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영인의 정화수]

[논객칼럼=도영인] 몇 년 전 하와이를 방문했을 때 일본계 미국할머니의 80세 생일 파티에 초대받아 간 적이 있었다.

파티장에는 엘비스 프레슬리 같은 옛날 가수의 노래소리가 짙은 향수를 불러일으켰고, 그보다 맑고 밝은 하객들의 행복한 웃음소리가 인상적이었다. 지인들과 친척들이 모인 평범한 파티이었음에도 진정 행복한 사람들만이 낼 수 있을 것같은 즐거움이 그 자리에 있었다. 공기 맑고 물 좋고 아름다운 자연환경까지 즐길 수 있는 하와이에 사는 덕택이라고 할 수만은 없는, 그야말로 듣는 사람까지 살맛나게 하는 웃음소리를 들으며 가슴이 시원해지는 느낌이었다. 소박하지만, 분명히 매우 만족한 삶을 살고 있는 평범한 사람들의 깊은 영혼에서 솟아나오는 화음 같았다. 어느 한 사람이 내는 특정한 웃음이 아니라 편안한 마음들이 다 같이 모였을 때 그 집단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모두가 함께 느끼는 기쁨의 파동이랄까, 아무튼 나까지 매우 행복해지는 경험이었다. 어린아이처럼 천진난만한 웃음소리를 내며 그 순간을 즐길 줄 아는 철든 어른들이 참 부럽다고 느낀 적이 있다. 

Ⓒ픽사베이

우리 일상에서 살맛나게 활력을 불러일으키는 웃음소리를 좀 더 많이 듣고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우선 편안한 인간관계가 필수적인 조건이 된다는 생각이 든다. 자기 주변에 있는 사람들과의 관계가 힘들어지거나 귀찮아질 때 웃으면서 사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진다. 미디어에서 어쩌다 웃음치료프로그램을 접하게 될 때 필자는 당혹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그냥 억지로라도 웃으면 그 물리적인 효과를 몸에서 느낄 수 있다는 믿음을 주입시키는 집단프로그램에서 그야말로 맨땅으로 웃어대는 연습을 해 본 분들도 있을 것이다. 건강을 위해서 억지웃음이라도 경험하게 하는 웃음치료 프로그램을 비판할 생각은 전혀 없다. 그러나 참으로 자연스럽지 않은 모습이고 필자는 그렇게 의도적으로 필사적인 노력이라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삭막한 일상의 모습을 볼 때 오히려 애잔한 마음까지 느껴졌다.

다른 사람들과의 평안하지 못한 관계는 여러 이유에서 촉발될 수 있고 그 주된 원인을 상대방의 책임으로 돌려야 할 때도 있다. 그런데 많은 경우에 눈에 보이지 않는 자기 자신과의 관계가 온전하지 않을 때 다른 사람과의 갈등이 더 쉽게 드러날 수 있다. 나의 내면에 어떤 혼란함이나 불안정함이 있다면 인간관계나 외부 상황을 다루는 면에서 그러한 불안전성이 표출되기 마련이다. 우주 안의 모든 것들이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양자과학적 사실을 간과하더라도 한 사람의 의식 상태는 인간관계의 질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혼자만의 깊은 번뇌나 슬픔에 빠져있을 때 다른 사람이 하는 얘기를 전혀 듣지 못할 때가 있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공감하기 위해서는 우선 자신의 마음이 평온한 가운데 타인이나 세상을 향해 열려있는 의식상태가 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편안한 대인관계를 이루려면 먼저 자기 자신과의 관계를 통찰해 볼 필요가 있다. 표면의식으로 바라보는 자기정체성 속에 숨겨져 있는 나, 즉 나의 무의식세계를 어떻게 알아차리는가에 따라, 또한 보이지 않는 진정한 ‘참나(true self)’와의 관계를 어떻게 정립하는가에 따라 나는 무한히 행복할 수도, 한없이 불행할 수도 있다.

비록 그것이 순간적으로 자기 마음을 알아차리는 아주 짧은 찰나에 불과하더라도, 자신의 마음상태를 온전하게 회복하는 경험이 앞선다면, 불편하게 느껴지는 사람이나 상황에 대한 반응이 좀 더 잘 관리될 가능성이 커진다. 내 마음 속에 들어와 있는 주변 사람들에 대한 나의 생각이나 느낌이 지난 경험에 비추어 볼 때 다소 부정적인 모습으로 나타나면 그에 대한 통찰의 시간이 필요하다. 이 점에서 누구나 자기와 가까운 사람일수록 실망감이 더욱 쉽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문제행동을 일으키는 상대방에 대한 이해심과 자비심을 유지하는 것이 가족이외 사람을 대할 때 보다 오히려 더 어려워질 수 있다. 그만큼 자기 가족이나 친척에 대해 갖는 기대감은 전혀 모르는 타인에 대한 기대치보다 훨씬 더 큰 때문이다. 평소에 유능한 상담사가 타인의 자식은 잘 이해하면서 자기 자식과의 갈등을 다루는데 있어서 오히려 제대로 된 관계를 이루기가 힘든 것도 자기자식을 남으로 보기 보다는 자신의 연장선에서 놓고 보는 탓이다. 

사람들을 웃게 하거나 울게 하는 인간사회 속의 다반사들은 대부분 물질적인 이유와 연관되는 경향이 있다. 돈이 되는 일로 인해 새로이 만족스러운 인간관계가 생기기도 하고 돈 때문에 오래된 친구관계가 무너지기도 한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서든 의식적인 생활습관을 통해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가 좀 더 편안하게 느껴지도록 노력할 수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자신의 의식세계를 잘 관리함으로써 좀 더 자주 웃고 사는 삶을 스스로 창조할 수 있다. 싸구려 광고나 시끄러운 세상소리들로부터 자유로워지고 대신 값비싼 내면의 소리를 들으려면 자기주장이 강한 에고의 속삭임을 잠시라도 잠재워야 한다. 아침마다 5분씩이라도 하는 명상 또는 잠자기 전에 하는 통찰의 시간은 자기 내면의 참된 자아상(self-image)을 마주하는 귀한 시간이 될 수 있다. 잠깐이라도 자기 자신과 속 깊은 대화를 나누는 소중한 시간이 누구에게나 필요하다. 내 몸에 스쳐가는 감각, 내 마음에 떠오르는 일시적인 생각, 내 가슴에서 솟아나오는 미묘한 느낌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나만의 시간이 필요하다. 이 시간을 통해 나의 참모습, 즉 나의 보다 높은 정체성과 대화를 나눔으로써 세상살이를 향한 무절제한 반응 또는 무의식적인 생각의 패턴을 조금씩 바꾸어 나갈 수 있다. 

좀 더 자주 웃으면서 살려면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능력이 요구된다. 온전한 자아의식에 이르기 위해 계속 자기계발을 해 나가려면 자신을 놓고 그 허점을 바라보며 허심탄회하게 웃을 필요도 있다. 웃고 우는 나의 모습은 어떻게 보이는가? 자기 자신과의 대화 과정에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덕목은 솔직함이다. 아! 내가 이 순간에 화가 나 있구나, 할 일은 많은데 피곤하네, 내가 이번엔 정말 짜증이 확 올라오는데 이를 어쩌지? 이처럼 일어나는 생각, 감정, 느낌을 솔직하게 받아들이는 것은 자신의 인간적인 모습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여유로움을 스스로에게 선물하는 일이다. 익숙해져 있는 자이정체성 깊숙이 숨겨져 있는 보다 높은 자아상은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무형자산이 된다. 누가 뭐래도 소신 있게 자신의 삶을 펼쳐나가는데 있어서 이 영성적인 자산(spiritual wealth)은 끝까지 소중히 지켜내야 할 보물이다. 자기 자신의 실수나 부족함에 대해 여유롭게 웃어 가면서 스스로에 대한 불만족스러운 면모를 직시할 수 있는 힘의 원천이다. 이렇게 자기 자신의 못난 모습까지 허허한 웃음으로 받아들이는 능력은 능동적인 자기통찰의 시간을 통해 나온다.

웃는 방법에도 여러 가지가 있다. 여러분은 가끔씩 자기 자신이 기특하다고 생각되어 혼자 웃어 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정말 내가 생각해도 참 잘한 일이야, 어떻게 내가 그 순간에 그렇게 행동할 수 있었지? 내가 봐도 나는 정말 대단해, 크크크..... 이런 경험은 철이 들어가는 사춘기 때만 하는 것이 아니다. 세 살 버릇이 여든까지 간다는 말도 있지만, 평생에 걸쳐 자기 자신을 조금씩 좀 더 좋아할 수 있는 가능성이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 아, 나는 내가 이럴 수 있다는 게 너무 행복해. 내가 생각해도 참 기특한 일이야. 이렇게 내가 나를 칭찬하면서 살아갈 수 있다면 웃을 일이 더 많이 생기게 된다. 자기 자신의 멋진 모습과 사랑에 빠지는 일은 공허한 자만심을 키우는 일이 아니라 진정한 자기정체성을 잘 알고 있다는 데서 나오는 자신감을 확인하는 일이 된다.

그렇다면 삶의 모든 순간을 마치 사랑에 빠져있는 것 같은 감정으로 사는 것이 가능할까? 만약 생명 그 자체가 주는 기쁨을 만끽하고 감사함과 사랑의 감정에 푹 빠져 살아가는 사람들로 가득하다면 이 세상은 웃음소리 그치지 않는 천국으로 화할 것이다. 보이는 사람마다 모두 못마땅해 보이고 경험하는 일마다 모두 짜증나는 일이라면 웃을 일은커녕, 본의가 아니더라도 결국 이 세상에 불행과 혼란을 일으키는 일에 가담하는 셈이 된다. 내면에 숨겨진 나의 빛나는 본래 모습이 반짝거릴 때마다 무의식적으로 떠오르는 초조감, 불안감, 시기심과 질투심의 파편들을 깨끗이 정리할 수 있다. 당당한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스스로를 칭찬하고 사랑스럽게 보는 눈을 가진 사람은 상대적인 행복감이라는 잣대에 쉽게 휘둘리지 않는다. 주어진 상황에 상관없이 언제 어디서라도 무의식의 거울에 비추어 볼 수 있는 삶에 대한 만족감은 절대적인 자산이다. 생동하는 내 마음의 금고 속에 보관된 이 영혼의 평안함은 문자 그대로 자기 자신만 관리할 수 있는 비밀스러운 보물이다. 이런 무형자산을 간직하고 사는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이 세상은 살맛나는 세상살이가 될 것이다. 

도영인

한 영성코칭연구소장
영성과 보건복지학회 고문, 시인

오피니언타임스은 다양한 의견과 자유로운 논쟁이 오고가는 열린 광장입니다. 본 칼럼은 필자 개인 의견으로 본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반론(news34567@opiniontimes.co.kr)도 보장합니다. 

칼럼으로 세상을 바꾼다.
논객닷컴은 다양한 의견과 자유로운 논쟁이 오고가는 열린 광장입니다.
본 칼럼은 필자 개인 의견으로 본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반론(nongaek34567@daum.net)도 보장합니다.
저작권자 © 논객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