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라니의 날아라 고라니]

[청년칼럼=고라니] 세계여행. 이 네 글자만 들어도 가슴 뛰던 시절이 있었다. 낯선 도시에서 듣도 보도 못한 음식을 먹을 때 가장 큰 행복을 느끼는 난 사는 게 힘들 때마다 어딘가 떠날 생각에 위안을 얻곤 했다. 에딘버러에 눌러 앉아 남성용 전통치마를 입고 거리를 활보할 거라든가, <비포 시리즈>에 나온 장소들을 영화 속 시간 순서대로 가보겠다는 꿈에 부푸는 식이었다. 

얼마 전 친구 한 명이 3년 반 다닌 회사를 관두고 세계여행을 떠났다. 갑작스런 결심은 아니었다. 그는 입사할 때부터 여행경비가 모이면 바로 사표를 낼 거라 이야기하곤 했다. 다만, 그가 계획을 정말로 실행에 옮길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나이 서른을 넘어 1년의 세계여행을 떠나는 건 청춘드라마에나 나오던 일이니까. 

Ⓒ픽사베이

나이를 먹을수록 선택의 무게는 점점 늘어 간다. 이젠 빈말로라도 세계여행을 가고 싶다거나 대학원에서 공부를 더 하고 싶다는 말은 하지 않는다. 그저 먹는 것, 입는 것 아껴서 일 년에 한두 번 긴 여행을 가고, 방통대에 편입해 퇴근 뒤 하고 싶던 공부를 하며 자족할 뿐이다. 생각보다 아쉬움은 크지 않다. 세계여행은 건강관리나 열심히 하다 정년 이후에 가면 그만이지 싶다. 

욕망의 크기가 생각보다 작았을 수도, 정해진 궤도를 위성처럼 떠다니는 삶에 익숙해진 걸 수도 있다. 그것도 아니면 어른의 용기라는 것이 남은 인생을 걸고 무언가에 도전하는 것보다는 지겹고, 지치고, 버거운 내 일상의 끝자락을 들어 올려 그것의 평범한 민낯을 마주하는 일이라는 걸 알게 됐기 때문인 것도 같다. 인생의 대단한 전환점을 꿈꾸며 살기에는 개선해야 할 현재가 눈에 밟힌다. 너무 많이. 

친구가 떠난 세계여행은 도피가 아니었다. 믿는 구석이 있어서 나이브하게 결심한 유흥도 아니었다. 여행은 그의 현실이었다. 내가 은행잔고와 집값을 걱정하듯, 그는 평생 하고 싶은 업을 고민하며 길을 떠났다. 동물행동학 연구는 그의 오랜 꿈이었고, 친구는 지금 아마존을 거쳐 갈라파고스에 있다. 야생동물이 지나가길 기다리며 몇 시간을 꼼짝 않고 잠복하다 담에 걸리기도 하고, 동물보호소에 갇혀 있는 아나콘다를 보며 불쌍해하기도 하며, 어떤 일이 적성에 맞을지 치열하게 고민하고 있다.

우리 30대의 꿈속엔 동화 속 주인공 대신 지독히 현실적인 내가 산다. 난 이제 책임질 수 있는 꿈만 꾸지만, 그것도 만만치는 않다. 바라는 모습이 되기 위해선 그동안 살아온 관성에서 벗어나야 하기 때문에. 지금 내가 가진 꿈은 어젯밤 여자친구와 전화통화를 하며 다툰 이유를 차분히 돌아보고, 그녀의 상한 마음을 보듬어 주는 것이다. 그리고 오늘 상사의 부당한 업무지시에 적어도 세 번 중 한 번은 이의제기하는 것, 민원인이 헛소리를 하더라도 그의 삶 전체를 함부로 재단하지 않는 것, 더위 먹었다는 핑계로 운동을 빠지지 않는 것이다.

이 거창한 꿈들을 하나 둘 이루다보면, 정년퇴직을 할 때 즈음엔 굳이 큰 용기를 내지 않더라도 내 평범한 얼굴을 똑바로 마주볼 수 있게 되지 않을까. 머리 빠지고 배 나온 아저씨가 되어 있어도 괜찮다. 그 때 난 세계여행을 갈 거니까.

고라니

칼이나 총 말고도 사람을 다치게 하는 것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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