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라니의 날아라 고라니]

[청년칼럼=고라니] 요즘 팀장들을 보면 가끔 짠할 때가 있다. 온갖 더러운 꼴 다 보고 그 자리까지 갔는데, 막상 대접 받을 때가 되니 요즘 것들은 단체로 미쳐 돌아간다. 6시가 되면 팀장이 남아 있든 말든 쌩 까고 퇴근하고, 해외여행 간다며 연차를 대여섯 개씩 연달아 낸다. 조금만 지적해도 갑질한다고 블라인드에 글을 올려대니 환장할 지경이다.

이들은 조직의 악습을 개선해 왔다고 나름 자부했다. 회식은 한 달에 한 번으로 줄이고, 노래방 뒤풀이도 없앴다. 의사결정을 하기 전에 직원들의 의견도 경청했다. 점심도 자주 사줬다. 박봉에 인심 쓰기가 어디 쉬운가. 솔직히 이 정도면 존경 받는 선배로 이름 좀 날릴 줄 알았지. 그런데 이게 웬걸? 내가 꼬, 꼰대라니!

설상가상으로 임원들의 갈굼은 여전하다. 온고지신의 정신으로 상명하복 군대문화를 아끼고 보존하는 이들 말이다. 근데 이들도 욕먹는 건 싫은지 신입사원한테 직접 싫은 소리를 못 한다. 팀장들만 쪼아댄다. 아랫 것들 교육 똑바로 시키라고. 아오~ 젠장. 인사권자가 까라니 어쩌겠나. 불러다가 한 마디 하는 수밖에.

"아니 나는 괜찮은데... 윗분들 보시기엔 고라니씨 태도가 말야... 무슨 말인지 알지?"

위에서 누르는데 아래로 풀지 못하니 그 한이 속에 쌓여 항상 울상이다. <90년생이 온다> 같은 책을 읽으며 젊은 직원들의 사고방식을 이해하려 노력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억울하다. 왜 내가 이해해야 돼? 지들이 상사인 나를 이해해야지.

Ⓒ픽사베이

여기까지가 ‘요즘 것들’과 나름 잘 지내보려고 노력하는 ‘요즘 팀장’들의 속사정이다. 이들은 억울하다. 아무도 자신들의 공을 인정하거나 고마워하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자꾸 "라떼는 말야"라는 말이 튀어나온다. 나 때는 이렇게 힘들었는데, 니들은 내 덕에 편하게 회사 다니는 거라구. 고맙지? 이 정도면 괜찮은 팀장이지? 필사적으로 말하는 듯하다. 그럴수록 개미지옥에 빠져드는 것도 모르고.

젊은 직원들은 이 순간에도 “팀장 또 라떼 우린다”며 메신저로 욕을 하고 있다. 요즘 같은 때 강제회식이 말이 되냐며, 민주적인 팀장 코스프레 하다가 결국 전부 지 맘대로 결정한다며, 내 돈 주고 사먹을 테니 점심만이라도 맘 편히 먹게 해달라며.

신나게 키보드를 두드리는 저 요즘 것, 그래 내 얘기다. 아직까진 성공적으로 요즘 것들과 같이 묻어가고 있는 30대 초반의 애매한 나 말이다. 나도 안다. 꼰대 소리 들을 날이 머지않았다는 걸. 프린터 토너가 다 떨어졌는데 모른 척 하는 후배가 못마땅할 때, 사람이 지나가는데 목례도 안 하는 신입사원을 보며 ‘쟤 몇 기야?’라는 생각이 반사적으로 떠오를 때, 숨겨왔던 나의 꼰대기질을 목도하며 소름 끼칠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문득 팀장의 마음이 약간 이해된다. “내가 이 정도 편하게 해 줬으면, 너네도 이 정도는 해줘야지” 하는 보상심리가 꼰대 짓의 토대다. 더 나아가, 어떤 꼰대는 본인이 살아온 세상이 철저히 무시당할 때 그 반작용으로 탄생하기도 한다. 그렇게 살고 싶어서 산 것도 아니고, 그래야 되는 줄 알아서 그렇게 살았다. 그런 사정은 알지도 못하면서 고리타분하고, 시대착오적이며, 비합리적이고, 억압적이다 말하는 젊은 직원들을 보며 속이 뒤틀릴 법도 하다. 자신의 삶 자체가 부정당하는 느낌까지 들 테니까.

자 그럼, 90년생으로 대표되는 젊은 세대가 기성세대를 이해하려는 노력 없이 쉽게 말하고 쉽게 욕하는 건 맞다고 치자. 이제 조금 더 솔직해지자. 팀장들은 정말 욕먹을 짓을 안 했는가? 당신이 업무적인 지시를 하거나 조언을 할 때 신입사원의 표정이 썩은 적이 있는지. 아닐 거다. 당신은 아마 9시 정각에 딱 출근하는 직원이 못마땅했을 거고, 그렇다고 꼰대 소리 듣긴 싫었을 거고, “아니 난 괜찮은데”로 시작되는 면피성 발언을 곁들여 30분 일찍 오길 종용했을 것이다. 이 얼마나 비겁한 짓인가.

젊은 직원들은 이제 웬만한 꼰대발언에는 무감각해져 그냥 흘려버린다. 이들이 참을 수 없이 싫어하는 팀장은 비겁한 꼰대다. 실제로는 못 잡아먹어 안달이면서, 겉으로는 민주적인 팀장인 척하는 치사한 소인배들이 이 시대의 주적이다.

당당하게 지르고 시원하게 욕먹는 꼰대는 사랑은 못 받을지언정 품위는 지킨다. 그러니 괜히 내면의 진솔한 목소리를 억누르다 속병나지 말고 그냥 지르시라. 그걸 어떻게 받아들이느냐는 젊은 세대의 몫이다. 일리 있는 말이면 귀담아들을 것이고, 개소리는 걸러들을 것이고, 인격 모독적이고 성차별적인 발언이라면 알아서 모종의 액션을 취할 테니. 뒤에서 하도 욕하고 다녀서 신입사원의 평판을 거지같이 만들거나, 인사고과로 응징하는 행위는 부디 그만두시고.

그래도 좋은 팀장 소리 듣고 싶은 미련이 떨쳐지지 않는다면, 이 방법도 괜찮다. 유난히 못마땅한 직원 한 명을 타겟으로 정한 다음, 턱을 괴고 관찰하는 것이다. 사무실이 판옵티콘 구조로 되어 있다면 더욱 좋다. 팀원들이 눈치 못 채도록 하루 종일 은밀히 관찰할 수 있으니까. 처음에는 행동거지 하나하나가 꼴도 보기 싫겠지만. 하루, 이틀 지날수록 이상하게 마음이 편해지는 자신을 발견 할 수 있을 것이다. 사람은 안 변하지만 적응은 빠르니까. 눈에 자꾸 바르고 익숙해지는 게 최선이다. 그러다보면 아무리 꼴 보기 싫었던 행동도 그런가보다 하고 넘어가는 날이 오리라 믿는다.

세대갈등이 계속돼도 조직은 돌아가고 지구는 돈다. 분연히 일어나 꼰밍아웃하는 그 날이 오면, 당당히 말하라. 내가 꼰대다!

고라니

칼이나 총 말고도 사람을 다치게 하는 것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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