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희진의 민낯칼럼]

I.
미국 사람들은 걸핏하면 고소하고 재판정으로 간다. 몇 년 전 통계에 따르면 주정부 법원에 나온 민사, 형사 사건 수가 무려 1억 건이 훨씬 넘는다. 이는 평균 성인 두명 중에 한 명이 재판을 한 셈이다. 모든 문제를 법률적으로 해석하고 잘잘못을 따지는 것은 이성적인 태도일지는 모르나 이렇게 너무 많으면 사회 발전에 저해가 될 수 밖에 없다. 때문에 미국은 가히 변호사의 천국이랄  수 있다. 이런 일로 먹고 사는 변호사가 100만명이 넘는다.  

미국에는 변호사를 놀려대는 조크가 많아 이를 따로  ‘Lawyers Joke'라고 한다. 물론 부정적인 조크들이다. 이것만 모아 내놓는 책도 자주 등장한다. 처음부터 사회계약론에 의해서 만들어진 미국은 만사를 법정에서 해결하는 오랜 습관이 있다. 그러나 소규모 지방정부도 의회를 거쳐 수없이 각종 법과 규제를 만들다 보니 상식까지 잃어버린 사회가 되어 한국과는 정반대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II.
한국도 근년들어 도입했지만, 미국에서 변호사는 4년제 대학을 마치고 로스쿨(Law School) 이라는 일종의 3년제 직업학교에 입학해서 법률을 공부한 후 각 주마다 있는 자격시험에 통과해서 탄생된다. 한국에서와는 달리 미국에서 변호사는 일반적으로 나쁜 이미지를 가진 직업이지만, 법률 상식 없이는 매일매일 생활에서 손해를 보는 법의 세상이 미국이기 때문에 그 존재의 필요성도 상대적으로 높다. 따라서 미국의 변호사는 일률적으로 평가할 수가 없고 그 성공도와 능력별, 전문별, 질적 수준이 천태만상이다. 악어떼, 상어떼에 휩쓸려도 변호사는 잡아먹히지 않는다고 한다. 왜? professional courtesy(직업상 특별예우) 때문이라는 것이다. 변호사도 악어나 상어와 한통속이니까 안 잡아먹고 정중하게 대해준다는 뜻이다. 

사법은 늘 통치권에 도전해 온 것이 미국이다. 미국에서는 절대 권력이 용납되지 않는다. 그러나 이제는 법이 너무 많아서 산더미 같은 우스꽝스러운 법들이 미국인의 생활을 억제하고 목을 졸라 숨통이 막히게 하는 사태가 일어나고 있다. 한 변호사가 쓴 <상식의 사망(Death of Common Sense)> 이란 책이 한 때 환영을 받았던 것은 바로 이런 현상을 비판했기 때문이다. 

Ⓒ픽사베이

III.
미국 대법원은 50개 주에 50개가 있다. 연방대법원은 건국 훨씬 후에 추가되었다. 대한민국의 대법원의 역할을 주정부 대법원의 역할과 비교하면 미국을 이해하기가 쉬워진다. 언뜻 보면 한국의 헌법재판소와 기능과 역할이 비슷한 미국 연방 대법원(U.S. Supreme Court) 판사 9명의 임명에 미국 전체가 들끓으며 많은 논의를 거치는 것은 이들의 임기가 종신제로서, 대통령의 임기가 고작해야 4년 내지 8년인 데 비하면 미국인의 생활에 직접 영향을 주는 법 해석의 최고 총수이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138명의 대법원 판사가 임명을 받았었고, 판결을 통해 드러난 이들의 사고 방식이 전체 미국인의 일상생활에 큰 영향을 미쳐왔다.     

미국에서는 대통령이 대법원 판사를 지명하면 상원 인준청문회가 열린다. 대법원 판사 한 사람을 임명하는 데 상원 법사위원회에서 청문회 논쟁을 하고 온 나라가 동원되는 것은 외국 사람들에게는 참으로 이해되기 어려운 면이다. 그 만큼 법의 권위가 인정받고 있을 뿐만 아니라 대법원 판결이 미국 민주주의의 최종 결정이기 때문이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모든 면에서 대립이 발생할 때, 헌법 조항과 정신에 위배되는지의 여부를 최종적으로 따져보는 곳이 연방대법원이다. 

대통령이 지명자를 발표하는 순간부터 그의 개인 철학, 과거 배경, 개인생활 행적까지 일평생의 기록이 철저히 파헤쳐지고 온 국민의 관심이 거기에 쏠린다. 일단 대법원 판사가 되면 정치권의 압력을 전혀 받지 않고 소신껏 판결한다.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자기 평생에 가장 큰 실수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저 바보같은 녀석들 몇 명을 대법원에 추천한 것”이라며 대법원 판사를 욕했다. 그가 임명한 판사들이 일단 대법원에 들어간 뒤에는 처음 예상과는 다르게 대통령의 정치철학과는 전혀 동떨어진 판결을 계속했기 때문이다. 

IV.
사법권의 독립은 전통이 쌓여져야 계속되는 것이다. 한 개인이 대법관이 되느냐 안 되느냐가 문제가 아니라 그 선출 과정에서 헌법정신과 문안에 온 국민이 관심을 쏟는 것은 부러워할 만한 민주주의의 일면이다. 바로 그런 요소들이 모여 미국 민주주의를 만들어 가는 것이라 생각이 든다. 미국의 헌법은 아직 처음의 것이 한번도 개헌된 일이 없다. 언론 자유나 정부 기구 개편과 같은 수정 첨부안이 하나씩 늘어났을 뿐이다. 무려 243년 동안 변함 없이 제1공화국이 계속되었으니 인류 역사상 최장의 정치체제를 가지고 있는 나라이다. 수도 없이 헌법이 바뀌고 권력자의 구미에 따라 정치체제가 바뀐 우리나라에서 볼 때는 부러움을 넘어 신기할 지경의 나라인 것이다. 

완전하고도 확실한 삼권분립으로 권력을 나누어 가지고 조화를 이루며 정치권력들의 야합과 당리당략을 거부할 수 있어야만 민주주의를 지킬 수 있는 것이다. 그런  마음과 자세가 권력자에서부터 일반 국민에 이르기까지 뿌리 깊게 박혀 있어야만 가능한 일이다. 

V.
윤석열은, 자신은 사람이 아니라 조직에 충성한다고 했다. 그건 일개 대통령이 아니라 검찰이란 조직에 충성한다는 더 무서운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가 검찰총장 임명 때까지도 검경 수사권에 대해 모호한 태도였다는 점도 하나의 근거로 들 수 있다. 

이 역시 법률의 사회화. 정치의 사법화. 법률의 권력화의 연장선에 있으며 우리가 경계해야 할 일들인데, 이미 그것은 조짐을 넘어 속속 확인된다고 여겨진다. 조국 청와대 前민정수석, 법무장관 역시 그 흐름을 만드는데 일조했고, 그것과 절연하기 쉽지 않다고 보여진다. 그가 평소에 서울대 법대 인맥 강조하며 이런저런 학번 선배 운운한 것 보면 별로 놀랍지 않은 '구태'로써 기득권, 계급의 확인이다. 사법개혁을 가로막는 분명한 적폐이다. 

검찰개혁은, 사법 및  공안권력/엘리트 전체를 주권(?) 보다 낮추는 것으로부터 시작돼야 한다. 누구에게 그 힘이 있을까? 과연 어떤 힘으로 그것을 이룰 수 있을까?

 안희진

 한국DPI 국제위원·상임이사

 UN ESCAP 사회복지전문위원

 장애인복지신문 발행인 겸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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