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영인의 정화수]

[논객칼럼=도영인] 잘 생긴 겉모습, 사회적 지위, 富(부)와 탁월한 교육배경 등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으랴. 누구나 막론하고 이런 외형적인 자산을 탐하기 마련이다.

학식이든 좋은 직업이든 자신의 노력에 의해 바람직한 모든 것들을 가질 수 있다면, 그리고 자신이 목표로 세운 것들을 성취할 수 있는 기회가 공정하게 주어진다면 얼마나 좋으랴. 개인의 값어치가 각자 쏟아 부은 노력의 결과에 비례하는 세상에 살고 있다면, 얼마나 흐뭇한 일일까. 그렇지 못하고 투자한 시간과 열정의 정도와는 거의 무관하게 사람들이 원하는 것들이 불공정하게 소수 특혜집단에만 주어진다면, 그 사회구성원들의 값어치는 정당하지 못하게 평가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긴 자가 성취한 모든 것을 싹쓸이 하는(winner takes all) 것을 허용하는 경쟁구조 속에 살면서도 우리는 스스로 자신의 진정한 정체성과 값어치를 간직하고 살기를 원한다.

Ⓒ픽사베이

각자의 삶에 도움이 되고 자신의 값어치를 높이기 위해서 스스로 자기계발에 좋은 생산적인 습관을 기르는 사람들이 많다. 좋은 습관의 일상화를 통해 누구나 자기 자신의 값어치를 평소에 알고 있다면 그만큼 만족스러운 삶을 즐길 수 있다. 그러나 눈에 보이는 물질적 기준에 준하여 사람의 값어치가 평가되는 사회에 몸담고 살면서 자신의 진정한 가치를 잊지 않고 사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경쟁에서 이긴 소수 사람들이, 보통 사람들이 갖고 싶어 하는 것들을 대부분 다 차지하고 절대 다수계층이 허약해진 10 대 90이라는 사회경제구조 속에서 비물질적인 가치관이 효과적인 영향력을 발휘하기 어렵다. 이런 상황에서 자기보호 목적이 뚜렷한 개인적인 에고(ego, 小我)는 자신 이외의 다른 사람이나 중독성물질에 의존하는 성향을 보이기도 한다. 특히 낮은 자존감에 시달리는 사람들은 하루하루 일상의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한 수단으로 동원되는 해로운 사고방식이나 행동패턴에 자기도 모르게 젖어들기 쉽다.

상대적인 평가가 제도화된 세상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고유한 가치를 평가절하하기 쉬운 상황에 처하게 된다. 학교성적이 낮을 경우 상대평가제도에 익숙해진 어린 학생들이 스스로를 소중한 존재로 보기 어렵게 될 때 아주 심각한 사회문제가 아닐 수 없다. 상위권 10% 순위로 성적을 올리지 못하는 학생들이 모두 자존감이 허약한 상태로 성장한다면 성인이 되어서도 온전한 자아정체성을 갖기 어렵기 때문이다. 공부 잘하는 자녀를 둔 부모 입장에서 자기 자식을 자랑스럽게 느끼는 것은 당연하겠으나, 그렇지 않은 부모가 자녀를 수치스럽게 여긴다면 참담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부모나 다른 사람의 눈에 자신이 초라한 존재로 비추어지고 있다고 스스로 느끼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누가 뭐래도 있는 그대로의 나를 가치 있는 사람으로 바라볼 수 있으려면 먼저 그렇게 보아주는 어른들이 필요한데 우리 사회는 그 면에서 얼마나 잘하고 있는지 통찰해 볼 필요가 있다.

의학박사이자 세계은행(IMF) 총재인 김용 총재가 몇 년 전에 한국방문 중 했던 강연에서 한창 운동하고 뛰어 놀아야 할 나이에 하루 종일 책상에 묶여있는 한국학생들의 건강상태를 염려했던 일이 생각난다. 그는 또한 “만약에 제가 세상의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일을 하기 보다는 저의 위치와 지위를 지키려고 애쓰는 순간 스스로 이 자리에서 물러날 것입니다”라고 표명한 바 있다. 여기서 그가 보여 준 자기 삶의 방향성과 자아정체성에 대한 뚜렷한 확신은 온전한 삶을 추구해 온 아름다운 영혼의 고백이다. 사실 공부를 잘할 수 있다는 것은 인간이 균형 있게 갖추어야 할 필수지능 중의 한 가지인 인지지능이 남보다 우수한 덕택이다. 그러나 김용 총재처럼 온전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인지지능 이외에도 신체지능, 감성지능, 그리고 특히 영성지능이 골고루 발달해 있어야 한다. 세계보건기구 (WHO)에서 말하는 건강의 개념은 몸과 마음, 감성과 영성을 그 정의에 포함한다. 김용 총재의 경우 어렸을 때부터 성실한 공부습관뿐만이 아니라 다양한 운동, 취미활동, 봉사경력 등 여러 면에서 균형된 성장과정을 거친 덕택에 자기 삶의 값어치가 사회적인 지위나 외적인 조건에 달려있다고 생각하지 않게 된 것이다.

한 사회가 건강하게 지속적인 발전을 하려면 먼저 자기 삶의 값어치를 잘 알고 있는 사람들로 구성되어야 한다. 자신이 살아남기 위해 상대방을 죽이지 않으면 안 되었던 인간들의 비정함을 허용했던 고대 전쟁국가, 그리고 더 잘 살기 위해 약소국을 침탈하여 자국민만의 탐욕을 만족시켰던 근대 제국주의 국가가 허욕을 떨치던 시대는 과거의 일이다.

그러나 인류역사가 적나라하게 보여준 잔인성의 그림자는 여전히 사라지지 않고 있다. 성난 짐승처럼 상대방을 칼로 베고 총으로 쏘고 적군진영을 폭발시키고 화학무기와 핵무기까지 개발한 ‘똑똑한’ 사람들이 과거에 비해 현대에 이르러 인간존엄성을 얼마나 더 중요시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자신의 이익을 위협하는 경쟁상대를 죽여야만 식성이 풀리는 야만의 시대는 지나가지 않았다. 총, 칼, 핵무기만큼이나 폭력적이고 파괴적인 간교한 인간의 마음이 살상무기로 작용하는 이 야만의 시대에 우리는 어떻게 온전하게 살아남을 것인가?

인간으로서 갖는 영적인 본질성의 가치를 제대로 인식해야 외부상황과 관련 없이 자아존중감을 지키며 살 수 있다. 사랑받고 행복을 누릴 권리가 있는 가치있는 존재로서 우리자신을 볼 수 있으려면 스스로를 무한한 영성적인 힘을 지닌 존재로 느낄 수 있어야 한다. 인류역사에서 인간들은 일반적으로 영성적인 가르침을 통해 자아현존성의 의미를 강화해 왔다. “오 존재의 아들이여! 너는 나의 램프이며 나의 빛은 네 안에 있다”라고 바하이(Baha’i) 신앙의 창시자인 페르시아 출생의 선지자 바하올라(Baha’u’llah)는 선포한 바 있다. 이와 비슷한 맥락의 가르침으로서 우리나라 고유의 민족 신앙인 동학에서 말하는 人內天(인내천) 사상은 “사람 안에 하늘이 있다”는 의미이다. 바하이신앙과 동학의 가르침은 19세기 중에 각각 지금의 이란과 한국에서 등장한 새로운 신앙체계인데 인간본래의 값어치를 명확하게 밝히고 있다.

누구나 이 심오한 가르침을 깊이 이해하고 수용한다면 인간으로 태어난 자신의 고유한 가치를 의심할 이유가 없게 된다. 태어날 때부터 주어진 본질적인 가치가 파손되지 않도록 자신을 사랑하고 어떠한 경우에도 내면에 간직한 영혼의 ‘빛’ 또는 ‘하늘’을 지켜내기만 하면 된다. 우리나라 이순신 장군이 그리했고 국가의 영혼을 빼앗아 가려던 일제에 대항한 이름 없는 애국지사와 독립 운동가들이 혹독한 대가를 치르면서 꺼지지 않는 영혼의 빛을 지켜냈다.

보이지 않는 내면의 빛 또는 내 안의 하늘(하느님)이야말로 나의 본질을 가리키는 은유적 상징의 언어이다. 내 영혼의 힘, 즉 내면의 영성적 에너지를 추구해 온 사람이라면 이런 언어를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또한 자기내면의 힘을 믿는다면 인간 본연의 본질적인 가치를 지키려는 진보적인 의식체계야말로 크고 작은 문제해결의 핵심이라고 보는 필자의 관점에 누구나 동의할 것이다. 우리의 몸을 비롯해 외부적으로 보이는 모든 인간적인 측면은 피상적인 자아개념을 형성하는 일시적인 물질요소일 뿐이다. 외부로 나타나는 일시적인 현상보다는 숨겨진 영성적 정체성을 진정한 자아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증가하게 될 때 이 세상은 좀 더 밝고 온전한 삶의 터전이 될 수 있다.

나의 겉모습이 아니라 나의 본질에 대해 알게 해 주는 교육이야말로 인성교육의 핵심을 이루어야 한다. 불행하게도 한국사회에 인성교육진흥법은 마련되어 있어도 인간의 본질적인 가치를 이해하고 실천하는 교육자나 부모들이 충분하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소위 말하는 SKY대학 교수들이 자기 자식이 경쟁에 앞서도록 부정을 저지르는 판국에 이 나라 고등교육과 인성교육제도는 빛 좋은 개살구일 뿐이다. 자신의 양심과 평화를 중요시하고 다른 사람들의 고통을 덜어주는데 앞장서 온 모범적인 한민족이 어쩌다 이렇게 성난 짐승처럼 달려가는 천민자본주의 경쟁마차를 정신없이 몰면서 자신과 남의 영혼을 짓밟는 행위에 익숙해졌는가!

공익사업으로서의 사명이 우선시 돼야 하는 교육에 앞장 선 소위 엘리트계층에 속하는 지식기득권자들이 마음껏 누려온 특혜는 집단이기심의 문제라기보다는 영혼빈혈증의 문제이다. 양심 없는 사람들이 교육하고 뻔뻔한 자들이 정치권력 휘두르는 세상에서 어떻게 미래를 밝힐 것인가? 필자는 외치고 싶다. 우리의 영혼의 빛이야말로 미래를 밝히는 양심사회의 촛불이 될 수 있다고 강조하고 싶다. 우리 각자 내면에서 이 작은 양심의 촛불을 밝힘으로써 사회전체를 환하고 아름다운 미래사회로 이끌어 갈 수 있다. 자기 안에 꺼지지 않는 영혼의 촛불을 간직한 사람들이 해야 할 일들이 있다. 촛불 밝힌 우리가 함께 하고 싶은 일들이 있다. 그리고 우리가 끝내 해낼 수 있는 중요한 일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도영인

한 영성코칭연구소장
영성과 보건복지학회 고문,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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