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성규의 하좀하]

[청년칼럼=한성규] 7월 16일부터 일명 ‘직장내 괴롭힘 금지법’이 전격적으로 시행되었다. 여러 가지 의견이 있지만, 대한민국 직장에 만연한 막말과 따돌림 등 괴롭힘이 드디어 사회문제로 대두되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근로기준법에서는 직장 내 괴롭힘을 ‘사용자 또는 노동자가 직장에서의 지위 또는 관계 등 우위를 이용해 업무상 적정범위를 넘어 다른 노동자에게 신체적, 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라고 정의하고 있다.

다시 말해 직장 내에서 괴롭힘을 당했다고 신고하기 위해서는
직장 내에서 지위나 관계의 우위를 이용했을 것,
업무상 적정범위를 넘어섰을 것,
그 행위가 피해자에게 신체적, 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환경을 악화시켰을 것을 입증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반드시 사업장에서 이루어질 필요는 없고, 사내 메신저나 SNS 등 온라인의 괴롭힘도 해당한단다.

Ⓒ픽사베이

또라이 전문가

2007년부터 <또라이 제로 조직>이라는 책을 내면서 10년 넘게 또라이들을 연구해온 전 세계적인 또라이 전문가 로버트 서튼 스탠퍼드 공과대학 경영과학 교수는 최근 <참아주는 건 그만하겠습니다>라는 책을 냈다.

2007년 이후 또라이에 관심이 있는 10여 개국 80여만 명의 독자로부터 8000통의 이메일을 받았단다. 로버트 서튼 교수는 이메일을 통해 받은 또라이 사례들을 새 책에서 소개했다. 직장 내 또라이 유형을 보면 특정 직원을 유령 취급하며 왕따 시키기, 사무실 내에서 파티를 하면서 자신이 편애하는 직원들만 초대하기, 일을 시켜놓고 일을 하는 직원을 5분 동안 다섯 번이나 방해하기, “아직 그것도 못 끝냈어?”라고 다그치기, 업무 시간 외에 회의 소집하기, 말끝마다 욕하기, 쉴 새 없이 놀려대기, 사소한 일도 급하다고 아우성치며 모든 일에 난리법석 떨기 등등이 있었단다.

나는 위 사례들을 읽고 깜짝 놀랐다. 어떻게 내가 있던 한국 직장의 상사가 하던 짓을 집대성 해 놓았을까? 설마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직장동료가 로버트 서튼 교수에게 이메일을 보낸 건 아닐까? 라고 까지 생각했다.

또라이는 어디에나 있다. 단지 대처법에 따라 상처를 입을 수도 그냥 넘어갈 수도 있다

어디든 또라이는 있다. 직장뿐만 아니라 학교에도, 유치원에서도 또라이는 있었다. 길거리에서도, 지하철안에도, 또라이들은 있다. 또라이들은 대한민국만이 아니라 전 세계 사방천지를 활보하고 다닌다. 일찍이 미국의 시인이자 소설가인 마야 안젤루는 인간관계에 관해 중요한 사실을 지적한 바 있다. 마야는 “결국 사람들은 다른 사람이 무슨 말을 하고 어떤 행동을 했는지는 기억하지 못한다. 단지 그 사람들의 언행으로 우리가 느낀 감정만 기억할 뿐이다.”

이제부터 직장 내의 또라이들과 싸우려는 우리는 마야의 말에서 중요한 사실을 배울 수 있다. 또라이를 규정하는 기준은 문화와 산업, 조직 내 신념에 따라서 매우 다양할 뿐 아니라, 동일한 행동에 대해서도 개인별 성향이나 교육, 시대 상황에 따라서 불쾌하게 느끼는 정도가 크게 다르다는 점이다. 한 달도 지나지 않았지만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실제 적용 사례에서도 ‘사회적 통념’ 이 주요 기준으로 작용하고 있다.

최근에 여자 친구 중의 하나가 어떤 할아버지로부터 “여자는 꽃이다. 항상 자신을 꾸며야 한다.”라는 말을 듣고 불쾌감을 느꼈다고 했다. 옛날 세대를 사셨던 여성분들이나 남자들은 이 말에 전혀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을 것이다.

요는, 직장 내 괴롭힘을 금지하려면 일단 2019년도 대한민국 직장에서 또라이에 대한 기준을 세우고 공인된 또라이의 정의를 정립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 인간은 쉽게 자신이 처한 상황을 부정적으로 왜곡한다. 또, 우리의 뇌는 안타깝게도 착각에 빠지기 쉽고 엄청나게 이기적인 신체 기관이다. 뇌는 자기 생각밖에 안 한다는 말이다.

또한, 일시적인 또라이와 지속적이고 공인된 또라이를 구분하는 일도 선행되어야 한다. 자타공인 또라이 전문가인 로버트 서튼 교수도 메사추세츠공과대학의 경제학자인 밥 기번스 교수와 점심을 먹으며 또라이 짓을 했단다. 전날 밤 젖먹이 딸을 돌보며 한숨도 못 자고 배까지 고팠던 로버트 서튼 교수는 그날 학생들이 경제학을 더 많이 접할수록 더욱 이기적이고 탐욕스러워진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연구들을 인용하며 경제학자들은 대부분 이기적인 또라이라고 말하며 경제학자인 밥 기번스 교수에게 화풀이를 했단다. 기번스 교수가 화를 내는 대신 부드러운 미소를 띠며 “전날 밤 젖먹이 딸 이브를 돌보느라 힘들었지?”라고 묻자 금방 정신을 차렸고 자신의 일시적인 또라이짓을 인정하며 사과했다고 한다.

우리는 누구나 또라이가 될 수 있다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소식을 들으며 당신은 생각했을 것이다. 이놈도 또라이고 저놈도 또라이야. ‘직장내 괴롭힘 금지법’ 기준을 살펴보자. 이 정도면 이놈은 신고해도 되지 않을까?

하지만 다시 한 번 곰곰 생각해 보기 바란다. 혹시 당신이 매일 하는 행동이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하지는 않은지.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의 기준을 다시 한 번 주의 깊게 살펴보기 바란다. 놀랍게도 직장 내 또라이는 당신일 수도 있다.

한성규

현 뉴질랜드 국세청 Community Compliance Officer 휴직 후 세계여행 중. 전 뉴질랜드 국세청 Training Analyst 근무. 2012년 대한민국 디지털 작가상 수상 후 작가가 된 줄 착각했으나 작가로서의 수입이 없어 어리둥절하고 있음. 글 쓰는 삶을 위해서 계속 노력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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