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승화의 요즘론]

좋은 어른 

좋은 어른을 만나기란 어렵다. 나도 어른이지만 주위에 제대로 된 어른 하나 찾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내 주위의 젊은이들 대부분은 제 몸 하나 건사하는데 급급하고 그것에 익숙해질 때쯤 결혼해 감당하기 벅찬 존재를 더해간다. 그러므로 좋은 어른이 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얼마 전, 몇 년 전에 함께 작업했던 배우 선배님을 만났다. 내가 살아오며 보았던 60년대 생 중에서 가장 젊은 생각과 감각을 유지하며 살아가시는 분이다. 그는 만나자 마자 친구와 나를 횟집으로 데려가 고등어회를 주문했다. 회를 먹으며 우리가 나눈 이야기 속에서 내가 왜 선배님을 좋아했는지 다시 깨달을 수 있었다.

예전 만남으로부터 그날의 만남에 이르기까지 몇 년의 시차가 있지만 그는 늙기보다 오히려 더 젊어져 있었다. 나는 그가 부러웠다. 또한 그를 만날 수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픽사베이

60년대 후반생인 선배님의 주변 사람들은 대부분 누군가의 부모다. 결혼을 했거나 했었기에 자식이 있다. 하지만 선배님 본인은 한 번도 결혼을 하지 않으셨다. 자식 있는 부모들은 자신이 살아가는 데 있어서 지키는 신념을 자식에게는 그대로 적용하지 못하는 경우가 왕왕 있다. 자유로운 교육관을 말하며 살아가던 사람들도 자기 자식은 유학 보내거나 공부를 엄청 시키는 식이다. 자기 자식만큼은 신념의 치외법권이 된다. 누구든 자기 자식이 제일 잘 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선배님은 그런 경우를 언급하시며 자기 자식 뿐 아니라 다른 사람 자식들도 귀한 줄 알아야 한다고 하셨다. 이어서 누구의 자식이든 관계없이 귀히 여기려면 가부장적 씨족 제도 자체가 없어져야 하며, 모계 사회로 변해야 한다고 하셨다. 누군가의 성씨가 중요한 것이 아닌 모계 사회가 되면 오히려 남자들도 의무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다고 하셨다. 가부장 사회의 피해자는 남성, 여성 모두라는 것이다. 가부장적 사회에서 남성이 스스로에게 부여하는 억압은 여성의 그것과 다를 뿐 분명 존재한다. 그러므로 아이의 소유권이 중요하지 않은 공동육아 방식의 모계 사회로 나아가야 한다는 이야기였다. 무척이나 이상적이지만 나는 그의 말에 깊이 공감했다. 그의 입을 통해 이런 말을 들은 것이 놀랍기도 했다. 

타인에 대한 염려 

그는 이어서 젊은이들에 대한 걱정을 피력했다. 그는 지금의 젊은이들에 대해서 안타까워 할 줄 아는 어른이다. 오랜 세월 아웃사이더로 살아왔음에도 그에게는 다른 세대에 대한 억울함이나 피해 의식이 없어 보인다. 바람처럼, 항상 외롭게 살아가는 그의 삶 속 어떤 부분이 그를 그렇게 만들었을까. 나이 들수록 새로운 것, 젊은 가치를 받아들이는 것이 어려워지기 마련일 것이라 오해한 내가 너무 부끄러워졌다. 어떤 면에서 나는 그보다 젊지 않다. 청년이라는 말은 나보다 그에게 어울리는 지도 모르겠다.

조선시대에는 진정한 어른이 되기 위해서는 꼭 결혼을 해야 한다고 여겼다. 상투를 틀지 않으면 어른이 아니라서 먼저 결혼한 젊은이가 결혼하지 않은 연장자를 하대하기도 했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그러나 내가 아는 어른들 중에는 아이 같은데 누군가의 부모인 사람도 있고, 결혼 하지 않았지만 무척이나 어른스러운 사람도 많다. 그러므로 결혼이 한 사람을 어른으로 만드는 데 있어서 꼭 필요한 과정은 아닌 것 같다. 오히려 가족은 확장된 형태의 이기주의를 낳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에서 젊은이들을 아프게 하는 부분들 중 수많은 부분은 ‘모두 내 자식’이라 생각하면 없어질 것들이다. 사람 몸 하나 누이면 꽉 차는 고시원에 화재 경보기를 설치하는 일이라거나 서비스직 직원을 대하는 태도 같은 게 그렇다. 누구든 내 자식이라 생각하면 타인을 하대할 수도, 비인간적인 대우를 할 수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부모들은 내 자식만 챙기는 데 급급하여 다른 이의 자식을 잘 봐주지 않는다.

사람이 신념을 지키기 위해서는 덜 가져야 한다. 고결한 신념일수록 덜 가진 자가 지키기 유리하다. 선배님을 덜 가져서 자유롭게 생각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덜 가짐, 무소유를 어려워한다. 무엇이든 더 갖고 유지하려고 애를 쓴다. 아이를 낳으면 좀 더 나은 학교로 보내려 애쓰고 돈을 벌면 더 좋은 집, 차를 갖으려 애 쓴다. 무엇을 위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차치하고, 그것이 행복을 가져다주는 지 한 번 쯤 생각해 보게 된다.

혼자 사는 것에 대해 무조건적으로 예찬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선배님처럼 좋은 어른이 되어 주변 사람들과 자주 교류할 수 있는 환경이 주어진다면, 결혼이라는 제도의 수많은 병폐를 알고도 그것을 선택하지는 않을 수도 있겠다 싶다. 

젊은 세대를 염려하고 안쓰러워하는 것이 조금 더 나이 든 어른의 의무인 것은 아니다. 그저 선배님은 자연스레 그렇게 할 뿐이다. 그것이 그를 좋은 어른으로 만든다. 이런 어른도 있어서 다행이다. 자신이 꼭 염려하지 않아도 될 것들에 대한 염려는 사려 깊고, 아름답다. 그분의 사려 덕분에 나도 타인을 한 번 더 생각하게 된다. 나는 그에게서 그것을 배웠다. 

허승화

영화과 졸업 후 아직은 글과 영화에 접속되어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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