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와 사진작가의 14,400km의 여정] 베를린(Berlin)8

세상을 향해 외치다

유관순을 떠올리게 하는 이 동상의 소녀는
맨발이다.


누구를 향해
무엇을
외치고 있는 것일까?

깃발도 없이
확성기도 없이
뒤따르는 사람도 없이
그 흔한 신발조차 없이
고독하게 홀로 서서
무엇을 외치는 것일까?

두려워하지 말라, 세상을 향해 도전하라, 그대의 온몸을 내던져라...
하지만 나는 그러한 용기가 없다.
어쩌면 그대 또한 그러할 것이지만
그대 귀에 들려오는 외침을 모른 척하지는 못하리라.
그것만으로도 소녀는
그 누군가의 등대가 되었다.

베를린 브란덴부르크문 앞 큰길 중앙분리대에 작은 동상이 서 있다. 맨발의 소녀가 두 손을 모아 세상을 향해 외치고 있다.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인류의 가장 큰 소망, “제발 싸우지 말고 평화롭게 살라”고. Ⓒ김인철
Ⓒ김인철

 

파괴되어 더욱 아름답다

어쩌면 여신이었을 것이다. 고대 신화 속에는 남신보다는 여신이 더 많고, 사연도 더 굴곡지다.
그러나 가슴이 밋밋하고, 건물 앞에 수호신처럼 세워져 있는 것으로 보아
남신으로 보이기도 한다.

아무려나 상관없다.
돌은 수천 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검게 변했고
머리는 댕강 잘려 사라지고
군데군데 총탄을 맞은 흔적이 난무하다.
그래서 아쉽고 안타깝지만
그래서 더 아름답다.

온전하게 보전되었으면 미술 교과서나 역사 교과서에 실려
우리의 주목을 받았을 것이련만
몸뚱이만 남아서
역사의 속절없음을 보여주기에
더 애절하고....
더 아름답다.

파괴되어 몸통만 남은 조각상. 이 또한 세상을 향해 전쟁과 싸움의 결과가 얼마나 참혹한지 소리치는 듯싶다. Ⓒ김인철

그날들을 기억하자

기억하지 못하면 망각하고
망각하면 불행이 다시 찾아온다.
하지만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기에
어리석은 행위를 끝없이 되풀이 한다.

독일은 제3제국 시절 2차대전을 일으켰으나 1945년 5월 7일 항복문서에 서명하면서 패망으로 끝을 맺었다. 그리고 2개의 나라로 갈라졌다. 독일연방공화국(서독)과 독일민주공화국(동독)이다.
두 국가는 끊임없이 대립하고 갈등했으며, 베를린 장벽을 넘어 서독으로 탈출하는 자유인들은 무참히 총살되었다. 하지만 인류의 보편적 가치인 자유와 평화, 사랑, 화합은 끝내 베를린 장벽을 무너뜨렸고 동독과 서독은 1990년 10월 3일 통일되었다. 갈라진 지 45년만이다.

베를린에는 분단시절의 상징인 베를린장벽이 기념물로 세워져 있고 각각의 제복을 입은 병사들이 두 국가의 국기를 들고 퍼포먼스를 펼친다. 청년들은 그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관광객들은 재밌는 구경거리로 삼지만 그 시절의 아픔이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함에도 그들이 부러운 이유는 우리보다 훨씬 먼저 스스로의 힘으로 통일을 이루었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실망할 것은 없다. 우리도 곧 통일이 될 것이며 ‘분단시절을 잊지 말자’는 철책선 퍼포먼스를 펼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14,400km를 달려온 19박 20일의 여행이 ‘드디어’ 끝났다.
이제 집으로 돌아가자!

베를린 시내에 작은 시멘트벽 몇 개가 서 있다. 새로 지은 대형 건물 앞에 과거 베를린 장벽이 세워져 있었음을 기억하기 위한 기념물이리라. 이제 관광객들이 동·서독 제복을 입은 병사들의 퍼포먼스를 흥미롭게 바라보고, 기념사진을 찍는다. Ⓒ김인철
Ⓒ김인철

 

 김인철

 야생화 칼럼니스트

 전 서울신문 논설위원

 김호경

1997년 장편 <낯선 천국>으로 ‘오늘의 작가상’을 수상했다. 여러 편의 여행기를 비롯해 스크린 소설 <국제시장>, <명량>을 썼고, 2017년 장편 <삼남극장>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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