “나도, 우리나라 사람들 모두 개를 아주 좋아한다”고 답했다. 이어 다시 질문이 왔다. “자주 먹느냐”는 것이었다.

바로 이거였군!! 먹냐고? 나는 안먹는다. 그런데 내가 먹든 말든, 자주 먹든 말든... 대체 너희들이 왜 그걸 묻느냔 말이다. 이런 말도 안되는 일에도 일일이 답을 해야 했으니 늘 바쁠 수밖에 없었나 보다. 도무지 비싼 대가를 치르면서 영어를 배워서는 이따위 전문이나 쓰고 있어야 하는 것이 여간 한심스럽지 않았다.

사정은 이랬다. 호주는 법에 의해 국적과 체류자격과 관계없이 신청 맹인들에게 맹도견(盲導犬:맹인인도견)을 나눠 주게 되어 있는 바, 호주에 온 한국맹인이 맹도견을 신청했는데, 맹도견 지급을 결정하는 회의에서 “맹도견을 잡아 먹을 수도 있으니 한국DPI에 물어보고 결정하자”고 했다는 것이었다. ​

개고기에 맛들린, 빠진 자들에게는 무의미한 말인지 모르겠으나, 아시다시피 주로 맹도견으로 쓰는 리트리버 류는 생긴 것부터 얼마나 착하고 순하게 생겼는지 모른다.

그렇지만 그 개를 보고 침을 흘리며 도살을 획책하는 자가 있을 수도 있겠고, 어쨌거나 한국인들이 얼마나 개를 잘 먹는다고 소문이 났길래 국제기구에서 이따위 대화까지 나누게 되었는지 모를 일이다.​

그즈음, 동물애호가라는 프랑스여배우 브리짓드 바르도가 한국인의 ‘개먹는 음식문화’에 대해 오버하는 망언을 늘어놓다가 손석희에게 야단 맞을 때였으니, “걱정말고 한국 맹인에게 맹도견을 지급하라”고 대답은 했으되, 개고기 좀 작작 먹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들었다.

수도 없는 개들이 죽어, 국솥으로 들어가는 계절이 왔다.

<개소리 II>

일본 야마나시겐(山梨県), 고후(甲府)시에서 열렸던 <제5회 미일장애인협의회> 업저버 자격으로 참석했을 때 일이다.

맹인 인도견을 끌고 참석했던 미국 DPI 회의대표는 항공료를 절약하기 위해 서울경유 KAL행 항공권을 끊었다. 도쿄에서 인천을 거쳐 워싱턴으로 간다는 얘기다. 당시 한국 업저버 참가자 3인과 같은 비행기였다.​

내릴 즈음, 문제의 미국 맹인이 황급히 말을 걸었다. 인천공항에 도착하면 ‘맹도견이 똥을 싸야 하는데, 실내에서는 똥을 싸지 못한다. 반드시 나와 함께 공항 밖으로 나가야 한다’며 ‘통과여객이라서 공항 밖엔 나갈 수가 없으니 어떻게든 해결해 달라’는 것이었다. ‘똥 때를 놓치면 비행기에 왕창 퍼질러 놓는 것은 물론 맹도견의 역할까지도 잊는다’는 거의 협박(?)에 가까운 얘기도 곁들였다.

Ⓒ픽사베이

이렇게 미국 개똥까지도 처리해야 했으니 <국제위원>인 건 분명했나보다. 입국심사를 하는 법무부 분실로 찾아가 “개가 똥을....운운” 사정 얘기를 했으나 ‘말이 안되는 얘기’인지라 거절당했다. 결국 법무부 본부 고위관료에게 전화를 거는 소동 끝에 맹도견과 미국 맹인의 입국을 허가 받았다.

조건은 ‘필자가 책임지고 함께 대한민국 영토로 들어가 개가 똥을 마치면 깨끗이 뒷처리까지 하고 다시 보세구역으로 돌려 보내야 한다’는 것이었다. ​

나는 그날, 인천공항 밖 주차장에서 미국맹인과 함께 맹도견이 ‘똥 다 쌀 때까지’ 눈을 부릅뜨고 마지막 한덩어리, 똥꼬까지 살핀 후 개똥을 치우고 다시 돌려보냈는데, 나로서도 전무후무한 일이겠지만, 누군들 그런 일이 있었겠으랴.

개똥까지 치우는, 짐승과 인간을 넘나들며 민간외교관으로서의 역할을 다 할 때 일이다.

 안희진

 한국DPI 국제위원·상임이사

 UN ESCAP 사회복지전문위원

 장애인복지신문 발행인 겸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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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희진  anizini@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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