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봉성의 고도를 기다리며]

[청년칼럼=김봉성] N포 세대 이전에 삼포 세대가 있었다. 삼포 세대 직전에 88만 원 세대가 있었다. 10여 년 전 내 꿈은 월 88만 원을 무사히 버는 것이었다. 적정 취업 시기를 놓쳐버린 내게 제대로 된 밥벌이는 보이지 않았다. 나와 엇비슷한 눈높이를 살아낸 70년대 후반에서 80년대 초중반생들은 신개념을 개척했다. 우리 삶은 88만 원, 삼포, N포를 규정했다. 부모보다 잘 살기 힘든 첫 세대로서, 희망을 포기하고 사는 것을 몸으로 서술한 것이다.

우리의 유산이 시대를 점령한 사이, 88만 원 세대는 중년에 들어서기 시작했다. 세상은 신입 중년에게 관심을 갖지 않았다. 어린이, 청소년, 청년, 노인을 위한 정책은 흔했지만 중년을 위한 정책은 드물었다. 통상적으로 중년은 인간 생애 가장 부유한 시절이므로 국가의 보조가 불필요한 세대로 이해된다. 그러나 88만 원 세대들은 청년 시절 중년의 기반을 다질 수 없었다. 도서관에 처박혀 있는 동안 무능만 성장했다. 이미 나이만으로도 이력서에 자신을 소개하기 부적합해졌다. 인생의 절반쯤에서 마주한 진퇴양난은 외롭다.

Ⓒ픽사베이

“아직도 노냐? 그래도 우리나라 백수들은 착해요. 텔레비전에서 보니까 프랑스 백수들은 일자리 달라고 다 때려 부수고 개지랄을 떨던데. 우리나라 백수 애들은 다 지 탓인지 알아요. 제가 못나서 그런지 알고.”

- 2010년 개봉한 영화 [내 깡패 같은 애인]에서 주인공이 한 말이다.

당시 나는 백수였으나 공감하지 못했다. 나의 백수는 ‘가장 높이 나는 갈매기가 가장 멀리 본다’를 성서처럼 품은 채 오르지도 못할 나무를 꿈 꾼 내 탓이라고 여겼다. 시장 경제 체제에서 적자생존은 당연하므로 나의 백수는 합리적이었다. 마음 한 구석의 나는 낙오한 갈매기를 받쳐 줄 안전장치가 없느냐고 누군가에게 따지고 싶었지만, 또 다른 나는 비겁한 변명이라며 변명하는 나를 쏴 죽였다. 그래야 덜 찌질했다. 그래봤자 내가 변명 불가의 무능력자임은 변하지 않았다. 자의식은 위축되었다. 자아를 보호하는 방법은 타인과 관계하지 않는 것이었다. 혼밥과 혼술이 뿌리 내렸다.

요즘 ‘청년 지원금’을 준다는 뉴스를 보면 10여 년 전 나는 ‘개지랄’을 떨었어야 했나 하는 생각이 든다. 시장의 법칙이 전부는 아니었다. 우리는 겉만 멀쩡했지 사실은 사회적 약자였고, 국가에 보호를 요청할 권리가 있었던 것이다. 결과적으로 국가가 우리를 학습한 덕분에 90년대 생에게는 나름의 좋은 국가 노릇을 하고 있는 셈이었다. 나는 조금 부러웠다. 지원금이 실질적 도움이 되든 안 되든 90년대생들은 국가가 내 편이라는 마음은 가질 수 있을 것 같았다. 아직 큰 도움은 되지 않지만 여차하면 기대볼 수 있는 ‘빽’, 지난 10여 년 동안 나는 그것이 갖고 싶었던 모양이었다.

물론 나는 중년에 들어선 88만 원 세대를 대표하지 못한다. 꿈은 이루지 못했지만, 놀랍게도, 밥은 먹고 다닌다. 맛집 투어를 하지 않는 것은 귀찮아서이지, 돈이 없어서는 아니다. 그러나 그 세대의 상흔은 남았다. 취향을 학습할 기회를 잃었다. 취향은 가성비로 획일화되었고, 가심비에는 적응하지 못했다. 통장 잔고가 쌓여가지만 밥만 먹고 다닌다.

밥을 먹고 다닌다는 사실은 88만 원 세대와 괴리가 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대표하는 척 세대를 이야기하는 것은 우리 세대가 가진 트라우마를 공유하기 때문이다. 나는 아직도 각자도생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모든 것을 내가 책임져야 한다는 강박이 뼛속까지 스몄다.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가지는 불안증이겠지만 첫 세대라 더 막연했고, 막연해서 거대했다. 일이 끊겨 몇 달 간 수입이 0인 날들의 우울이 씻기지 않았다. 언제든지 추락할 수 있다는 공포, 붙잡을 것 없다는 절망, 이것이 88만 원 세대의 생존자가 지닌 심장의 무늬이다.

국가는 앞으로도 우리에게 관심을 두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분노나 광기보다는 자조적 우울에 길들여져 있어서 ‘조커’가 될 가능성도 낮고, 우리에게 투자한다고 해서 저출산을 해결할 것도 아니므로 우리에게 지출할 예산 성과의 가성비는 낮다. 어차피 우리는 기대하지 않고 적당히 절망하는 것에 익숙해진 군상들이다. 버려진 세대로 규정하고 내버려둬도 꾸역꾸역 살거나 조용히 자살이나 할 것이다. 그러나 N포를 물려받은 90년대생은 다르다. 그들은 우리보다 사회 활동을 더 하지 않고, 결혼도 더 하지 않으며 혼자의 외피를 키웠다. 그들은 우리보다 자의식이 강해서 ‘조커’에 가깝지만, 저출산을 해결할 가능성이라도 있는 세대이다. 그들이 우리처럼 되지 않기를 바란다.

아니, 오래된 88만 원 세대도 잊지 않기를 바란다. 내 동기들은 사실, 간절하다. 통계청에 의하면 지난해 자살률이 전년 대비 증가한 가운데, 30대(12.2%), 40대(13.1%) 증가율이 도드라진다. 제대로 된 청년을 살아본 적 없는 세대가 준비되지 않은 중년을 맞아야만 하는 난감함을 또 혼자 겪게 내버려 두지 않기를.

 김봉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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