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세진의 지구촌 뒤안길] 세계로 확산되는 트럼프식 자국우선주의

[논객칼럼=유세진] 지난달 29일 일본 오사카(大阪)에서 아베 신조(安倍晉三) 일본 총리가 주최한 주요 20개국(G20) 정상회담이 막을 내렸다. 아베 총리는 폐막 정상선언에서 "투명하고 예측 가능하며, 안정된 무역 및 투자 환경이 구축돼야만 한다"고 촉구했다. 미국과 중국 간의 상호 관세 보복으로 무역전쟁이 벌어지면서 세계 경제가 위축될 것이란 우려가 커지고 있는 것을 의식한 발언이었다. 아베는 오사카 G20 정상회담을 준비하면서 자신과 일본의 이미지를 보호무역이 확산되는 국제사회에서 자유무역의 지도자로 각인시키기 위해 오랜 노력을 기울여 왔다.

그러나 아베가 내세우고 싶었던, 규칙을 지키는 국제무역 질서의 지도자로서의 모습은 오래 가지 못했다.

폐막 이틀 뒤인 1일 일본은 한국에 대해 반도체 등의 제조에 사용되는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등 3개 품목에 대한 수출 규제를 강화한다고 발표했다. 일본은 강제징용 피해자들에 대한 한국 법원의 피해 배상 판결로 양국 간 신뢰 관계가 무너져 신뢰를 바탕으로 한 무역관계가 더이상 가능하지 않게 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일본은 무역관계를 재조정하는 것일 뿐 강제징용 피해 배상 판결에 따른 보복 조치는 아니라고 궤변을 늘어놓기까지 했다. 세코 히로시게(世耕弘成) 경제산업상은 3일 한국에 대한 수출 규제를 철회할 생각이 전혀 없다고 강조했다. 또 아베 총리는 "약속을 지키지 않는 나라를 우대해줄 수는 없다"고 말했다. 이는 아베가 자신이 뒤엎은 약속에 대해서는 인식조차 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픽사베이

미국의 월 스트리트 저널(WSJ)은 2일(현지시간) 아베 일본 총리가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각본을 따라 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트럼프의 애완견'이라는 조롱을 듣기까지 한 아베가 트럼프를 흉내낸 것이다. 한국과의 외교 분쟁에 수출 규제라는 경제 보복 카드를 꺼내든 것은 관세 부과 카드로 중국을 압박해 막대한 무역적자를 줄여보겠다는 트럼프의 미국 최우선(Ameria First)을 본따 일본 최우선을 주장한 것이란 지적이다. 외교와 경제를 구분하지 못하는 이러한 태도 돌변에서 자유무역의 수호자를 자처한 과거의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WSJ은 아베 총리는 오는 21일 일본 참의원 선거를 앞두고 자신에 대한 지지층의 결속을 이끌어 선거에서 승리하는 것까지 목표로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정치와 경제를 혼동하는 전형적인 모습이라 할 수 있다.

신문은 그러나 이러한 일본의 대한 수출 규제 발표에 국제사회에서는 벌써부터 전세계적인 공급망 붕괴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세계는 점점 더 서로 연결돼 어느 한 나라에서 생산에 차질이 빚어지면 그 나라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한국은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세계 시장에서 커다란 우위를 지키고 있는데, 일본의 수출 규제로 한국의 공급에 차질이 빚어지면 한국산 부품을 사용하는 전세계 기업들로 생산 차질이 순차적으로 확산될 것이란 지적이다. 여기에는 물론 일본 기업들도 포함된다. 당연히 일본 내에서도 피해를 우려한 반대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주장하는 미국 최우선이란 모든 나라의 이익을 함께 키우는 대신 다른 나라의 희생을 전제로 자국의 이익만을 극대화하겠다는 자국이기주의이자 국민들의 불만을 일시적으로 해소해주는 포퓰리즘일 뿐이다. 결코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이러한 이기주의적 주장은 받아들여지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지난 5월 치러진 유럽의회 선거에서 자신들의 일자리를 빼앗아간다는 이유로 이민에 반대하는 극우 세력들이 득세하는 등 세계 곳곳에서 트럼프식의 자국우선주의가 거세지고 있다. 자신의 정치적 이득을 위한 가짜뉴스가 극성을 부리는 것도 트럼프 미 대통령이 자신에 불리한 내용은 무조건 가짜 뉴스로 몰아부치는 행태를 보인 후 세계 각국에서 공통적으로 심해지고 있다. 

WSJ의 보도 하루 전 영국 BBC는 지구의 허파로 불리는 브라질 아마존에서 1분에 축구 경기장 하나만큼의 열대우림이 파괴돼 사라지고 있다는 것이 최근의 영상사진 판독을 통해 드러났다고 전했다. 브라질의 이러한 아마존 파괴는 '브라질의 트럼프'라고 불리는 자이르 보우소나루 대통령이 지난 1월1일 취임한 이후 급속히 가속화됐다. 보우소나루 브라질 대통령은 전지구적 재앙이 될 게 뻔한 기후변화를 막기 위한 아마존 열대우림 보존보다도 아마존 개발을 통한 눈앞의 이득이 더 중요하다는 입장이다. 그는 아마존이 세계 공통의 유산이라는 주장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한다. 아마존은 브라질의 것이기 때문에 브라질의 이익을 위해 개발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브라질의 농업계나 광산업계에서는 이에 찬성할지 모르지만 전세계 환경론자들은 대경실색할 수밖에 없다.

이렇듯 단기적인 눈앞의 작은 이익을 위해 장기적인 더 큰 이익도 포기하는 단견적 자국우선주의가 갈수록 거세지고 있는 게 오늘의 국제사회 현실이다. 한번 밀리면 끝장이라는 인식도 점점 더 강해지고 있다. 일본의 수출 규제에 우리 정부는 어떻게 대응해나갈 것인가? 정부는 이번에 일본이 겨냥한, 한국의 '아픈 고리'인 소재산업 발전에 매년 1조원을 투입해 집중 육성해나가겠다고 밝혔다. 또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해 일본 수출 규제의 부당성을 극복한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이는 모두 오랜 시간을 필요로 하는 대책들이다. 당장 우리 기업과 경제가 입을 타격은 피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안정적인 한일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근본적인 대책 마련이 절실하다.

 유세진

 뉴시스 국제뉴스 담당 전문위원

 전 세계일보 해외논단 객원편집위원    

 전 서울신문 독일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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