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언의 잡문집]

[청년칼럼=시언] 고시촌은 외로운 도시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외로운 자들의 도시다. 고시생과 공시생, 지방 출신 사회 초년생, 외국인 유학생 등 홀로 떠나온 사람들이 모여 집단을 이룬 공간이다. 그래서 고시촌 길거리에선 ‘말소리’가 귀하다. 입을 다문 채 학원으로, 직장으로, 그리고 본인도 모를 어딘가로 고단한 발걸음을 옮길 뿐이다. 침묵하는 유령들의 도시랄까.

고시촌에 귀한 것이 하나 더 있다면 바로 웃음이다. 무리도 아니리라. 온통 ‘준비하는 자들’뿐인 이 도시에서 웃을 일이 빈번할 리 없다. 진정 활짝 웃게 된 사람들은 부랴부랴 짐을 부려 이 도시를 떠났다. 행시 합격자, 세무사, 경찰 공무원 등 번듯한 직함을 부여받은 채 말이다.

반면, ‘진짜 삶’을 향해 준비 중인 고시생들의 입가는 여전히 웃음에 박하다. 츄리닝과 슬리퍼 차림의 남자들과 머리를 뒤로 질끈 묶은 여자들은 두터운 법학 교재를 옆구리에 낀 채 무심히 거리를 걸어간다. 아니, 무심함을 가장하고 있기에 그들은 무너지지 않고 걸어갈 수 있는지도 모르겠다.

이 회색빛 도시에 산지도 3년차인 나도 어느새 웃음과 말에 인색해져 있었다. 자취생에게 침묵은 그림자 같은 것이겠지만 집으로 돌아가는 길의 침묵은 유독 길고 무거웠다. 저만치 보이는 내 방 창문에는 켜두고 나온 전등빛이 미약하게 투과돼 나왔다. 일부러 켜두고 나온 그 빛을 바라보고 서면 이상하게 쓸쓸해졌다.

“야옹”

고시촌의 터줏대감 나비 Ⓒ시언

고개를 돌리자 우리 동네 터주대감 ‘나비’가 원룸촌 중앙 계단에서 요염한 자세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당연히 이 아이의 이름은 나비가 아니다. 고시촌 거리를 배회하는 길고양이에게 정식 이름이 있을 리 없다. 나는 녀석을 보자마자 연상되는 첫 번째 이름으로 녀석을 불렀고, 이는 고시촌 주민 모두의 관습이었다. 요컨대 나비에겐 수십가지 이름이 있었으리라.

나는 홀린 듯 걸어가 나비 옆에 걸터앉았다. 나비는 익숙하다는 듯 미동이 없다. 자기 예쁜 거 아는 애들은 이래서 얄밉다. 녀석의 보드라운 머릿결에 조심스레 손을 갖다대자 나비는 기분 좋다는 듯 기지개를 켰다. 환영받는다는 느낌은 근사했다. 그렇게 한참을 나비를 쓰다듬고 있다가 문득 깨달았다. 나는 웃고 있었다.

“야옹아 여기 봐~ 여기~”

나비에게 줄 소시지를 사러 편의점을 다녀왔을 때, 나비 옆엔 한 여자가 앉아 있었다. 늘어난 반팔티에 츄리닝, 양말 신은 슬리퍼, 직사각형 뿔테 안경까지. 전형적인 고시생 차림인 여자는 교재는 내팽개친 채 고양이 장난감의 포장을 다급한 손길로 뜯었다. 정작 나비는 열심히 장난감을 흔드는 그녀를 신기한 구경하듯 바라봤을 뿐이었지만, 그런 건 상관없었을지도 모른다. 그 특정한 찰나의 순간, 그녀는 행복해 보였다.

그러고 보니 나비는 꽤 부자였다. 스티로폼이긴 했지만 번듯한 집과 밥그릇도 몇 개씩 갖고 있었다. 나비의 스티로폼 집은 엉성하긴 했지만 공들여 만든 티가 역력했고, 밥그릇은 잊을만 하면 누군가 사료를 듬뿍 채워놓곤 했다. 나비가 남자친구-혹은 여자친구-와 동거를 시작하자 밥그릇도 2개로 늘었다. 이름 모를 당신들도 나비를 위해 스티로폼을 자르고, 사료를 채우면서 티없이 웃었는가. 틀림없이 그랬을 거라고 나는 생각했다.

삶이 각박할수록 생활은 필요로 채워진다. 돈이 없어 돈을 벌고, 직장이 없어 구직을 하고, 합격증이 없어 새벽같이 학원으로 향한다. 이 빡빡한 필요의 목록에 여유가 깃들기란 쉽지 않다. 그저 유예하며, 고시촌의 젊은 영혼들은 나아간다. 지금의 삶은 진짜가 아니라고, 이 늪만 건너면 진짜 삶이 시작된다고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면서.

나비는 내게 –귀여움 외에도- 한 가지 깨달음을 줬다. 이 도시에도 진짜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새삼스러운 사실 말이다. 우리들은 무표정한 얼굴과 허름한 행색으로 빈 거리를 부유하는 유령들이 아니었다. 아침에 눈을 떠 다시 감을 때까지 필요한 일만 수행하는 기계도 아니었다. 귀여운 고양이를 좋아하고, 얼마간의 생활비를 지출해 선물을 바치는 평범한 ‘집사’들이자 사람들이었다. 도도한 고양이답게 온갖 장난감 앞에서도 반응 없는 나비 앞에서도 우리는 잠시나마 웃고, 또 행복해했다.

오늘도 이 글을 탈고하고 집으로 향하는 계단엔 나비가 앉아 있을까. 그 옆에는 또 어떤 집사가 앉아 미소짓고 있을까. 나는 또 한 명의 집사가 이 도시에 존재함을 새삼스레 알게 되리라. 우리는, 존재하는 집사다.

# 이 글의 제목은 진중권 동양대 교수의 저서 『고로 나는 존재하는 고양이』를 패러디 한 것임을 밝힙니다.

시언

철학을 공부했으나 사랑하는 건 문학입니다. 겁도 많고 욕심도 많아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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