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오피니언타임스 청년칼럼공모전 수상작]

자존감, 청춘의 화두가 되다

지난 몇 년 동안, 친한 친구와 대화할 때마다 종종 튀어 나왔던 단어가 있다. 바로 ‘자존감’이다. 아홉수에서 서른으로 넘어가던 그 해, 내가 친구와 나눴던 고민, 한탄, 뒷담화의 결론은 늘 자존감이었다.

친구와 대화할 때만이 아니었다. 자주 가는 인터넷 커뮤니티, SNS, 가끔 들른 서점에서도 “자존감을 높이는 법”, “자존감 높은 사람의 특징”, “자존감이 낮은 이유” 등 자존감에 대한 이야기가 도처에 널려있었다. 마치 세상의 모든 문제는 자존감에서 시작해 자존감으로 끝난다는 듯이.

자존감이란 타인의 인정이나 칭찬이 아닌, 자기 내부의 성숙된 사고와 가치에 의해 얻어지는 스스로에 대한 존중감을 의미한다. 쉽게 말해 스스로를 존중하고 사랑하는 마음이다.

중요한 것은, 최근 자존감 열풍의 초점은 스스로에 대한 ‘존중감’이 아니라는 것이다.  한 마디로 ‘남이 뭐라고 하든 나를 사랑하자’라는 것이 근래에 부는 자존감 열풍의 핵심이다.

Ⓒ픽사베이

비교를 통해 행복을 얻던 시대는 끝났다

그동안 가정과 학교에서 우리가 배워왔던 행복은 타인과 나를 비교함으로써 얻어지는 행복이었다. “아프리카의 굶는 아이들에 비하면 너는 행복해”, “공부하고 싶어도 돈 없어서 못하는 아이들도 있는데 너는 복에 겨웠지”, “병이나 장애가 있어서 움직이지 못하는 애들도 있는데 얼마나 행복하니”. 그 불행한 아이가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사회는 끊임없이 우리에게 알려줬다. 우리는 세상에서 제일 불행한 사람은 아니라는 것을. 그러니 감사하고 행복하게 생각하라는 것을.

물론 나보다 조금 더 행복한 아이도 있다. 나보다 공부를 조금 더 잘하고, 나보다 조금 더 좋은 옷을 입는 옆집 아이들. 그러나 괜찮다. 조금만 노력하면 따라잡을 수 있을 터였다.

그런 상황 속에서 기술이 발달했다. 싸이월드에서 시작해 트위터로, 페이스북으로, 인스타그램으로 SNS가 유행했다. 이제 내가 비교당하는 것은 고만고만한 옆집 아이가 아니라 세계 최고의 갑부, 천재, 귀족들이다. 아무리 노력해도 나는 그들의 비교 열위에 있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우리는 비교 열위에서 행복해지는 법은 배우지 못했다.

행복을 위해 세상을 바꿀 수 없기에 나를 바꾼다

한 사람이 모든 것을 가질 수 없고, 세상은 물질적인 것이 다가 아니다. 이를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그러나 머리로 이해하는 것과 피부로 느끼는 것은 다르다. 아무리 마음을 다잡아도 매일 눈으로, 피부로, 경험으로 느끼게 되는 비교 열위는 어쩔 수 없는 불쾌감을 안겨준다. 점점 쌓여가는 불쾌감은 삶의 질을 떨어뜨리고, 그 속에서 우리는 하루에도 수십 번씩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타게 된다. 끊임없이 흔들리게 되는 것이다.

감정의 롤러코스터가 선사하는 멀미 속에서 우리는 생존전략을 찾게 된다. 문제 상황이 발생했을 때, 우리가 취할 수 있는 전략은 대개 두 가지로 나뉜다. 나에게 맞춰 상황을 변화시키거나, 상황에 맞춰 나를 변화시키거나. 그러나 우리는 대부분 상황을 바꿀 능력이 없다. 그러니 어쩌겠는가. 상황에 맞춰 나를 리폼하는 수밖에.

남보다 못한 상태에서도 행복해지는 법. 답은 결국 비교 속에서도 기죽지 않을 수 있는 ‘자존감’이다. TV가, 책이, 인터넷이 가라사대, 자존감 높은 사람은 그 어떤 상황에도 고요한 물처럼 흔들리지 않고 고난 속에서도 웃을 수 있다고 하였다. 높은 자존감을 통해 이룩되는 ‘흔들리지 않는 인간’에 대한 환상은 이렇게 생겨난다.

‘흔들리지 않는 인간’은 없다

이제 자존감에 대한 환상은 구름처럼 커져 현대를 사는 청춘들을 위한 만병통치약처럼 여겨지고 있다. 그러나 이는 또 비교를 우리에게 선사했다. 바로 “자존감 높은 사람 vs 자존감 낮은 사람”이라는 비교다. 이제 청춘은 자존감 높은 사람을 자신과 비교하며 또다시 좌절하고 자괴감을 느끼며 고통스러워한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다시 한 번 점검해보아야 한다. 과연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진정 자존감이었는지를.

흔들리지 않는 인간은 없다. 다만 흔들림 속에서 잘 버티는 사람과 잘 못 버티는 사람이 있을 뿐이다. 흔들림을 한두 번 겪으며 스스로의 요령을 찾게 되면, 자존감은 자연스레 얻어진다. 운동장에서 뛰놀며 자잘한 상처를 견디는 것을 배우듯, 우리는 정신없이 흔들려보면서 그 어지러움에 버티는 것을 먼저 배웠어야 했다. 안타깝게도 수능시험 공부에 밀려서 허락되지 않았던 청소년기의 방황과 고민들이 그것이다.

흔들림을 버티기 위해서는 다시 균형을 잡기까지 잠시 비틀거릴 수 있는 시간과 완충지대, 그리고 무엇보다 그를 꼴불견이라 흉보지 않고 격려하며 지켜봐주는 관용이 있어야 한다. 기회와 배려, 관용. 어쩌면 우리 청춘들에게 가장 필요한 만병통치약은 그것이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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