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세진의 지구촌뒤안길]

[논객칼럼=유세진] 미 하원이 15일(현지시간) 홍콩의 반중국·민주화 요구 시위를 지지하기 위한 3개 법안을 통과시켰다. 3개 법안은 각각 ▲ 중국의 홍콩 침략을 비난하고 홍콩 시민들의 시위 권리를 지지한다 ▲ 미 국무부는 홍콩의 자치가 제대로 시행되는지 매년 평가해 홍콩에 대한 특별 지위 부여 여부를 결정한다 ▲ 홍콩의 시위 진압에 미국제 무기가 사용되는 것을 금지한다는 내용이다. 낸시 펠로시 미 하원 의장은 "중국과의 사이에 중요한 이해 관계가 걸려 있음에도 미국은 언제나 인권 보호를 지지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법안 통과에 의미를 부여했다.

이는 14일 홍콩에서 홍콩인권민주화법안을 미국 의회가 채택해줄 것을 촉구하는 대규모 시위가 열린 것에 화답한 것이다. 13만명(주최측 추산, 경찰 추산은 2만5000명)의 홍콩 시위대는 이날 "자유를 위한 싸움, 홍콩을 위한 싸움"을 외치며 "홍콩 정부에는 더이상 기대할 것이 없다. 미국이 우리를 도와야 한다"고 말했다. 홍콩은 중국이 2047년까지 50년 간 보장하기로 한, 본토에서는 누릴 수 없는 민주체제의 자유와 사법 독립 등 인권을 향유할 수 있는 '일국양제' 약속이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흐지부지해지고 중국의 통제 및 자유·인권 침해가 갈수록 노골화하고 있다고 주장하며 시위에 나섰다. 시위대는 미 의회에서의 홍콩인권민주화법안 통과로 미국이 홍콩 관련 외교 행동에 나설 수 있고 홍콩 정부에 대한 제재도 가능해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또 중국의 홍콩에 대한 간섭을 홍콩의 특별 지위 유지 여부에 연결할 경우 홍콩 정부가 중국 본토와는 다른 체제를 유지할 수밖에 없게 될 것이라고 보고 있다.

그러면 홍콩인권민주화법 채택으로 홍콩 시위는 이제 돌파구를 찾은 것일까? 불행히도 그렇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같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지난 11일 무역협상을 위해 워싱턴을 찾은 류허(劉鶴) 부총리에게 "홍콩에선 중국에 의해 큰 진전이 있었다. (홍콩 사태가)몇 달 전보다 훨씬 진정됐다. (초기엔)시위대의 숫자가 정말 많았지만 지금은 훨씬 줄었다. 홍콩 문제는 알아서 해결될 것이라고 본다. 중국과의 스몰딜 합의가 홍콩에 매우 긍적적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중국과의 무역협상을 복잡하고 어렵게 만드는 홍콩 시위에 별 관심이 없고 중국과의 무역협상 타결에만 신경쓰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게다가 트럼프는 거센 비난에도 아랑곳않고 시리아 북부에서 미군을 철수시킴으로써 지난 수년간 미국과 함께 이슬람국가(IS) 퇴치를 위해 싸웠던 쿠르드족을 터키가 공격하도록 용인했다. 이는 쿠르드에 대한 배신이라는 국제사회의 비난을 불렀다. 이에 비춰보면 장기적 국제정세에는 관심이 없고 당장 눈앞에 보이는 미국의 이익에만 골몰하는 트럼프 대통령이 홍콩 시위대를 위해 중국에 맞설 것으로 기대할 수 없을 것같다.

한편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지난 13일 중국을 분열시키려는 어떤 시도도 박살날 것이라고 말했다. 시 주석은 "중국을 한 지역이라도 조각내려고 시도하는 자는 그 누구든 간에 온 몸이 바스러지고 뼈가 뭉개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는 그가 이제까지 중국 공산당과 다른 견해를 용납한 적이 없다는 사실을 새삼 일깨워주고 있다. 지난해 영구집권의 길을 열면서 마오저뚱(毛澤東) 이후 가장 강력한 중국 지도자가 된 시진핑에게 홍콩의 반정부 시위는 최대의 도전이다. 중국몽을 외치며 강력한 민족주의 지도자를 자처하는 시진핑으로선 홍콩의 반정부 시위를 용납, 약한 태도를 보여 스스로 체면을 구길 수는 없다.

지난 6월9일 송환법 개정에 반대하며 시작된 홍콩의 반정부 시위는 이제 20주가 다 돼가고 있다. 중국은 지금까지 홍콩 정부가 시위를 통제해 질서를 회복시키는데 실패할 경우 중국 인민해방군이나 무장경찰을 투입할 수 있다고 끊임없이 경고해 왔다. 그럼에도 아직까지 홍콩의 반정부 시위를 지켜만 보고 있는 것은 1989년 베이징 톈안먼(天安門)사태 때와 같은 유혈진압이 재연될 경우 중국의 이미지가 크게 실추되고 중국에 대한 제재를 초래할 수 있는데다, 일국양제를 통한 대만과의 재통일 가능성이 사라지게 되고, 아시아의 금융허브라는 홍콩의 지위가 아직은 중국에 절대적으로 필요하고, 시 주석을 몰아내기 위해 그가 실족하기를 바라는 세력이 중국 내에 여전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군사적 진압은 중국으로서는 가능한 한 동원하지 않으려는 최후의 수단이다.

하지만 홍콩 시위대와 중국 모두 양보의 기미는 조금도 보이지 않고 대치가 장기화되면서 중국의 군사개입에 대한 우려는 갈수록 커지고 있다. 양측 간 대치가 무한정 계속될 수는 없다. 지난 5일 홍콩에서 복면금지법이 시행되면서 시위대의 규모는 상당히 줄어들었다. 시위 자체를 근절시키지는 못했지만 시위 참여로 인한 불이익에 대한 우려로 상당수 시민들은 시위 참여를 꺼리게 됐다. 지난 13일 새벽 홍콩 사자산에 반정부 시위를 상징하는 '자유의 여인'(Lady Liberty)상이 세워졌다. 경찰의 총에 맞아 한쪽 눈을 실명한 여성 시위대원이 방독면을 쓰고 양손에 우산과 시위대의 요구 사항을 적은 깃발을 든 모습을 형상화한 이 자유의 여인상은 오랜 시위에 지치고 시위에 대한 의문의 목소리가 제기되는 상황에서 지금까지 추구해온 길을 계속 갈 수 있도록 시위대에 힘을 주기 위한 것이다.

게다가 오랜 시위로 홍콩 경제는 큰 타격을 받고 경기침체에 빠지는 게 확실해지는 등 어려움에 처했다. 홍콩의 민주주의와 인권을 지키기 위해 일시적 어려움은 감내하겠다는 사람이 아직은 많다. 하지만 폭력 시위로 홍콩의 이미지가 악화되면서 관광산업 위축으로 수입이 크게 줄어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평화를 요구하는 목소리도 점차 커지고 있다. 일국양제가 아니라 홍콩을 중국의 완전한 통제 아래로 편입시키려는 중국의 욕망과 중국과는 다른 자치권을 유지하려는 홍콩 시위대의 희망은 서로 양립할 수 없다. 시진핑으로선 정치적 통제력을 잃느니 차라리 금융허브라는 홍콩의 지위를 잃는 것이 낫다고 판단할 수 있다. 어차피 2047년이면 홍콩에 대한 일국양제 약속도 시한이 소멸되기 때문이다. 오랜 중국의 역사 속에서 28년은 짧은 순간이며 시간은 중국의 편이라고 시진핑은 생각할 것이다. 

 유세진

 뉴시스 국제뉴스 담당 전문위원

 전 세계일보 해외논단 객원편집위원    

 전 서울신문 독일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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