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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고 나서 웃는 사람[김우성의 일기장]
김우성 | 승인 2019.08.29 04:03

[청년칼럼=김우성] 요즘 바둑 두는 재미에 빠져있다. 한 판 두고 나면 30분이 훌쩍 지나가 있을 정도로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시간적 여유가 있을 때면 늘 바둑을 둘까 말까를 고민한다. 무료함을 달래는 데 바둑만한 게 없다.

한창 상대방과 지략 대결을 펼치는 중 이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상대방이 제발 저기만큼은 두지 말았으면...’

하지만 안타깝게도, 상대방은 나의 바람을 외면한다. 나와 겨루는 상대들은 모두 독심술이라도 갖고 있는 걸까? 그들은 내가 생각한 지점에 정확히 돌을 놓는다.

사람 마음이라는 게 다 똑같다는 걸 느낀다. 좋은 것을 손에 넣기 원하는 마음이 누구에게나 있나 보다. 명문대에 입학하거나 번듯한 직장에 취업하기, 혹은 매력적인 짝을 만나기를 대다수가 바라는 것처럼...

문재인 대통령이 2017년 12월 중국을 방문해 시진핑 국가주석에게 받은 바둑 세트 선물. Ⓒ청와대

사람들이 서로 다양한 생각을 품고 산다면 참 좋으련만. 그럼 피 튀기는 경쟁 없이 저마다의 블루오션을 개척할 텐데. 하지만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이 너무 많다. 애석하게도 승자는 한 명, 내지는 소수에 불과해 사람들은 늘 불안하다. 간절히 염원한다고 모두가 소원을 이룬다는 보장이 없기에, 낙오되지 않으려 몸부림을 친다. 모두 같은 마음이니 필연적으로 경쟁이 생길 수밖에 없다.

경쟁에서 승리하기가 쉽다면 애초에 경쟁이 고민거리도 아니었을 것이다. 경쟁이 문제가 되는 이유는 경쟁에서 이기는 게 그리 쉽지 않기 때문이다. 옆 사람과 가위바위보를 할 때 내가 반드시 이긴다는 확신도 없는데, 하물며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드는, 한 두 명도 아닌 불특정 다수와의 싸움은 나를 얼마나 불안하게 하겠는가? 소수의 승리자와 다수의 패배자가 양산되는 우리 사회의 경쟁은 총만 없을 뿐, 사실상 전쟁이나 다름없다.

누구나 경쟁에서 승리하기를 원한다. 패배를 기대하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나는 패배가 반갑다. 단, 나의 실력이 모자라서 패배한 경우에만 기뻐한다. 오직 나의 부족함이 패인일 때, 그래서 다른 이유를 둘러대지 못할 때가 좋다.

상대방이 나보다 높은 토익 점수를 갖고 있어 좋은 직장에 취업했다면 할 말이 없다. 반면에 나보다 낮은 점수로 취직했다면 의문이 들 것이다. 억울할 수도 있겠다. 그럴만한 이유를 알기 전까지는. 토익점수는 낮지만 회화에 능통하다는 게 이유라면 또 다시 할 말이 없을 것이다. 이처럼 경쟁에서 패할 때 할 말 없는 패배를 당하고 싶다. 온전히 나의 실력 부족 때문이어야만 발전을 기대할 수 있으니까, 다른 패인이 없었으면 좋겠다.

나는 바둑을 잘 두지 못해 지는 경우가 많다. 심심풀이용으로 하는 거지만 매번 패배할 때마다 씁쓸하다. 지고 나서 기분이 썩 좋지 않지만 머지않아 또 다시 새로운 대국을 시작한다. 달갑지 않은 패배를 기꺼이 두 팔 벌려 끌어안을 수 있는 이유? 지면서도 배우기 때문이다. 나의 부족한 부분을 직시하고 보완해나가면서 실력이 조금씩 느는 게 느껴진다. 100집 이상 차이로 지다가 점점 두 자리 수, 한 자리 수 차이로 질 때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반집 차이로 패배했을 당시 탄식보다 감탄이 나왔다.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작가 사무엘 베케트가 말했다. “Try again. Fail again. Fail better.(다시 시도해라. 또 실패해라. 실패해도 나아질 것이다)”

경쟁에서 이기고 싶다. 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지고 싶다. 모든 책임과 비난을 나 자신에게 돌릴 패배를 겪고 싶다. 내가 패배한 이유가 상대방보다 부족한 실력 말고 다른 게 있다면, 다시 말해, 상대방이 승리한 이유가 나보다 뛰어난 실력 말고 다른 게 있다면, 그럼 너무 안타까울 것 같으니까. 

 김우성

낮에는 거울 보고, 밤에는 일기 쓰면서 제 자신을 돌아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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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성  kws3f1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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