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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리에 안 맞는 일을 못 견뎠던 그를 기리며[석혜탁의 말머리]
석혜탁 | 승인 2019.07.19 12:59

"학교 다닐 때 제일 싫었던 게 가정조사였습니다. (...) 정말 질색은 부모 학력을 물어볼 때였죠. 나의 어머니는 국졸이고, 아버지는 국퇴다, 다른 아이들 앞에서 그렇게 말하는 게 너무나 싫었습니다. 그래서 대강 중졸 또는 고졸 정도로 거짓말을 하곤 했는데 그 기분이란......"

여러 명사와의 인터뷰를 엮어서 낸 책 <훔치고 배우고 익혀라>에서 본 구절이다. 2012년에 발간된 책인데, 우연한 계기에 얼마 전 읽어보게 됐다. 

이 말을 한 사람은 경기고, 서울대 상과대를 졸업한 엘리트 정치인이었다. 그는 행정고시를 붙고, 미국에서 정책학 석사학위를, 다시 국내에서 행정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다소 차가워 보이면서도 자유분방하고 직설적이었으며, 음반도 몇 장이나 낸 '뮤지션'이기도 했다. 저 구절을 읽기 전 그의 이미지는 부잣집 도련님에 가까웠다. 요즘 말로 금수저, 은수저인 줄 알았던 것이다.

부모님의 학력을 묻는 가정조사를 끔찍이도 싫어했던 그는 본인의 힘으로 명문대에 입학하고, 고시에 합격했으며, 공직자의 길을 걸었다. 그 후 서울시 부시장을 거쳐 어느덧 국방위원장까지 역임한 3선 정치인이 되었다.  

그는 흔히 떠오르는 보수 정치인들과는 결이 조금 달랐다. 

"한나라당이 그만큼 세상 물정을 모른다"며 자신이 속한 당에 날을 세웠던 정치인이었다. 그 비판의식은 비단 정당뿐 아니라 가장 힘이 센 최고 권력자라고 예외가 아니었다. 대통령에게도, 대통령의 형에게도 그는 입바른 소리를 했다.    

이쯤 되면 누구인지 거의 다 아실 듯하다. 정두언 전 의원이다. 

그는 이른바 '권력 사유화'를 거세게 비판한 후 의원총회에서 아래와 같이 일갈했다. 

"나는 내가 손해 보는 일은 참아도 사리에 안 맞는 일은 못 참습니다."

정두언이라는 정치인을 축약하는 문장이 아닐까 생각한다. 사리에 안 맞는 일은 못 참았던, 참 꼿꼿하고 까칠했던 희유한 캐릭터.

그가 떠났다. 

멀쩡히 방송에서 평론을 하고, 언론인과 인터뷰를 하고, 보수·진보에 공히 쓴소리를 하던 그가 너무도 갑작스레 세상을 등졌다.   

그는 자신의 저서 <잃어버린 대한민국의 시간>에서 이렇게 썼다.

"나는 정치를 하면서 늘 당당하고 떳떳함을 유지하려 무진 애를 썼다. 그러다 보니 항상 편치 못했다. 그렇다고 적당히 숙이고, 적당히 눈 감으며 살 수도 없었다."

Ⓒ정두언 전 의원 블로그

그동안 적당히 숙이고, 적당히 눈치보는 경우를 얼마나 많이 봐왔는가. 지겹도록 말이다. 멀쩡했던 사람도 정치만 하면 안 좋은 쪽으로 달라지는 경우 역시 숱하게 겪어왔다. 

그는 이어서 말했다. "나는 앞으로도 계속 '임금님은 벌거숭이'라 외치며 이 사회의 잘못된 우상과 싸울 것이다. 그러면서 이 땅에 진정한 큰 바위 얼굴이 나타나기를 기다릴 것이다."

잘못된 우상과 펼치는 정두언의 싸움을 응원하는 이가 참 많았을 터인데, 이젠 누가 정두언처럼 '임금님은 벌거숭이'라고 용기 있게 외쳐줄 것인가.  

그의 주장을 다 동의했던 것은 아니지만, 정두언 같은 정치인을 잃은 것은 커다란 사회적 손실이라 생각한다. 

예상치 못한 이별에 황망하기 한량없다.

그의 영면을 기원한다. 

그리고 그곳에서는 이제 복잡하고 짜증 나는 정치 뉴스는 그만 보고, 그토록 좋아하는 노래를 맘껏 부르기를.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논객닷컴=석혜탁] 

 석혜탁

- 대학 졸업 후 방송사 기자로 합격지금은 기업에서 직장인의 삶을 영위
<쇼핑은 어떻게 최고의 엔터테인먼트가 되었나저자. 
칼럼을 쓰고, 강연을 한다. 가끔씩 라디오에도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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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혜탁  sbizconomy@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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